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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현재와 과거와의 대화’

최종수정 2020.02.12 13:05 기사입력 2008.12.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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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보는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옛 역사가들도 자신들의 입장에서 또 자신이 살아가는 시대에 따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습니다. 문제는 어느 것이 올바른 관점이냐가 아니라 사람들이 어느 관점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영국의 역사가 프루드는 ‘역사는 어린 아이의 글자 맞추기와 같아서 무엇이나 좋아하는 말을 이어가면 되는 식’이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말했습니다. 역사를 인간이 머릿속에서 엮어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위험한 수준까지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객관적인 역사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이 지형에 따라 흐르는 모양이 달라지지만 강이 존재하지 않다든지 객관적인 형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역사 인식을 놓고 극심한 대립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 역사 교과서의 좌편향 논란으로 교과서 수정을 둘러싸고 공방이 있었고 보수성향의 단체는 별도의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기도 했습니다.

한 인터넷언론에 실린 ‘역사학계와 경제사학계 간의 논란을 중심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문제’에 따르면 역사라는 학문은 모든 학문에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경제학에는 경제사가, 사회학에는 사회사가, 외교학에는 외교사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이 보는 역사에 대한 평가는 무엇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역사학계에서 역사를 평가할 때는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민족’을 설정하고 경제사학계의 기준은 ‘경제 성장을 했느냐 안했느냐’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보는 시각도 역사학계는 우리 민족에게 나쁜 결과를 낳은 식민지 지배는 잘못된 것이고 일본의 식민 지배가 없었더라도 조선 스스로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반면 경제사학계는 조선 스스로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것은 가정일 뿐 식민 통치가 조선의 근대화 즉 경제 성장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현대사를 보는 시각에서는 더 치열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에서 노무현 대통령까지 역대 대통령들의 공과를 놓고 벌이는 공방도 이와 같은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E.H.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상의 사실을 설정할 때에 필연적으로 해석이 작용한다고 해서, 또 현존하는 해석이 어느 것이고 완전히 객관적이 아니라고 해서 어느 해석이든 차이가 없다든가, 역사상의 사실은 원래 객관적 해석에 의해서 다루어질 수 없다든가 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또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현대사특강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도 국론은 분열됐습니다. 야당은 “특강이 냉전적 사고와 친일발언, 독재행위의 옹호 등 상식이하의 강의로 채워졌다”며 “우리 학생들의 역사의식을 극우적 관점으로 세뇌시키고자 하는 대한민국 교육의 근간을 흔드는 파괴적 행위”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강사로 나선 보수 시각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일례로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특강에서 이승만과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대해 ‘어쩔 수 없었다’는 불가피론을 폈습니다. “박정희가 민주화를 해가면서 경제 발전을 이끌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관점은 왜 양립을 못했느냐 하는 것”이라며 “산업화하는 국가 어디서나 민주주의나 시장경제가 병행한다고 생각하면 역사적 사실과는 어긋난다”고 강조했습니다. 근대화에 따른 불가피한 필연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어제는 안병만 교육과학부 장관이 일선 학교에 배포한 ‘기적의 역사’라는 동영상과 관련해 4·19 민주혁명회 등 관련단체들에 사과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헌법 전문에서도 4·19를 ‘불의를 항거한 민주이념’으로 규정했음에도 동영상에서는 ‘데모’로 폄하했습니다. 또 동영상은 1980년대 역사에서도 광주민주화운동과 6월 항쟁, 남북정상회담 등은 전혀 다루지 않는 대신 서울시의 청계천 복원사업은 상당부분 할애했습니다. 역사교육의 기본적인 자세를 갖추지 못했다는 지적입니다.

역사교육은 어느 한쪽으로 기울거나 치우치면 안 됩니다. 지난 정부에서 편향적인 교과서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해서 다른 한편으로 치우친다는 것은 또 다른 편향 시비를 낳을 뿐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고 있는 역사 인식에 대한 논란은 현대사 교육의 균형을 유지하자는 것이지 좌측으로 기운 것을 우측으로 돌려놓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교과부는 배포한 동영상을 회수하겠다고 합니다. 뒤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다시 카의 <역사는 무엇인가>를 들여다봅니다. 카는 “역사란 결국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 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습니다. 또 “한 시대의 위인이란 그 시대의 의지를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결코 위인은 일부 역사가들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역사는 누군가에 의해 왜곡되어서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경제는 지금 엄청난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우리는 10년 전에도 이와 같은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 같은 경제 시련은 역사가 어떻게 기록할까 생각해 봅니다. 10년 전 우리는 어느 국가보다 조기에 시련을 이겨냈고 지금의 위기도 슬기롭게 극복하리라 기대합니다. 역사는 이를 발전이라고 기록할 것이고 이는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에서 진보이기도 합니다. 누구의 사관을 빌리기 앞서 스스로 중심을 잡는 역사인식이 긴요합니다. 잠시 역사 논쟁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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