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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朝三暮四, 朝四暮三

최종수정 2020.02.12 13:05 기사입력 2008.11.2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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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朝三暮四, 朝四暮三
송나라에 저공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狙)는 원숭이를 의미합니다. 그 이름이 말해주듯이 저공은 많은 원숭이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가족의 양식까지 퍼다 먹일 정도로 원숭이를 좋아 했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들은 저공을 따랐고 마음까지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공의 가세(家勢)가 기울고 말았습니다. 할 수 없이 원숭이에게 주던 도토리를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워낙 많은 원숭이를 기르다보니 먹이를 감당하기가 어려워지게 된 것입니다. 저공은 꾀를 냈습니다.

그러나 먹이를 줄이면 원숭이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원숭이에게 이런 제안을 했습니다.

“너희들에게 나누어 주는 도토리를 앞으로는 아침에 3개, 저녁에 4개씩밖에 줄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러자 원숭이들은 화를 냈습니다. 아침에 도토리 3개로는 배가 고프다는 불만이었습니다. 저공은 다시 원숭이들에게 다른 제안을 했습니다.

“그럼 아침에 4개, 저녁에 3개씩 주마.”

그러자 원숭이들은 모두 기뻐했다고 합니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난 배경은 이렇습니다. 내용이 말해주듯 원숭이를 빗대서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할 때 이 고사성어를 사용합니다. 개수의 차이가 없는데 그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좋아하는 원숭이를 빗댄 말입니다.

물론 변덕이 심한 사람을 빗대거나 똑똑한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을 속임수로 넘기는데 비유되기도 합니다.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농락할 때도 이 고사성어를 씁니다.

이 고사성어에서 보듯 원숭이는 조삼모사(朝三暮四)를 택했습니다. 당장 주어지는 많은 쪽을 택한 것입니다. 현재에만 급급해 미래의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원숭이 같은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를 설명할 때 이 말을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침에 3개 받고 저녁에 4개 받는 것이나 저녁에 3개 받고 아침에 4개 받는 것이나 합산하면 7개로 같습니다. 그래서 원숭이를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의 상황은 다른 것 같습니다. 하루에 모두 7개 받는 것은 같지만 아침에 4개 받는 것이 저녁에 3개 받는 것보다 유리하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침에 3개 받아먹고 저녁에 4개를 받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4개 받는 것이 더 유리하다는 것을 아는 원숭이가 더 지혜로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미적거리다가는 다 놓치고 말테니 챙길 것은 가급적 빨리 챙기라는 말입니다.

경제가 잘 돌아갈 때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요즘 같은 격변의 시기에는 하루에, 그것도 시간을 다퉈 민감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만들어진 유사고사성어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출근길 한 중소기업인에게서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었습니다. 거래하는 중견기업이 자금난으로 심각한 위기상황에 빠져 들었으며 대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였습니다.

가장 큰 거래처이니 이 대금을 받지 못하면 자신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대물(代物)이라도 받아놓았을텐데 후회스럽다는 말이었습니다.

밀린 임금과 관리비를 구하기 위해 은행을 찾아갔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대출상담을 해봤지만 시원한 대답을 듣지 못했습니다.

상황이 급한 터라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점장실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그 지점장의 대답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미안하지만 좀더 두고 기다려보자는 마지못해 하는 소극적인 답변이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은행돈을 쓰라고 권하던 그였기에 배신감은 더 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나도 원숭이처럼 조사모삼(朝四暮三)을 택할걸...”

정부에서는 연일 중소기업지원을 강조하지만 중소기업현장에선 이런 상황입니다. 바닥이 난 돈줄에 적지 않은 중소기업인들이 이처럼 피 말리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렇듯 현재의 상황은 어려움의 연속입니다. 대기업도 그렇고 중소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의 어려움에 대한 서민들의 두려움은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고나면 무슨 일이 터질지 알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호롱불 앞에 선 하루살이신세에 비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 내일보다는 오늘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머지 않아 닥칠 미래를 준비하기보다는 당장 눈에 보이는 것을 챙기기에 급급한 세상이 됐습니다. 너를 위한 나보다는 나를 위한 너를 먼저 생각하게 됐습니다.

기업들이 불황의 터널 속에서 미래에 대비하기보다는 현금 확보에 열중하는 것이나 투자보다 구조조정에 나서는 현상이 이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증권시장에서 데이트레이딩이 기승을 부리는 현상도 같은 맥락입니다. 단타매매를 통해 하루에 수차례씩 수익을 창조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입니다. 개인매매 고객이 많은 키움증권이 전체 매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최근 15%로 껑충 뛴 것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朝三暮四, 朝四暮三을 떠올리며 불황을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길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 가지시기 바랍니다. 좀더 미래를 보며 뛰는 한국인의 모습을 떠올려보는 주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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