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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세렌디피티’ 경영

최종수정 2020.02.12 13:05 기사입력 2008.12.1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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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사건이 터지고 나면 세상에 말이 많아집니다. 지난번 숭례문 화재 사건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정초에 국보 1호가 불에 타 버렸으니 얼마나 얘깃거리가 많았겠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국민들의 숭례문 출입을 허용했기 때문에 이번 화재는 이명박 대통령 탓이다’ ‘경복궁 앞 해태상이 남산의 화기(火氣)를 막아줬으나 공사를 하면서 이를 치우는 바람에 불이 났다’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때 경복궁 공사를 추진했는데 이번 화재는 이에 대한 하늘의 벌이다’는 등 괴담 수준의 얘기가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러한 ‘숭례문 괴담’에는 우연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담겨져 있는 듯 합니다.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려다 보니 인과관계를 찾게 되고, 인과관계를 찾다보니 이런 저런 스토리가 만들어진 것은 아닐까요.

9·11 테러가 있은 후 인터넷에 떠돌아다닌 네티즌들의 아래와 같은 글을 보면 사람들이 우연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극단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9월11일이라는 날짜를 이루는 숫자를 합치면 11(9+1+1=11)이 된다. 그 날은 1년의 254번째 날이었는데 그 수를 합해도 11(2+5+4=11)이다. 세계무역센터에 처음 충돌한 비행기는 아메리칸 에어라인 11편이었고 그 비행기에는 92명(9+2=11)의 승객이 탑승하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돌진한 비행기에는 65명(6+5=11)이 타고 있었다. 뉴욕 시(New York City)와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 있던 아프가니스탄(Afghanistan), 그리고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역시 각각 11개의 철자로 이루어졌다. 세계무역센터의 쌍둥이 빌딩 역시 11의 형상을 하고 있지 않는가.” (유정식 著 <경영, 과학에게 길을 묻다>에서 인용)
9·11 테러는 치밀한 모의에 의해 저질러진 필연적인 사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티즌들은 이 사건이 왜 하필 9월11일에 일어났느냐는 것을 놓고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인터넷에 유포했습니다. 우연을 얼마나 싫어했으면 필연적인 사건인데도 또 필연적인 이유를 찾아 인터넷에 유포했겠습니까.

왜 우연을 싫어하는 것일까요. 아마도 우연은 비체계적이고, 비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찮게 생각하는 우연에 의해 과학이 종종 큰 걸음을 내디뎠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른바 ‘세렌디피티(Serendipity) 효과’라 불리는 뜻밖의 발견으로 과학이 발전하고 기술이 진보했습니다.

‘세렌디피티’는 영국의 작가 호레이스 월폴(Horace Walpole)이 <세렌디프의 세 왕자(The Three Princes of Serendip)>라는 동화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낸 말로 이 동화는 보물을 찾아 여행을 떠난 인도의 세 왕자가 자신들이 원하던 것은 얻을 수 없었지만, 뜻밖의 사건을 통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를 자신들의 마음속에서 찾아낸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우연은 혐오의 대상이 아니라 받아들이고 활용해야 할 소중한 기회입니다. 특히 21세기를 헤쳐 나가는 기업에 우연은 꼭 필요한 경영자원입니다. 기업들이 그렇게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의성이나 창조성은 필연이 아닌 우연에 의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경영자들이 우연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풋(In-Put) 대비 아웃풋(Out-Put)만 생각하고, 계량화된 숫자만 따지고, 조직의 생산성 향상에만 집착한다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경영자입니다.

정말 멋진 회사로 키워나가길 원한다면 어떻게 ‘세렌디피티’를 이끌어낼까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특히 불황터널에 접어든 지금, ‘세렌디피티’는 정말 필요한 경영자원입니다.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필연만 믿고 경영을 하면 결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일본의 한 회사는 회사 모토를 ‘먼저 쉬고 싫증나면 일하라’고 정했다고 합니다. 그 회사 경영자는 직원들에게 월급뿐 아니라 일할 기분까지 줘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경상이익증가율이 다른 기업보다 평균 4배나 높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글은 어떻습니까. 구글 직원들은 근무시간의 20%는 자기 마음대로 쓸 수 있습니다. 식사 때가 되면 12종류의 식당 중 골라서 갑니다. 두 회사 모두 ‘세렌디피티’를 이끌어내기 위한 고도의 경영전략입니다.

하인호 한국미래학연구원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 코드가 더 잘 보이기 때문에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곁의 변화에서 기회의 창을 발견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는 “허무맹랑한 광고 속에도 미래가 있고 자연의 흐름에도 미래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던 2008년도가 지나고 며칠만 지나면 미지의 2009년도가 시작됩니다. 기존의 틀을 과감히 떨쳐버리고 혼란 속에서 기회를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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