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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마지막 잎새

최종수정 2020.02.12 13:05 기사입력 2008.12.04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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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마지막 잎새
윌리암 시드니 포터-그는 오 헨리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모파상, 체호프와 더불어 세계 3대 단편작가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가 쓴 단편 중에 ‘마지막 잎새’가 있습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그리니치 빌리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삶의 의욕을 잃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젊은 여자를 위해 최고의 걸작인 담쟁이 잎을 그리고 죽은 무명화가의 얘기입니다.
어린 시절 마지막 잎새를 읽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병들어 모든 희망을 포기했던 한 여자가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는 모습이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단편에는 폐렴에 걸린 존즈라는 주인공이 나옵니다. 존즈는 살려는 의지를 갖지 못하고 창밖의 잎만 헤아리고 있습니다. 그를 간호해주는 친구에게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면 자신도 죽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의사는 존즈의 이런 생각이 그의 생명을 연장시킬 것으로 판단합니다. 밤새도록 세찬 비와 사나운 바람이 불어댑니다. 다음날 존즈는 창문을 열어달라고 합니다. 창문을 열었습니다. 담벼락에 담쟁이 잎새 하나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것으로 희망을 가진 존즈의 병은 회복되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위층에 사는 한 노인이 죽은 날 친구는 활기를 되찾은 존즈에게 말합니다.

“그 마지막 잎새는 위층 노인이 남긴 마지막 걸작이었네.”

이 단편-마지막 잎새가 오늘 아침 마음에 와 닿는 이유는 우리의 현실이 존즈가 처한 상황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신문을 펴면 쏟아져 있는 경제위기에 대한 분석과 전망들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외환보유액이 아직 2000억 달러나 남아있다고 하지만 그동안 소진된 속도를 보면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12월과 내년 1월 버티는 것이 문제라는 분석도 10년 전 외환위기 때 온 나라가 허둥대는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급기야 내년 3월 위기설까지 나오고 있으니 국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습니다. 정부당국자의 설명대로 그 위기가 그냥 실체없이 부풀려진 설(說)로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만약 2천억 달러 붕괴위기에 직면한 외환보유고가 바닥나면) 우리의 국가운명도 다시 심각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0년 전 외환위기는 한국을 국가부도사태로 내몰았습니다. 건국 이후 처음으로 경제주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국민들은 이 때문에 그때 받은 충격을 ‘경제국치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10년 전 우리는 상실과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말짱하던 기업이 지옥행 열차를 타고 샐러리맨들은 거리로, 노숙자로 내몰리게 됐습니다. 치욕의 나날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환위기와 국가부도 사태가 우리에게 안겨준 시련과 아픔은 가혹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많은 나라로부터, 그리고 전문가들로부터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한 나라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다시 혹독한 추위를 앞두고 있습니다. 불황의 검은 먹구름이 ‘경제의 겨울’을 예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업들의 구조조정 칼바람이 실업대란을 예고하고 있고 심지어는 그동안 신(神)의 직장으로 불리던 공기업들까지 연말부터 수술을 시작한다는 소식입니다. 여기에다 전미경제조사국까지 나서 미국경제가 침체에 진입했다는 공식선언을 할 만큼 우리를 둘러싼 경제여건이 녹록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이명박 대통령이 나서 내년 상반기 우리경제가 최악의 상태가 될 것이라는 경고까지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주변수출시장인 선진국들 대부분이 내년에 마이너스성장이 예상되고 호황을 누리던 개발도상국의 성장도 둔화될 전망이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의 발언은 이보다 더 위협적입니다. 자리의 무게 때문인지 그의 말은 아주 심각하게 들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며칠 전 “상황이 매우 엄중하고 내년 3,4월이 되면 더 어려울 것이다. 현 정부나 체제가 위협 받을 수도 있는 수준”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내년 2월이면 대졸 실업자들이 쏟아지고 3~4월이 되면 많은 중소기업들이 부도가 날 가능성이 높으며 이들이 (상황을) 구조적인 문제로 돌리게 되면 현 정부나 체제에 대한 위협세력이 될 수 있다는 말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심각성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국민들의 억장은 무너지고 있습니다. 경제를 살려달라고 뽑았으니 이명박대통령에 대한 기대는 그만큼 클 수밖에 없습니다. 이 대통령 역시 국민들보다 오히려 시름이 더 깊을 것입니다.

걱정의 단계를 지나 공포심에 짓눌린 국민들을 보며 마지막 잎새의 기적을 생각해보는 아침입니다. 국민들은 지금 마지막 잎새에 등장하는 주인공-존즈처럼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창밖의 잎(외환보유고)만 세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태입니다. 원화가 곤두박질하고 달러가치의 상승은 무서운 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면 또다시 10년 전의 위기상태로 되돌려질까 불안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마치 마지막 잎새가 떨어지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실의에 빠진 존즈처럼 말입니다.

나약해진 국민들의 마음에 활력을 불어 넣을 수 있는 에너지가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인이 마지막 남긴 ‘마지막 잎새’같은 걸작입니다.

오 헨리는 베어먼이라는 노인을 등장시켜 밤에 벽돌 담벽에 담쟁이 잎새를 그려 존즈를 살려냈습니다. 지금 작품속에 등장하는 마지막 잎새 역할을 할 동력은 무너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 신뢰는 100가지 정책보다 중요할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신뢰’를 국민들의 마음에 심어주면 무너져가는 시장은 다시 살아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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