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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어' 이성한 감독, 37살에 이룬 성룡 키드의 꿈

최종수정 2008.09.01 08:07 기사입력 2008.08.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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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괴짜 감독이 갑자기 충무로에 나타났다. 영화 '스페어'를 연출한 이성한 감독은 몇 년 전만 해도 건설회사에 다니던 샐러리맨이었다. 다른 직장인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를 너무나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이성한 감독은 아내와 아들을 둔 가장임에도 미련 없이 안정적인 직장을 버리고 영화 현장으로 뛰어들었다. 누구나 말하듯 '미친 짓'이었다.

아시아경제신문과 만난 이성한 감독은 수염만 빼면 영락없는 '과장님'이었다. 잘 빼 입은 정장 사이로 샐러리맨의 '포스'가 넘쳤다. "정장이 신체의 약점을 잘 가려주기 때문"이라고 말했지만 충무로와 아무런 관련 없이 홀로 뛰며 영화를 만든 신인감독이 익명의 관객들과 만나기 위해 갖춘 예의에 가까웠다.

이성한 감독은 자신감을 애써 억누르며 겸손함으로 다시 한번 예의를 갖췄다. 형식적인 꾸밈은 아니었다. "사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됐을 때에도 인터뷰 제의가 있었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영화를 세 편 정도는 만들어야 뭔가를 정리해서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겨우 영화 하나 만들고 이렇다 말하는 것도 우습잖아요."

부양할 가족을 둔 가장이 갑자기 영화감독이 된 건 어린 시절부터 품어온 영화에 대한 동경 때문이다. "어렸을 때 '킹콩' '죠스' '챔프' '슈퍼맨' 등을 봤던 기억이 나요. 어찌나 영화를 좋아했던지 명절 때 부모님 따라 시골에 갈 때도 꼭 극장에 가자고 조르곤 했죠. 중학생이 되고 나선 주말마다 극장을 다녔어요. 성룡의 '쾌찬차'는 비디오테이프가 닳고 또 닳도록 본 영화죠. 성룡을 너무 좋아해서 출연한 영화는 초기작까지 죄다 찾아서 봤어요. 성룡에게 배운 게 아주 많아요."

영화감독의 꿈은 집안의 반대를 넘어서지 못한 소년은 결국 평범한 샐러리맨이 됐다. "영화를 포기하겠다"는 맹세 덕에 백수로 지내며 7년의 연애 끝에 결혼도 했지만 직장에 들어가서도 꿈은 좀처럼 접을 수 없었다. "서른다섯 때였는데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내에게 말했더니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도 걱정을 많이 했죠. 처음 준비했던 영화가 '첩혈쌍웅' 비슷한 느낌의 눈물 나는 영화였는데 준비하다 잘 안 됐거든요. '스페어'도 시나리오를 보여주니 굉장히 걱정하더라고요. 그래도 부산영화제에서 보고 나선 재미있다고 말해주더군요."

이성한 감독에게 있어서 영화 '정사' '짝패' 등을 찍은 김영철 촬영감독은 스승과도 같은 존재다. 1998년 '정사'를 보고 감탄한 그는 그해 연말에 태어난 아들과 영화 '쉬리'를 본 후의 충격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아내 몰래 1년 코스 강좌를 들으며 10대 시절의 꿈을 되살렸다. "2005년쯤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 '소나기'를 1년 정도 준비하다 캐스팅 문제로 곤란을 겪던 때였는데 김영철 감독이 일본에서 제작하는 비디오용 영화를 하나 찍어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배경은 한국이고 일본배우만 나오면 된대요. 그걸 준비하면서 만든 게 '스페어'예요."
영화 '스페어'의 한 장면

'성룡 키드' 이성한 감독이 지인들로부터 23억을 빌려 만든 데뷔작 '스페어'는 이색적인 고추장 액션영화다. 새까만 정장 입은 남자들이 누아르 액션 같은 비주얼 속에서 국악의 리듬에 맞춰 액션 버전의 '별주부전'을 연출한다. 틈틈이 새어 나오는 유머와 국악의 추임새 같은 장난스런 내레이션도 있고 장난기 가득한 감각적인 편집도 있지만 액션 장면만큼은 인위적인 편집을 줄이고 최대한 묵직하게 찍었다. "편집 기술을 이용하면 촬영도 쉽고 연기도 쉽지만 성룡이 그랬던 것처럼 액션 자체를 끊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다"고 감독은 설명한다.

부산영화제 상영 이후 개봉을 틈틈이 노리던 이성한 감독은 대형 배급사를 거치지 않고 직접 배급에 나섰고 한 차례 개봉을 미룬 후 시사회의 호평 덕에 개봉관을 전국 60개로 늘렸다. 한때는 개봉 자체가 꿈이었으나 이제는 "일본 개봉에 힘을 실어줄 정도의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기대까지 품을 수 있게 됐다. 갈 길이 바쁜 이성한 감독은 벌써부터 두 개의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형제의 이야기를 다룬 누아르풍의 '소나기'와 '스페어'의 뒷이야기를 다룬 속편이다. 괴짜 신인감독은 지금 영화 때문에 몹시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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