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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스토리]역사의 질곡속으로 사라진 조선 왕실의 본가 '도정궁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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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이규성 기자]
[서울스토리]역사의 질곡속으로 사라진 조선 왕실의 본가 '도정궁 옛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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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직공원 서편 인왕산으로 오르는 산책로와 사직터널 사이에 거대한 왕가(王家)가 존재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한적한 동네처럼 보일 뿐이다. 도로 전면에서는 주유소와 업무용 빌딩이 들어서 있으며 안쪽으로는 빌라 및 다가구주택, 단독주택, 교회, 연수원, 기업체 사무실 및 창고 등이 난립해 있다. 언뜻 궁궐 흔적을 찾기는 어렵다.

도로변에 '도정궁 터'라는 빗돌 하나가 겨우 마을의 유서를 가르쳐 준다. 과거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앞두고 관광자원 혹은 서울의 역사성을 찾고자 군사정권이 세운 것이다. 아주 작고 검은 빗돌은 지나는 이의 눈길조차 끌지 못할 정도로 옹색하다. 사직동 토박이인 지역주민자치위원장조차 "이곳에 궁이 있었어 ?"라며 반문할 지경이다.
도정궁 옛터는 일제에 의해 1931년 200여 필지로 분할돼 잘려져 나갔다. 지금은 단독주택 등 일반 주택가로 변모해 있다.

도정궁 옛터는 일제에 의해 1931년 200여 필지로 분할돼 잘려져 나갔다. 지금은 단독주택 등 일반 주택가로 변모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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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궁은 수십년전까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과 인왕산 자락에 나란히 자리해 있었다. 도정궁 본채 자리로 추정되는 운경기념관까지 올라가면 서울의 광화문 일대는 물론 남산 등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인왕산 능선을 따라 경사도가 큰 터에 위치, 전망은 오히려 경복궁 등 여타 궁궐보다 탁월하다. 도정궁 아래로는 초고층 주상복합아파트만 아니라면 조선 왕실 5대 궁궐 중 하나인 경희궁이 한눈에 굽어보였을 터다.
"도대체 도정궁은 어떤 왕가(王家)였을까 ?" 도정궁은 역대 왕의 집무실로 쓰인 정식 궁궐은 아니다. 하지만 규모가 웅장하고, 거대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의 왕족은 모두 궁궐에 살지는 않았다. 궁궐밖의 집 '왕가'에 살았다. 이를 잠저라고 일컫는다. 수많은 잠저 중에서도 '도정궁'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조선의 13대 명종이 후사가 없이 죽은 후 12대 중종의 방계 혈족인 덕흥대원군의 아들 하성군이 14대 선조로 등극한다.

즉 덕흥대원군은 조선 후기 왕조의 중시조가 되는 셈이다. 바로 도정궁은 덕흥대원군의 집이며 선조의 잠저로 조선 후기 왕조의 뿌리가 깃들어 있는 곳이다. 조선 중기부터 일제에 의해 강제 해체될 때까지 470여년간 조선 왕실의 본가 역할을 수행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여러 문헌에는 도정궁에 여러 잠저와는 달리 재실과 가묘, 사당이 있었으며 주거로는 본채와 선조의 독서당인 '긍구당'을 비롯, 담연정이라는 연못을 포함하고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선조로부터 조선 후기 역대 왕들은 도정궁에 많은 정성과 관심을 쏟았다는 기록도 나타난다. 심지어는 흥선대원군은 물론 고종, 순종도 도정궁을 복원하느라 막대한 기금을 희사해 개축토록 한 일도 있다. 즉 왕실이 대대로 관리한 잠저는 도정궁이 유일하다.
도정궁은 덕흥대원군의 사손들이 대대로 종 3품인 '도정' 벼슬을 받아 세습, 관리했다. 도정궁이 조선 왕실의 본가였던 만큼 정치적 풍파도 컸다. 선조의 아들 인성군이 일부 세력에 의해 왕으로 추대됐다가 죽임을 당했는가 하면 덕흥대원군의 사손인 이하전은 왕위 서열 1순위였음에도 외척들에 밀려 강화도령인 '철종'에 왕위를 빼앗기고 역도로 몰려 젊은 나이에 참수됐다.

도정궁에는 임진왜란 전후, 1913년 등 세차례 화재로 유실됐다가 복원되기를 반복했다. 조선총독부 등을 세워 경복궁의 대부분을 해체한 일본은 본가인 도정궁을 손대기 시작했다. 일제는 급기야 1931년 도정궁 일대를 200여 필지로 분할해 버렸다. 본가를 철저히 훼손함으로써 왕실의 권위를 짓밟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후 도정궁은 하나 둘 잘린 채 팔려나갔다. 지금은 운경 기념관 자리에 그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정도다.

서울시ㆍ문화재청 등이 최근 경희궁 정비 기본계획 수립, 복원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도정궁은 여전히 관심밖에 머물러 있다. 당초 인조의 잠저였던 경희궁이 영조 등 일부 왕들의 집무실로 사용돼 궁궐로 변모했지만 도정궁은 조선 왕실의 본가라는 상징으로 만족해야했다.

여하튼 도정궁은 수백년 동안 이어오며 조선 최후의 잠저로 남았다가 일제 강점에 짓밟히고, 개발연대에 삽시간에 그저 그런 주택가로 변모하고 말았다.

도정궁의 정확한 규모와 위치, 경계를 파악하기는 어렵다. 관련 자료가 전혀 없다. 전반적인 규모는 일제가 도정궁터를 200여 필지로 분할했다는 걸로 보면 현재 사직터널과 사직공원 사이 전체에 해당된다. 이는 어림잡아 창경궁 규모에 버금 간다. 조선 왕조실록에는 순조가 덕흥대원군의 사손인 진안군 이언식에게 도정궁의 고적을 묻는 대목이 나온다.

이에 이언식은 "내정의 돌기둥은 곧 선조가 독서하던 서재이고, 앞기둥 뒤의 계단에 있는 회양목은 대원군께서, 총죽은 선조께서 직접 심으신 것"이라고 답한다. 이를 근거로 볼 때 잠저의 본채는 현재의 운경기념관 자리며 바로 그 아래 선조의 서재인 독서당인 '궁구당'이 위치해 있던 것으로 짐작된다. 운경기념관 아래 돌계단 등이 있는 현대그룹가의 한옥에서 도정궁의 옛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정확히 알 수 있는 대목이 하나 있기는 하다. 바로 도정궁의 일부 건물인 도정궁 경원당이 현재 임당빌딩 앞 도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경원당은 지난 1979년 건국대 교정으로 이전된 것으로 유일하게 명확한 위치가 확인된다. 이를 근거로 전반적인 윤곽이 그려볼 수는 있다.

운경기념관은 국회의장을 지낸 운경 이재형씨가 사들여 1960년대 초부터 주거로 활용했으며 사후 재단에 기증했다. 다시 재단은 옛 한옥을 2000년 원형대로 복원했다. 현재는 비워있고, 재단사무실로 쓰이는 석조건물이 한옥 뒷편에 자리해 있다. 재단은 장학사업 등을 영위하며 운경의 자손들은 거의 관여치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헌태 사직동장은 "현재까지 드러난 자료로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기 어렵다"면서도 "운경기념관 자리가 잠저의 중심건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운경은 선조의 7남 인성군 10대손이다.
[서울스토리]역사의 질곡속으로 사라진 조선 왕실의 본가 '도정궁 옛터' 원본보기 아이콘

운경 기념관 내 한옥은 양반집과는 달리 기단이 높고, 위엄이 있으며 개량형으로 돼 있다. 전체적으로 'ㅁ'자로 동문에 남향의 전형적인 형태를 취한다. 결국 덕흥대원군의 후손이 들어와 지키는 셈이다.

이제 도정궁은 수백년 동안 조선 역사와 권력의 한 복판에서 모진 풍파를 견디다 흔적만 남기고 역사의 질곡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그러나 도정궁 옛터는 서울의 어느 한 골목도 보이는 것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게 한다. 또한 그 안에 역사와 문화유산의 숨결이 수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이규성 기자 pe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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