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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하 감독 인터뷰①] "내 영화는 대중성과 작가주의 사이"

최종수정 2008.12.31 10:54 기사입력 2008.12.31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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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유하 감독이 전작 '비열한 거리' 이후 조인성과 다시 만났다. 고려 말기로 돌아간 유하 감독은 조인성을 왕의 호위무사로 변신시켜 왕과 왕후 사이에서 고민하게 만들었다. 역사적 사실을 토대로 픽션을 재구성한 영화 '쌍화점'은 조인성, 주진모, 송지효 캐스팅만으로도 화제를 모았지만 파격적인 노출과 동성애라는 소재가 더해지며 더욱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인간의 원초적인 비극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는 유하 감독은 사랑의 장애물로 동성애와 계급차이를 설정하고 공민왕과 관련된 비사들을 끌어모아 한국 영화사에 보기 드문 비극을 한 편 완성했다. 유하 감독과 만나 '쌍화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 '쌍화점'을 만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이태헌 오퍼스픽쳐스 대표의 권유로 시작하게 됐다. 계속 사실주의적인 현대극만 찍다 보면 자기 벽에 부딪히지 않겠냐며 다른 장르를 시도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원래 사극을 싫어한다. 내가 본 사극 드라마라곤 '용의 눈물'밖에 없을 정도다. 사극이란 장르가 불편했기 때문에 오히려 도전적인 게 생겼다.

이런저런 역사책을 보니 공민왕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게 됐고 조인성과 멜로드라마를 해보고 싶던 차에 멜로드라마와 공민왕이 결부되면서 시나리오가 착상됐다. 조인성에게 먼저 함께하자고 했더니 여배우가 누구냐고 물었다. 여자가 아니라 남자라고 했더니 얼굴이 굳더라. 남녀의 멜로는 식상하지 않냐, 남자끼리 멜로가 새롭지 않겠냐고 했더니 "감독님이 가시면 저도 갑니다"라고 했다.

- 언론시사 후 엇갈린 반응이 나왔는데 느낌이 어떤가?

▲예상했던 평들도 있다. '쌍화점'이 아주 파격적인 스토리를 다룬다거나 평론가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다기보다 정극에 가까워서 관객들이 볼 때 정형화되고 통속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쌍화점'에 대한 일부 평 중에는 '황후화' '음란서생' 등과의 유사성을 거론하기도 한다.

▲영화 100년사를 통해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거의 없다. 현대영화는 그러한 것들을 변주하는 것일 뿐이다. '쌍화점'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에 나오는 인간의 원초적인 비극성을 표방하고 만든 영화다. 개인적으로는 영화가 '지구를 지켜라' 같은 새로움을 줄 수도 있겠지만 관객들은 여전히 원형적인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다고 본다.

'쌍화점'도 왕과 호위무사의 이야기지만 현실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내용을 다룬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본질적인 마음과 맞닿아 있다면 충분히 공명할 거라 생각한다. 게다가 남자가 남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건 본격적으로 다뤄진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정도면 충분히 새로운 이야기 아닌가?

- 영화를 10분 가량 편집한 이유는?

▲기술시사 때부터 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상업영화이다 보니까 긴 시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리지널 버전은 감독판으로 남겨놓을 생각이다.

- 특정 장면을 통째로 들어내기도 했나?

▲아니다. 클라이맥스로 가는 부분 중 설명적인 것이 있어서 줄인 것이다. 고생한 배우들을 고려해서 넣었는데 너무 길다는 지적이 있어서 드라마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긴 장면들을 부분적으로 줄였다.

- 모든 사건이 종결된 후 마지막 두 회상 신은 사족 같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천산대렵도' 장면은 꼭 필요하다고 봤다. 소수의 정체성을 갖고 있는 왕이 가고 싶어 했지만 죽을 때까지 못 갔던 유토피아, 두 남자가 마지막까지 다다르지 못했던 환상의 공간을 보여주고 싶었다. 언론시사 때 있었던 엔딩 장면의 어린 시절 플래시백은 삭제했다.

- 사랑과 권력의 문제를 결부시킨 점이 흥미롭다.

▲사랑은 권력 밖에서 이뤄지기도 한다. 왕의 마지막 질문은 '나를 사랑한 적이 있느냐'다. 왕이 필부의 마음으로 돌아갔을 때 이미 권력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홍림은 권력에 의해서 자신의 정체성이 만들어진 인물이고, 정체성의 진실을 알게 됐을 때 비극이 시작된다. 왕도 권력을 지키려고 했다면 비극을 겪지 않았을 텐데 낭만주의자가 됐기 때문에 비극이 생긴 것이다.

- 남성관객보다 여성관객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마초성이 오가는 제 전작들처럼 음모와 배신이 있는 하드보일드 스타일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저는 멜로드라마의 장르에 충실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영화에서 멜로영화는 시효가 얼마 남지 않았다. 해외에서는 순수 멜로는 거의 만들어지지 않는다. 멜로가 가미된 여러 장르가 존재할 뿐이다.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변칙 멜로였다면 '쌍화점'은 그리스 비극이나 셰익스피어 정극에 해당하는 멜로에 가깝다. 멜로드라마가 아무래도 여성의 장르이기 때문에 평가가 엇갈리는 게 아닐까.

- 동성애를 다루고자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나?

▲'결혼은, 미친 짓이다'가 여성에 대한 편견을 그리고 '말죽거리 잔혹사'가 교육제도 문제를 다뤘던 것처럼 동성애에 대한 편견을 깨고 싶었다. 동성애도 인간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뿐이다. 그것을 진심으로 묘사하고 싶었다. 소수자의 정체성에 대한 편견을 깨는 데 일조할 수 있으면 좋겠다.

- 그렇지만 동성애를 상업영화의 소재로 끌어오는 건 위험한 선택이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많이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 '왕의 남자'에도 동성애 코드가 있지 않은가. '쌍화점'은 그보다 더 본격적으로 다뤘을 뿐이다. 우려가 될 수도 있지만 하나의 트렌드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저 개인적으로는 아주 대중성만 지향하는 감독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뭔가 작가로서 나름의 생각과 소신을 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관객이 그것을 이해할 수 있게끔 만들고 싶었고 관객들도 이해해 줄 것이라 생각한다.

- 동성애 키스신에 대해서는 불편하게 보는 시각도 꽤 있다.

▲그 장면을 넣을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선 고민이 없었다. 보는 사람마다 취향에 따라 다르다. 특히 여성 관객들은 꼭 빼지 말아달라고 하더라.

- 조인성과 주진모의 키스신 촬영은 어땠나?

▲배우들이 힘들어했다. 주진모는 한 달만 촬영을 미루자고 했다. 찍는 입장에서도 부담이 있었다. 굉장히 필수적인 장면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 장면이 없다면 관객이 남자가 남자를 사랑한다는 것을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캐스팅 단계에서 이미 확답을 받고 시작했다.

조인성은 시나리오 받고 나서 '이 신은 빼면 안 될까요'라고 묻더라. 게이라는 소문이 있는데 더 증폭되면 어떡하냐고 하기에 한마디만 했다. 넌 배우이니까 모든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촬영 전 처음엔 쑥스러워서 웃음이 터져 NG가 났는데 막상 촬영은 한 테이크에 끝냈다. 어설프게 하면 계속 가야 하니 서로 힘들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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