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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정읍사 그 천년의 기다림

최종수정 2020.02.12 13:05 기사입력 2008.11.2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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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정읍사 그 천년의 기다림
금년 초의 일로 기억됩니다. 러시아가 소금 사재기로 골머리를 앓은 적이 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천연가스분쟁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배경은 이렇습니다.
러시아는 금년 초 천연가스 값을 올리겠다며 우크라이나에 대한 공급을 끊었습니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에너지 대란을 걱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자 우크라이나에서는 이에 대한 보복조치로 러시아에 대한 소금 수출을 중단할지도 모른다는 풍문이 나돌았습니다.

러시아 국민들로서는 자국 소금 수요의 40%를 책임지는 우크라이나의 이같은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러시아 남부지역의 한 정부 관료가 지역주민들 앞에서 소금대란이 올지도 모른다는 무책임한 말이 발단이 된 것입니다.
이때 러시아 대부분의 가계에선 소금이 동났습니다. 1㎏당 3루블하던 소금 값이 60루블까지 치솟기도 했습니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금괴를 선호하는 세계의 부자들에 대한 뉴스가 화제가 됐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가 이를 꼬집는 기사를 취급한 적이 있습니다.

부유층의 전례없는 투자열기가 전 세계 금시장을 휩쓸고 있기 때문에 나온 기사였습니다. 투자수요가 엄청나게 증가해 제련소들이 금괴를 충분히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며 도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33년 동안 금시장에서 몸을 담았지만 처음 경험하는 상황이라는 관계자의 고백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미국 아메리칸 버펄로 금화는 재고가 바닥나 품절되기도 했습니다. 웃돈을 주면서까지 금괴를 확보하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금 보관소직원들이 초과 근무하는 경우도 빈번하다는 얘기를 듣고 보면 인간의 금에 대한 욕망, 이익이 있으면 어디든지 쫓아간다는 인간의 속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문순태씨가 쓴 장편소설 ‘정읍사 그 천년의 기다림’이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이 소설에 나오는 등장인물 도림은 돈을 벌기위해 소금 사재기를 합니다.

나라에 위기가 생기면 소금 값이 오를 것이라는 예상 때문입니다. 도림은 사람이 소금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위기가 오면 소금 값이 오를 것이라는 판단을 합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날 밤 도림은 그들이 주고받는 온갖 흉흉한 이야기를 들었다. 올 정초에 여우들이 떼를 지어 사비성 궁중 안으로 몰려왔는데 그중 흰여우 한 마리가 상좌평의 책상위에 올라와 앉아 있었다는 이야기도 처음 들었다.

또 지난 봄에는 궁궐 서남쪽의 사비아에 세 길이나 되는 큰 고기가 죽어 있었고 여름에는 키가 18척이나 되는 거구의 여자시체가 생초진에 떠내려 왔으며 가을에는 또 궁중에 있는 괴목이 사람의 목소리로 곡성을 하듯 울었는가 하면 궁성 남쪽 길에서는 밤마다 귀신들이 슬피 울었다고도 했다. 모두 모골이 일어서는 것처럼 이상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이는 아무래도 나라에 변고가 생길 조짐이라고들 했다.

(중간 생략)

도림은 새벽닭 홰 치는 소리를 듣기가 바쁘게 부랴부랴 주막을 나왔다. 주막에서 흉흉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러나 풍설 따위에 마음이 흔들리지는 않았다.

그는 이번에 집에 돌아가면 소금 값을 변통해서 충분히 소금을 여축한 다음, 가을 대목 때 재미 볼 생각에만 매달렸다.

그는 나라에 큰 싸움이 벌어지면 되레 소금 장사가 잘 될 수도 있겠다 싶기도 했다. 아버지 말대로 아무리 난리가 나도 사람이 소금을 먹지 않으면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세상이 시끄러우면 오히려 부자들의 사재기가 판을 치고 그렇게 되면 소금 값이 오르게 마련이라는 생각이었다. 도림은 이럴 때 소금을 많이 여축해 두면 큰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수익이 뒤따를 것으로 판단되면 지옥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 돈의 생리입니다. 소설속의 등장인물 도림의 소금 사재기도 같은 맥락입니다.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는 것을 보며, 그런 상황에서도 돈 놓고 돈 먹기 게임을 하는 세력의 명멸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아침입니다.

정부가 경기부양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고 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들이 내수부양을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국내에선 재건축 용적룰을 300%까지 높이고 강남재건축 규제와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폐지 방안 등을 내놨습니다. 투기지역 지정도 강남 3구(區)를 제외하곤 다 풀린 상태입니다.

경기부양을 위해 14조원을 또 푼다는 방침도 발표됐습니다. 그러자 강남의 대치, 개포, 잠실동 아파트 중개시장에는 한때 재건축아파트 매도호가가 뛰고 매물이 사라지는 현상도 나타났습니다.

그런데도 부동산 시장의 깊은 잠을 깨우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증권시장 역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외국인들은 자고나면 달러를 빼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원·달러 환율 또한 극도로 불안한 상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원·달러 환율이 1달러에 1500원선 안팎에서 출렁이고 있는 현상은을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은 오게 돼 있습니다. 날이 밝으면 돈 놓고 돈 먹기 하는 세력은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주막에서 흘러나오는 흉흉한 소리에 마음이 흔들리면 기회는 또 떠나갈 것입니다. 새벽닭 홰 치는 소리가 나면 도림처럼 새로운 기회를 만들려는 세력이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존 상식에서 벗어난 끊임없는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를 헤쳐나가는 지혜가 무엇인지 생각하는 주말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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