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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오줌 한 방울

최종수정 2020.02.12 13:05 기사입력 2008.12.05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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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오줌 한 방울
인터넷을 뒤적이다 우연히 소변기 밑에 놓여있는 오줌통사진 한 장을 보게 됐습니다. 사진자체도 재미있었지만 ‘오줌 한 방울이라도 통속으로’라는 문구가 흥미로웠습니다. ‘여러분의 오줌은 귀중한 외화를 벌어들입니다’라는 문구도 눈에 띄었습니다.

이 사진에 눈길이 멈춘 순간 깊은 생각에 잠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려웠던 시절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는 취로사업에 하루 수만 명이 몰릴 정도로 실업자가 많았던 시절을 연상하면 누구나 같은 마음을 갖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러나 그때 나라가 무척 어려웠지만 ‘한번 해보자’는 의지만은 충만했던 것 같습니다. 단 1달러라도 곳간에 더 채우기 위해 모든 국민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수출전선에 나선 기억이 새롭습니다.

1970년대로 기억됩니다. 오줌으로 외화를 벌어들인다 해서 학교나 군대, 공중변소마다 오줌 채집통이 있었고 그 주변에는 이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습니다. 소변기 아래 커다란 물통을 바쳐두고 오줌을 수집해 수출했던 것입니다.

이 오줌을 통해 유로키나제라는 중풍치료제를 추출할 수 있었고 이를 수출, 외화를 벌어들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당시에는 “이것도 수출하나?” 할 만큼 이색적인 상품이 많았습니다. 그을음을 비롯해 고양이 가죽, 쥐 가죽, 말 털, 연탄재까지 등장했을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이처럼 수출에 목숨을 걸었던 것은 수출이 아니면 나라의 빈 곳간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국민소득이 70달러 수준의 가난한 나라에서 2만 달러를 넘나들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바로 수출의 힘입니다. 10년 전 외환위기를 극복하게 한 동력 역시 수출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1960년대와 1970년대 수출할 수 있는 것을 모두 수출하도록 수출 지상주의 정책을 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하던 수출은 3분기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전체 성장에 기여하는 정도 역시 내수보다 미약한 상태입니다. 수출쇼크가 경제의 발목을 잡을 위기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수출에 매달려야 하는데 의지만 앞설 뿐 그렇지 못한 것 같습니다. 수출하는 기업에 대한 박수소리도 예전 같지 않습니다. 다시 수출에 매달리는 분위기가 아쉬운 현실입니다.

앤드류 라제기가 쓴 리들(The Riddle)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트레버 베일리스라는 스턴트맨의 얘기가 나옵니다.

그의 얘기는 조선이나 자동차, 반도체 등 굵직한 수출상품도 중요하지만 아이디어도 얼마든지 중요한 수출상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만든 수동발전라디오는 세상을 바꾼 101개 발명품 가운데 20위권에 올랐고 엄청난 물량의 판매실적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스턴트맨으로 활약했습니다. 그는 템스강 한가운데 떠 있는 일파이 섬에서 살았습니다. 1991년 비 내리는 가을밤, 일파이섬에서 TV를 보던 그는 일생일대의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TV에서는 아프리카에서 급속도로 번지고 있는 에이즈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방송되고 있었습니다. 지구상에 4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에이즈로 고통받고 있으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에이즈로 사망한 사람이 2000만 명을 넘으며 해마다 300만 명에 달하는 에이즈 환자가 이 세상에 수백만 명의 고아를 남겨둔 채 숨을 거둔다는 내용을 보며 충격을 받습니다.

그는 그날 일을 이렇게 회상합니다.

“이 프로그램은 날 우울하게 만들었어요. 나는 손에 들고 있는 리모컨으로 얼마든지 채널을 돌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어요. 내레이터는 아프리카인들에게 보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지요.

안전한 성관계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캠페인은 수신기조차 부족한 현실로 인해 장애에 부딪쳤다고 했어요. 나는 그때 아프리카의 외딴 마을에는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며 건전지 값은 터무니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런 아프리카의 현실을 바라보다가 수동발전라디오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이 프로그램을 본 것이 계기가 돼 수동발전 라디오를 발명했습니다. 그가 발명한 수동발전 라디오는 1995년 시장에 첫 선을 보인 후 월 평균 12만개를 파는 히트상품이 됐습니다. 아스피린, 콘돔 등과 함께 ‘세상을 바꾼 101가지 발명품’ 가운데 20위권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이제 스턴트맨 생활을 접고 전업발명가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대영제국 4급 훈작사를 수여받았으며 기계학회에서 수여하는 금메달을 받기도 했습니다. 지금 그는 수많은 영국대학의 요청을 받아 객원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보통사람보다 아주 조금만 더 통찰력을 갖는다면 무언가를 발명할수 있습니다.”

수출강국, 경제강국의 길을 생각케 하는 일화입니다. 평범한 일에 조금만 더 정성을 쏟으면 창의성도 발휘되고, 경제위기도 쉽게 풀릴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조금만 더 통찰력을 갖는다면 의외의 효자수출상품도 나올 수 있다는 기대를 해보게 됩니다. 문제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분위기와 의지가 아닐까요?

‘오줌 한 방울이라도...’ 사진 한 장을 보며 역주행(수출, 기업의 매출실적)의 위험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지혜를 떠올려보는 아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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