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20년 전 ‘생명의 은인’ 기관사 찾았다”

최종수정 2008.12.16 08:35 기사입력 2008.12.05 09:55

댓글쓰기

주인공은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 차재학 기관사로 밝혀져

<속보> “누구라도 그런 상황이라면 아이를 구했을 겁니다. 그래서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도 이름을 안 밝혔는데….”

지난달 코레일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에 “20년 전 생명의 은인을 찾는다”는 방송작가 송문희씨 사연이 올라온 지 한 달 만에 주인공이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 차재학 기관사(51·사진)로 밝혀져 화제가 되고 있다.

“아이가 있었던 곳은 군포역과 의왕역 구간 철길과 철길 사이였습니다.”

그 때 차 기관사가 운전했던 열차는 용산발 서대전행 비둘기호.

그는 용산을 떠나 달리던 중 군포역에서 앞서 가던 열차로부터 ‘아이가 떨어졌다’는 무전연락을 받았다.

그때가 밤 10시가 넘은 시간. 겨울철에다 한밤중이라 당시 기관사였던 한병욱씨(현재 KTX 기장)와 부기관사였던 차씨는 일단 속도를 최대한 줄여 아주 천천히 달리며 아이를 찾기 시작했다. 눈을 부릅뜨고 앞쪽을 응시한 채 라이트를 비췄다.

그런 가운데 의왕역이 가까워질 즈음 철길과 철길 사이에 물체를 발견, 기차에서 내려 가보니 겁에 질린 어린아이가 있었다.

“그 무렵엔 기차에서 아이가 빠지는 사고가 더러 있었습니다. 사고가 나면 보통은 달리는 열차바퀴로 딸려 들어가 위험한 상황으로 이어지곤 했죠. 하지만 그 아이는 철길 바깥쪽으로 튀어나가 있었습니다.”

“철길과 철길 사이엔 전신주며 침목더미 등 적재물이 많았는데 아이는 이런 위험물이 없는 콩 자갈 위에 떨어져 있었던 것이죠.”

차 기관사가 내려가 보니 아이는 전철이 달리는 철길과 기차가 달리는 철길 사이에, 그것도 10m 앞쪽 위험천만한 전신주와 군데군데 쌓아놓은 침목도 피해 부드러운 콩 자갈 위에 떨어져 있었던 것.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선로용 자갈은 큰 돌을 깨서 만든 깬 자갈과 부드러운 콩 자갈 두 가지를 사용했는데 송씨가 떨어진 곳은 마침 콩 자갈이 수북이 깔려 있어 이마의 상처를 빼고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괜찮니? 꼬마야. 아이는 내 목소리를 듣더니 그 제서야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차 기관사는 처음엔 강보에 쌓여 버려진 아이라 생각했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방한을 위해 두툼하게 입힌 우주복이 마치 강보로 보였고, 또 이 옷 덕분에 아이가 덜 다친 것 같았다고 말했다.?

아이를 찾아 줄 때 기관사로 일했던 한병욱씨.
차 기관사는 “그 때 상황은 천운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고 회고하며 “내가 구해준 게 아니라 한병욱 당시 기관사님이랑 다함께 한 일이다. 4살배기 아이가 어느덧 건강하게 잘 자라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니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감회가 남다르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병욱 기관사(경기도 산본 거주)는 현재 코레일 서울지사 서울고속철도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1981년 7월 청량리 기관차 부기관사로 발령 받아 철도청에 몸담기 시작, 1985년 11월 서울기관차 기관사를 거쳐 2003년 11월부터 서울고속철도기관차사무소 KTX기장으로 근무 중이다. 2006년 8월엔 무사고 200만km를 달성한 베테랑 기관사이기도 하다.<연락전화 02-3149-3787, 3571(016-342-0553)>

또 그 때 차장으로 아이를 구해준 차재학 기관사(경기도 일산 거주)는 코레일 서울지사 서울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1985년 6월 서울기관차부기관사로 철도에 몸담기 시작해 1994년 9월 서울기관차 연료관리원, 2002년 5월 서울기관차 부기관사, 2003년 11월 서울기관차 기관사로 발령받았다. <연락전화 02-300-5321, 5322(019-250-4651)>


※다음 글은 '20년 전 은인을 찾는다'는 방송작가 송문희씨의 사연을 접한 코레일 홍보실이 아시아경제신문 등에 보낸 자료다.

“20년 전 제 생명의 은인 기관사님을 찾습니다.”

지난 11월 7일 코레일 홈페이지 ‘고객의 소리’엔 20년 전 열차통로 발판 아래로 빠져 생명을 잃을 번한 위급상황에서 자신을 구해준 기관사를 찾는 장문의 민원편지가 올라왔다.

편지의 주인공은 현재 방송작가로 활동 중인 송모씨(24). 정확히 1988년 11월 8일, 그 때 4살이었던 어린 송씨는 부모님을 따라 제주도여행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사는 곳이 대전이라 열차로 이동 중이었다고 한다. 송씨가 탄 기차는 때마침 임시로 편성된 열차였다. 승객이 너무 많아 연결통로에 서서 간 게 화근이었다.

그 땐 수동열차문이어서 문을 안쪽으로 여닫도록 돼 있었다. 운행 중엔 발판이 계단을 덮고 있다가 정차할 땐 발판이 들어 올려 지면서 계단이 보이고 승객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돼 있었다.

4살배기 송씨는 부모님의 발치 아래서 발판과 바닥을 잇는 고리를 만지며 놀고 있었다. 사고는 순식간에 일어났다. 고사리 손에 이 연결고리가 풀리면서 발판 아래 뻥 뚫린 컴컴한 공간으로 4살배기 아이의 작은 몸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것도 아버지 바로 눈앞에서다.

열차에 비상이 걸렸고 승무원들은 뒤따라오는 열차에 연신 무전을 쳐댔다. 부모님은 다음역인 수원역에 내려 뒤따라오는 열차를 기다렸지만 다음 열차, 그 다음열차도 감감무소식.

그리고 세 번째 열차에서야 “아이를 찾았다. 아이가 살아있다”는 기관사의 무전이 타전됐다.

어머니는 그때까지도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살아있다고 해도 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기관사의 품에 안겨 수원에 나타난 어린 송씨는 이마 위쪽과 발바닥이 찢긴 것 말고는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채 멀쩡한 모습이었다.

송씨는 코레일홈페이지에 이 같은 내용을 올리고 나서 얼마 뒤 당시 자신을 품에 안고 나타났던 기관사와 통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기관사는 “송씨를 발견해 구해준 사람은 열차의 차장이었다”며 “자신은 송씨를 수원역으로 데려다줬을 뿐”이라며 이름도 밝히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그 기관사는 또 “그 때 나는 기관사로 부임한 지 1년여 됐었고, 그 열차차장님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어서 지금은 아마 퇴직했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전해줬다고 한다. 송씨가 찾아야하는 사람이 열차차장님으로 바뀌게 된 사연이다.

송씨는 “사고가 난 때가 이즈음이니 날씨도 추웠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었다. 철길에 기절해 있는 나를 발견하고 구해준 뒤 자취를 감춘 열차차장님을 꼭 찾고 싶다”면서 “그때 아저씨가 살려주신 아이가 이렇게 잘 자라 대학도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활약하고 있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바람을 밝혔다.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