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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자살을 허락했다?

최종수정 2008.10.05 18:17 기사입력 2008.10.05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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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은 전염성 강해···유명인 사망과 동일시 연쇄 사건 우려
악플 금지 등 법 정비로는 막을 수 없어···자살 몰고간 사회구조 개선해야


‘자살’ 쇼크에서 좀처럼 헤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유명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로 이미 일반인들의 유사 자살 사건도 벌어지고 있다. 악성 댓글, 찌라시 등 익명성을 이용한 무분별한 남 헐뜯기가 원인으로 꼽힌다. 세상에 대한 원망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우리나라 자살 사망자는 인구 10만명당 24.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최고 수준이라고 한다. 자살자가 앓는 우울증 진료 실적도 2000년 이후 해마다 늘어나는 추세다. 2000년만 해도 20만명대였던 연간 우울증 진료인원은 지난 2007년 50만명대를 넘어섰다.

인터넷·IT업계는 교육계, 정치권은 물론 전 사회적으로 자살을 막기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언론 보도를 막고, 누리꾼들의 악플을 막는다고 자살이 줄어들 것으로는 보기 힘들어 보인다.

미국의 언론가 말콤 글레드웰은 그가 쓴 ‘티핑포인트(21세기북스 출간)’라는 책에서 “자살은 전염성이 강하며, 이미 유명인들의 자살은 자살을 꿈꾸는 잠재적인 희생자에게 자살을 허락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명인들의 자살은 일반인들에게 섬뜩하고 무서운 단어가 오락 수준과 같은 매우 친숙하고 사소한 것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결국 또 다른 자살을 부추기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자살이라는 현상 자체를 해결하기 보다는 자살이 일상사가 되어가고 있는 사회적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설명하고 있다.

다음 내용은 ‘티핑포인트’의 자살과 관련한 내용 전체를 발췌해 옮겼다.

1960년대 초반 미크로네시아에서 자살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하지만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어느날 갑자기 자살이 급격히 해마다 치솟더니, 마침내 1980년대 말경 미크로네시아의 인구당 자살률은 세계의 어느 곳보다 높아지게 되었다.

미국에서 15세에서 24세에 이르는 남자들의 자살률은 인구 10만명 당 약 22명이었다. 미크로네시아의 자살률은 10만명당 160명이었다. 이것은 일곱배나 높은 비율이었다. 이 수준에 이르면 자살은 가장 사소한 사건에 의해 폭발되는 평범한 일이 되어 버린다. 시마가 상심한 것은 아버지가 그에게 고함을 질렀기 때문이다. 이것은 전혀 유별난 일이 아니었다.

이 섬의 10대들은 자기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와 사귄다는 이유로 자살을 했다. 또는 술을 마시는데 필요한 돈 몇 푼을 부모가 주지 않는다고 자살했다. 한 열아홉 살짜리는 부모가 졸업 가운을 사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스스로 목을 맸다. 열일곱 살짜리는 형에게 너무 시끄럽게 군다는 꾸중을 들었다는 이유로 목매달았다. 서구 문화에서 대단히 희귀하고 임의적이고 상당히 병적인 현상이, 미크로네시아에서는 그 나름의 특수한 규칙과 상징을 지닌 사춘기의 의식처럼 되어 버렸다.

사실상 이 섬에서 발생한 모든 자살은 시마의 이야기에서 약간 변형된 형태이다. 희생자들은 거의 모두가 남자였다. 10대 후반의 이들은 결혼하지 않았고 집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 무모한 사건은 어김없이 가정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여자 친구나 부모와 말다툼을 하는 것이 그런 사례였다. 이런 경우의 희생자들중 4분의 3은 이전에 자살은커녕 자살하겠다고 위협한 적도 없었다. 자살노트에는 우울증을 표현하려 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상처받은 자부심과 자기 연민과 부당한 대우에 대한 항의가 적혀 있었다. 자살 행위 그 자체는 전형적으로 주말 밤에 발생했으며, 대체로 친구들과 한바탕 술을 마신 뒤였다.

불과 몇 건을 제외하고 모든 희생자들은 마치 자신의 목숨을 빼앗는 정확한 방식에 관한 약정서가 있는 것처럼 동일한 절차를 준수했다. 자살자는 외떨어진 곳이나 빈 집을 골랐다. 밧줄을 가지고 가서 올가미를 만들지만 전형적인 서구의 방식인 공중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었다. 자살자는 나뭇가지나 창문, 문고리에다 올가미를 매고 그곳에 기대서서, 자기 몸무게로 인해 올가미가 목을 단단히 조르게 됨으로써 머리로 피가 흐르는 것을 차단했다. 무의식이 뒤따른다. 죽음은 산소 결핍증의 결과이다. 말하자면 머리로 흐르는 피가 부족하여 죽게 되는 것이다.

인류학자인 도널드 루빈스타인은 미크로네시아에서 이런 의식은 그 지역 문화에 내재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자살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그 생각 자체가 팽배해지고, 점점 더 어린 소년들에게 감염되면서 행위 그 자체를 변형시키게 된다. 그럼으로써 생각조차 할 수 없던 것이 생각할 만한 것으로 어느새 바뀌게 되었다. 루빈스타인은 일련의 탁월한 논문에서 미크로네시아인의 전염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사춘기 청소년들 가운데서 자살의 관념화는 미크로네시아의 특정 지역에 널리 퍼져 나가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근래에 들어와서 자살을 표현한 대중적인 노래가 작곡되어 미트로네시아 방송국에서 전파를 타고 그 지역으로 퍼져 나가고, 낙서에서도 표현되고, 티셔츠에도 장식되고, 고등학교 벽에도 나타나게 되었다. 자살을 시도했던 많은 어린 소년들은 여덟 살에서 열 살 때 처음으로 자살에 관해 듣고 보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자살 시도는 모방이거나 실험 삼아 놀이하는 기분으로 행해진 것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열한 살짜리 소년은 자기 집에서 목을 맸는데 발견되었을 때는 이미 무의식 상태였고 혀가 쑥 나와 있었다. 나중에 그는 ‘시험 삼아’ 목을 매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죽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비록 그런 실험이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말이다. 다섯 살에서 여섯 살 정도 어린 소년들에 의한 모방적인 자살 시도가 최근 들어 트룩에서 보고되었다. 미크로네시아에서 최근 발생한 어린 사춘기 청소년의 자살의 여러 사례는 분명히 그런 실험의 결과였다. 따라서 이들 지역 사회에서 자살이 점차 증가함에 따라, 자살이라는 생각 그 자체가 젊은이들에게 매혹은 아니더라도 친숙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그런 행위의 치명적인 결과는 사소한 것으로 취급되는 것 같다. 특히 어린 소년들 가운데서 자살 행위는 거의 오락에 가까운 실험처럼 되었다.’

이 기록은 대단히 오싹한 느낌이 든다. 자살은 이처럼 사소한 것으로 간주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자살에 관해 정말 섬뜩한 것은 그것이 얼마나 익숙한 것처럼 되는가라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는 젊은이들이 실험이자 모방과 반항의 기분으로 참여하는 자기파괴라는 감염적인 파급 효과를 보게 된다. 또한 10대들 가운데서 다소 중요한 자기 표현의 한 형태가 되어버린 이 무심한 행동을 보게 된다.

자살을 연구한 사람들의 관찰에 따르면 어떤 장소에서 어떤 특정한 상황 아래서 한 사람이 자기의 목숨을 앗아가는 행위가 전염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자살이 자살을 불러온다.

이 분야의 선구자는 샌디에이고에 있는 캘리포니아 대학의 사회학자 데이비드 필립스이다. 데이비드 필립스는 자살에 관한 수많은 연구를 수행했으며, 연구를 해나갈수록 이전 연구에 비해 훨씬 더 매력적이고 정말 그럴까하는 생각이 드는 결과를 내놓게 되었다.

그는 194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에 이르는 20년 동안에 미국의 가장 유수한 신문의 일면을 장식했던 자살에 관한 이야기들을 목록화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그 시기 동안에 발생했던 자살 통계치와 연결시켜 보았다. 이 두 가지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내고자 한 것이었다.

어김없이 두 가지 사이에 관계가 있었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실린 직후 신문에 제공되는 지역에서의 자살률이 껑충 뛰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자살 이야기의 경우 전국적으로 자살 비율이 뛰었다. (마릴린 먼로의 죽음 뒤에 일시적으로 전국적인 자살 비율이 12% 증가했다)

그런 다음 필립스는 자동차 사고에서 실험을 반복했다. 그는 로스엔젤레스 타임스에서 샌프란시스코 신문에 이르기까지 일면을 장식한 자살 이야기를 뽑은 후에 캘리포니아 주의 교통사고 사망자와 연결시켜 보았다. 그는 여기서도 동일한 패턴을 발견했다. 세상이 다 아는 대단히 유명한 자살이 있었던 바로 그 다음날 교통사고 사망자의 숫자는 예상치보다 평균 5.9%가 높아졌다. 자살 이야기가 실린지 이틀째는 교통사고 사망자가 4.1% 높아졌다. 사흘째에는 3.13%가 높아졌으며 나흘째는 8.1% 높아졌다. (열흘이 지날 무렵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은 정상으로 되돌아갔다)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방식의 하나는 고의적으로 충돌 사고를 내는 것이었다. 이런 사람들은 대단히 유명한 사람의 자살로 인한 감염 효과에 예민해져서 인습적인 수단으로 자살을 뒤따랐다.

필립스가 말하고 있는 이런 종류의 감염은 합리적이거나 심지어 반드시 의식적인 것만도 아니다. 또한 설득력 있는 논쟁과 흡사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그보다는 훨씬 미묘하다.

“신호등 불빛을 기다리면서 빨간불이 되었을 때 가끔씩 나는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너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말한다.

“그때 누군가가 신호등을 무시한다면 나 역시 그렇게 한다. 이것은 일종의 모방행위이다. 나 역시 일탈 행동을 하고 있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그렇게 행동하도록 허락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의식적인 결정일까?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도 한참 후에나 나는 그 차이를 곰곰이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 당시 우리는 자신의 결정 중 얼마나 많은 부분이 의식적이고 무의식적인지 알지 못한다. 인간의 결정은 미묘하고 복합적인 것이기 때문에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필립스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목숨을 끊은 어떤 유명한 사람의 결정은 이와 같은 효과를 미친다. 그들의 죽음은 다른 사람들, 특히 자기 생각이 취약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미숙함이나 정신적인 질병이 일탈적인 행동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이다.
“자살 이야기는 자기 문제에 대한 특수한 반응을 자연스럽게 선전하는 형태이다.”

필립스는 계속 말한다.

“우리는 불행하고, 결심하기 힘들어 하는 모든 사람들을 알게 된다. 그들은 늘 우울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런 고통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런 고통에 대처하는 다양한 반응을 선전하는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다. 자살 이야기는 다른 형태의 대안을 제공한다.”

필립스가 말하는 ‘허락자(Permission-Giver)’는 자신이 지닌 개성의 설득력을 통해 입 선전의 감염에 티핑 포인트를 점화시키는 세일즈맹의 기능에 상응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자살한 사람들은 -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죽을 수 있도록 허락해준다 - 자살의 감염에서 티핑포인트로 기능한다.

이러한 허락자에 대해 흥미로운 점은 그들이 엄청나게 특수한 존재라는 것이다. 자동차 사망 연구에서 필립스는 분명한 패턴을 찾아냈다.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단독 충돌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는데, 이때 희생자는 운전자였다. 자살, 살인에 관한 이야기는 다중 충돌 사고를 증가시켰으며 이때 희생자는 운전자와 동승자까지 포함되었다. 젊은 사람의 자살에 관해 이야기가 나오면 젊은 교통사고 사망자가 증가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나이든 사람들의 자살 이야기가 나오면 보다 나이든 사망자의 수가 증가되었다. 이런 패턴은 여러 경우에서 입증되어 왔다.

예를 들어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자기희생제물로 자살을 한 숫자가 뉴스를 장식하자, 이것이 그 다음해에 걸쳐 82명의 자기희생에 의한 자살로 점화되었다. 최초의 자살 행위로 인한 이런 ‘허락’은 일반적으로 취약자들에게만 초래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특정한 방식으로 죽음을 선택했던 특정한 상황에 처해진 특수한 사람에게 특수한 것으로써 고도로 세부적인 지침에 따르고 있다. 이것은 단지 제스처가 아니다. 이것은 웅변이다.

1960년 영국에서 또 다른 일군의 연구자들은 자살 시도 이후에 중앙 정신과 병원에 입원했던 135명을 분석했다. 이들은 이 집단이 사회적으로 서로 강력하게 연계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동일한 사회 서클에 속했다. 연구자들은 이것은 우연한 일치가 아니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런 현상은 자살이 무엇인지에 관한 본질을 증언한 것으로서, 자살은 공통된 하위 문화 집단 구성원들 사이에 통하는 개별적인 언어라는 것이다. 저자의 결론은 자세히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

자살을 시도한 많은 환자들은 지역 사회의 특정한 구역 출신들이다. 이곳에서는 대체로 자신을 향한 공격성이 특정한 종류의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인정되고 있다. 집단의 이런 행동은 그 밖의 다른 문화적인 패턴과 일치하고 이해될 만한 것으로 간주된다.····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특수한 상황에 처한, 즉 대체로 공궁에 처한 그 개인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힘든 상황에 관한 정보를 전달하고 싶어하고, 처음부터 새로운 의사소통 매체를 만들어낼 필요가 없다는 결론이 뒤따른다·····. ‘자살 미수의 하위문화’에 속한 그 개인은 이미 형성되어 있는 수단을 통해서 그런 행동을 실행할 수 있다. 그에게 요구되는 것이라고는 그런 행동을 통해서 감행하는 것뿐이다. 이 과정은 근본적으로 여태까지 구어에서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나 흡사하다.

다른 곳에 비해 좀 더 심각한 차원이긴 하지만 미크로네시아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서구에서 자살이 일종의 거친 언어라고 한다면 미크로네시아에서 자살은 놀랄 만큼 표현적인 의사소통의 한 형식이며, 의미와 뉘앙스가 풍요하고, 더할 나위 없이 잘 설득된 언어이다.

루빈스타인은 6000명 정도가 모여사는 에베에라는 미크로네시아의 한 섬에서 일어난 이상한 자살 형태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1955년과 1965년 사이에는 섬 전체를 통해 한 건의 자살도 없었다. 그러다 1966년 5월에 열여덟 살 난 소년이 자전거를 훔쳤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가 감옥에서 목매달아 자살했다. 하지만 이 경우는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런데 1966년 11월 이 섬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출신의 카리스마를 가진 귀공자의 죽음이 있었다. R은 두 명의 여자와 만나고 있었는데, 두 여자 모두에게서 이미 한 달 된 아이가 있었다. 그는 둘 사이에서 마음을 결정하지 못한 채 낭만적인 절망으로 인해 목을 맸다. 그의 장례식에서 두 연인은 최초로 상대방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의 무덤에서 기절했다.

R이 죽은 뒤 사흘이 지나 또 다른 자살이 있었다. 이번에는 스물 두 살 난 남자로 평탄하지 못한 결혼 생활로 인해 자살했다. 이로 인해 과거 12년 동안 한 번도 자살이라고는 없었던 지역에서 일주일 사이에 두 번의 조종이 울렸다. 이 섬의 의사는 이렇게 적어놓았다.

“R이 죽고 난 뒤 많은 소년들이 그를 꿈꾸었으며 꿈속에서 R이 그들에게 자살하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그 다음 13년 동안 25번의 자살이 뒤따랐는데, 대부분 몇 주일 동안에 서너 명의 자살이 무더기로 이어졌다. 1975년에 이 섬을 방문했던 한 인류학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여러 명의 자살 희생자와 자살 미수자들은 과거의 모든 자살 희생자들이 한배에 타고 이 섬을 돌면서, 잠재적인 희생자들에게 망자들과 합류하기를 권하는 환상을 보았다고 말했다”

R과 비슷한 형태의 이야기가 되풀이해서 부상되었다. 여기, M이라는 남자 고등학생의 자살 노트가 있다. 그는 기숙학교에서 한 여학생과 사귀었다. 다른 여자 친구는 에베에에 있었다.

첫 번째 여자 친구가 학교에서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자 두 여자 친구가 동시에 같은 섬에 있게 되었다. 에베에 섬 젊은이들 사이의 하위 문화로 볼 때 자기 목숨을 끊는 빌미가 될 복잡한 관계가 뚜렷이 드러나게 되었다.

“N과 C(두 명의 여자친구)에게 안녕을 고하며. 두 사람 모두와 함께 보냈던 시간을 감사하면서.”

이것이 M의 유서의 전부였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에 있어 전후 맥락은 그 이전에 이미 R이 형성해 놓았기 때문이다. 에베에 전염성에서 R은 티핑포인트를 가져온 사람이자 세일즈맨이었다. 그의 경험은 그를 뒤따른 사람들의 경험 위에 다시 씌어졌다. 그가 지닌 개성의 힘과 죽음의 상황은, 그가 죽고 난 뒤에서 오랫동안 모델이 되는 힘으로 결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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