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예당-미인도 특집①]이정현-왁스 만든 최준영, '미인도'도 흥행시켰다

최종수정 2008.12.22 10:08 기사입력 2008.12.16 14:00

댓글쓰기

최준영 예당 부사장[사진=예당엔터테인먼트]

[아시아경제신문 황용희 기자] '한국 최고의 프로듀서에서 흥행 영화 제작자로!'

예당엔터테인먼트(이하 예당) 최준영 부사장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때 가수 이정현 왁스 김건모 쿨 등을 프로듀서해 '가요계 미다스'로 성가를 높이던 그가 최근에는 영화 '미인도'를 제작, 24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불황의 국내 영화계에 한 줄기 빛을 던졌다. 톱스타도 출연하지않은 영화로 240만명이라는 수의 관객을 동원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제작된 영화중 손익분기점(BEP)을 넘긴 영화는 단 8편에 불과한 상황에서 '미인도'는 거뜬히 BEP(170만명)을 이미 넘기고 250만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는 어느덧 가요는 물론 영화계에서도 2개 영화(식객, 미인도)를 흥행에 성공한 제작자로 '성공의 꽃무지개'를 띄움으로써 가요와 영화 양대 산업을 천하통일한 제작자로 이름을 올릴수 있게 됐다.

아직은 '성공'이란 단어에 고개를 가로젓는 그는 '그래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자족감에 따뜻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과연 무엇이 그를 성공신화의 주인공으로 끌어올린 것일까? 마케팅과 소재 자체가 전혀 다른 음반과 영화에서 모두 성공신화를 만들어낸 최준영 부사장의 성공코드를 점검해본다.

도전
그는 '도전하는 승부사'다. 결정적인 순간에 결코 물러섬이 없다. 하지만 뒤로 빠져야 할때는 정확히 빠진다. 사업이란 결정적 포인트에서 강약조절을 잘해야 한다는 평소의 생각을 잘 실천한다. 이번 '미인도'때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나서야 한다는 것은 '홍보'와 '마케팅'이었다. 물론 홍보와 마케팅을 관장하는 대행사가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나섰다. 톱스타가 없어서, 또는 영화에 흡인력이 조금 떨어진다고 판단한 그는 이 부문에 사활을 걸었다. 예당 홍보팀을 독려하며 단계적인 마케팅기법을 펼쳐나갔다.

'노출'에서 '고품격 영화'로 또 다시 '중년여성을 위한 영화'로의 3단계 전략을 세워, 한치의 오차도 없이 풀어나갔다.

이는 지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쿨 코요태 이정현 왁스 등 한국 최고의 가수들을 발굴, 기획해 수익을 올렸던 경험들이 큰 도움이 됐다. 당시 그는 이정현의 '와'와 '바꿔'등을 프로듀서해 사회전반적으로 '바꿔'열풍을 이끌어냈고, 20∼40대들이 좋아할 만한 왁스를 발굴, '화장을 고치고'를 한국 최고의 노래로 만들어냈다. 이밖에 2000년대 중반엔 전성기를 넘어선 김건모와 손을 잡고 '미안해요'로 제2의 전성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쿨과 코요태도 그가 절대적인 힘이 됐다. 이때 그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였고, 콘텐츠 사업가로 마케팅과 사업가를 겸하는 '전천후 비지니스맨'이었다.

"처음 제가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웃었지요. 3대 배급사중 한 회사의 투자담당은 '이 사람 저사람 누구나 다 할수있는 것이 영화가 아니다'라는 말로 그를 아프게 했다. 하지만 그에게 이말은 '독'이기보다는 '약'이었다. 이를 계기로 그는 더욱 더 열심히 하게됐고,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원동력이 됐다.

고집
또 그에게는 엔터테이너로서의 '고집'이 있었다.
그가 예당의 부사장으로 부임해서 가장 먼저 한 사업이 바로 영화사업이었다. 쇼이스트와 합병해서 영화사업에 진출한 예당의 첫번째 영화는 바로 '식객'이었다. 2007년 당시 '식객'은 90%이상 제작돼 있었으나 더 이상 투자자가 없어서 영화를 접어야 할 형편이었다. 영화계에서는 한번 스톱하면 더 이상 영화를 하면 안된다는 속설이 있었다. 당연히 '식객'도 손을 대면 안되는 프로젝트였다.

하지만 그는 식객을 완성시켜 300만명이란 관객을 동원했다.
이같은 그의 고집은 '식객'뿐만이 아니었다. 사실 '미인도'도 이곳 저곳에서 모두 거절당한 시나리오였다. 하지만 그는 '시기'와 '소액 투자'만 원칙으로 내세운 후 곧바로 강행했다. 음반쪽에서도 마찬가지. 2000년대 초반 한국 최고의 가수였던 이정현과 왁스 역시, '특이한 경력'과 '아이돌이 판을 치던 시대에 등장한 성인취향 가수'라는 난점을 뚫고 음반흥행에 성공, 그가 손대면 안되는 것이 없다는 통설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전 남들이 못한다고 하면 은근히 '객기'가 발동하죠. 좋은 뜻에서는 '고집'이지만 나쁜 뜻으로는 '무모함'이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전 불가능을 가능케할 때 '희열'을 느낀답니다. 이번 '미인도' 역시 어려움이 많았어요. '노출'을 전면에 내세웠을 때의 부작용과 톱스타없는 '연기파'만으로 갔을 때의 관객들의 반응 등이 큰 어려움이었지요."

하지만 그는 해냈고, 오늘날 영화계에서도 성공한 제작자로 거듭나게 됐다.

야망
그는 앞으로 영화계에 '최준영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는 다소 벅차지만 당찬 야망도 밝혔다.

"투자자들이 예당이 하면, 혹은 최준영이 하면 투자해도 된다는 확신을 갖게 하고 싶습니다. 마치 강우석감독이 하면, 믿고 투자하듯 말이죠. 최준영이란 이름이 '합리적인 대안을 갖는 영화제작자'로 남을 수 있을때까지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어려움도 많겠죠. 힘도 들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거라면 시작도 안했습니다."

그는 또 이번 영화를 만들면서 우리나라 영화계 여건상 소요비용이 10억원에서 15억원규모면 합리적일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단다. 물론 영화규모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지만 인구규모나 요즘 경제여건으로 볼 때 중급 규모의 영화를 많이 만들어 작지만 알찬 수익을 올린다면 영화인들에게도 좋고, 팬들에게도 좋을 것 같다는 것. 더 많은 비용은 '겉치례'일 것 같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특히 영화계에 낀 거품도 문제라고 주장한다. 영화 호황기때 영화제작에 꼭 필요한 돈이외에 여기저기로 빠져나가는 쓸데없는 돈들도 많았던 것 같다는 것이다. 그래서 합리적인 자금집행이 한국 영화 부흥의 첩경이라는 것이다.

"거품들을 모두 걷어내고 작지만 알찬영화를 많이 만들면 팬들이 다시 영화관을 찾을 것이고, 이는 다시 투자활성화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럼 다시 한국영화는 살아날 거예요."

신예 영화제작자지만 자신이 직접 현장에서 느끼고 배우며 터득한 주장이니 만큼 공감하는 영화인들도 많다.
그래도 그는 자만하지 않는다. 항상 초심에서 일하려고 노력한다. 그가 그동안 수많은 인기 콘텐츠를 만들어내는데는 끝없는 노력과 끝까지 초심을 잃지않는 그의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 최고의 '미다스'로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는 최준영. 그의 2009년 계획표에는 새로운 영화 제작스케줄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붉은색으로 체크돼 있는 단어들이 있었다. 바로 '성실'과 '열정' 그리고 '합리적 대안'이었다.



<ⓒ아시아경제 & 스투닷컴(stoo.com)이 만드는 온오프라인 연예뉴스>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