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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면전 선언'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은 누구?

최종수정 2008.12.30 09:40 기사입력 2008.12.29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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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패장군' 군인이었지만 정치가로서 평화정책 실패 경험

[아시아경제신문 강미현 기자]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전면전 선언의 핵심인물인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국방장관.

바라크 장관은 1942년 미시마르 하샤론 키부츠에서 태어나 17세 때인 1959년 군에 입대했다. 이후 근 36년간 중동 등지의 각종 테러 사건을 해결하며 청장년 시절을 보냈으며 1967년 3차 중동전(6일전쟁)과 1973년 욤 키푸르 전쟁 등에 지휘자로 나섰다.

37세에 장군이 된 바라크 장관은 1972년 텔아비브-야포 공항 인질구출 작전 총지휘, 1972년 뮌헨올림픽 선수단을 테러했던 '검은 9월단'의 요인 암살 작전 등에 참여하며 '불패장군'의 명성을 드높였다. 아직까지도 그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훈장을 많이 받은 군인'으로 꼽히고 있다.

1991년 이스라엘 14대 참모총장으로 진급한 그는 1995년까지 직위를 수행하며 여러 작전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았다.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총리 내각의 내무장관으로 드디어 정계까지 진출한 바라크 장관은 라빈이 살해당한 후 시몬 페레스 정권에서 외무장관을 지낸다. 1997년 노동당 당수에 올랐고 1999년 5월 총선에서 56%의 지지를 얻어 총리에 당선됐다.

바라크는 총리시절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중재자임을 자처하며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정권과 협상을 재개했으며 다른 아랍국가들과의 대치상황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는 남부 레바논에서 이스라엘군을 철수시키고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과 평화협상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중동지역 평화와 국민의 공감을 이끌어내진 못했다.

총리시절 그는 팔레스타인의 제2차 '인티파다(무장봉기)'가 시작된 직후인 2001년초 치러진 선거에서 강경파였던 아리엘 샤론 리쿠르당 당수에게 25%나 뒤진 참패를 당했다.

선거 참패 후 정계를 떠난 바라크 장관은 경영 컨설턴트를 하다 지난해 다시 노동당 당수가 됐으며 같은해 국방장관에 취임했다.

강미현 기자 grob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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