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오기수 집배원은 충남 태안우체국에서 근무하던 1980년 12월 12일 대설주의보가 내렸음에도 그날 마지막 편지인 농민신문을 우체국에서 10km 떨어진 안면읍 신야리1구에 배달한뒤 우체국으로 돌아오다가 부상을 입고 동사했다. 이 소식은 전국의 신문,방송을 통해 알려졌고 각계각층에서 위로금이 답지됐다. 정부부처는 물론 상이군경회와 한국야쿠르트, 출판사, 국민들의 성금이 이어졌다. 오씨의 순직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당시 체신부(현 우정사업본부)는 오씨의 순직을 기리기 위해 추모비를 건립했다. 추모비에는 '한 통의 편지위한 님의 정성 우리 온 가슴에 길이 남으리'라고 적혀있다.
남궁 민 우정사업본부장은 "오기수 집배원의 숭고한 희생은 후배 집배원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면서 "추모비를 지식경제부공무원교육원(천안 소재)으로 옮겨 많은 사람들이 그의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남궁 본부장은 또 "우체국이 국민들에게 변함없이 사랑받는 것은 자신을 헌신하는 우정인들의 땀과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집배원들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사고예방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우정사업본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우편제도 도입된 후 지금까지 순직한 우정인은 359명에 이른다.
이경호 기자 gung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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