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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전사들 밤낮없이 뛰었다

최종수정 2008.08.12 14:35 기사입력 2008.08.08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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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60년 수출60년-⑦] 해외시장 개척첨병 KORTA(중)
바이어 초청 호텔·택시비등 자비충당
품질 자신없는 기업들 수출 설득까지
바이어, 직원태도에 감동받아 계약도


1965년 문을 연 코트라(KOTRA) 방콕 무역관 건물
수출시장 개척의 첨병이었던 코트라(KOTRA)였던 만큼 박정희 대통령의 관심은 지대했다.

박 대통령은 집무가 끝난 늦은 시각에 아무런 예고 없이 코트라를 찾아 직원들에게 바이어 내방 실적 등을 물어보곤 했다.

1964년 코트라 수출입 알선 창구에서 일했던 이심씨(현 주택문화사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과의 일화를 밝힌 바 있다. 당시 미혼이었던 이 씨는 약혼녀와 데이트 약속을 위해 서둘러 빌딩 계단을 내려오는 순간 낯익은 얼굴과 마주쳤다.

'박 대통령과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한 번 확인하려는 순간 묵직한 힘에 밀렸고 그 사람은 10여명의 검은 양복을 입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위층으로 사라져버렸다. 뒷날 알게 됐지만 대통령을 닮았다고 생각된 그 사람은 실제로 박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을 비롯한 온 국민의 기대 속에 해외로 파견된 코트라 전사들은 수출계약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뛰어들었다.

1978년 동남아 한 국가의 무역관장이었던 이종건씨는 이 나라가 900만달러 규모의 대형 바지선을 입찰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평소 잦은 술자리를 가지며 친해왔던 구매 담당관을 은밀히 만났다.

경쟁국보다 빨리 정보를 입수하고 경쟁사의 응찰가격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상대는 "선박가격 5%를 커미션으로 달라"고 요구했고, 이씨는 즉석에서 그러겠노라고 답했다. 국내업체의 의중을 물어보기는 커녕 성사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정보부터 챙기고 볼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이 씨는 경쟁국보다 무려 60일이나 빨리 정보를 빼돌렸고 입찰 마감 1시간 전 경쟁사의 응찰가격까지 알아냈다. 당연히 바지선은 한국의 H사에게 낙찰됐다. 그러나 며칠 뒤 그 구매담당관이 덴마크 선박 입찰과 관련한 비리로 조사받던 중 이 사실이 발각돼 입찰은 무효가 돼 버렸다.

조사활동 다음으로 코트라가 공을 들인 일은 해외의 바이어들을 한국에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1960~1970년대 당시 바이어들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는 "살만한 물건이 없고 음식이 불결하며 신변안전 보장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바이어들을 '유혹'하기 위한 온갖 방법이 동원됐다. 관광, 접대는 물론 한국행 왕복 비행기표를 끊어주고 서울 체류기간 동안 호텔비를 대주기도 했다.

1969년 코트라(KOTRA) 브뤼셀 무역관 직원들이 바이어와 수출 계약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바이어가 김포공항에 도착하면 그 순간부터 코트라 직원이 항상 동행했다. 공항 짐꾼의 삯을 대신 내주거나 택시값을 부담하는 일은 당연히 코트라 직원들이 도맡아 해야만 했다. 이러한 비용은 본사에 청구할 수 없었고 회사에서도 먼저 지원해 주지 않았다. 직원의 개인 주머니에서 털어내야 했다.

당시 코트라 직원의 월급은 6700원으로, 2400원 하숙비를 내고 양복 1벌(1700원)을 사도 퇴근길에 '막걸리 한잔'을 즐길 수 있을 정도였지만 연일 빠져나가는 바이어들에 대한 '잡비'를 내고 나면 생활은 쪼들리기 마련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공을 들어 바이어를 서울로 불러들이고 나면 또 다른 장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품질에서 자신이 없던 국내 메이커들의 우유부단한 망설임이었다.

코트라 공채 2기 출신인 장재균씨는 1965년 일본 고베철강의 대미 수출량 중 90%를 사가는 미국인 바이어를 서울로 데리고 오는데 성공했다. 미국인 바이어는 철판에 아연을 도금한 함석판을 한국에서 싸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듣고 한국을 방문했다.

장 씨는 함석을 생산하던 일신제강과 연합철강에 전화를 걸어 수출을 알선했다. 그러나 두 회사의 공통된 대답은 "우리가 미국에 수출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었다.

예상치 못한 벽에 부닥친 장 씨는 고민 끝에 바이어를 이끌고 무작정 일신제강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일신제강측과 몇 시간의 설전이 오갔다. 일신제강의 태도에 의아해하던 바이어는 장 씨의 진지한 태도에 감동 받아 '시험 삼아' 100t의 주문을 냈다.
우리나라 철강 제품의 첫 번째 대미 수출 계약은 이러한 우여곡절을 통해 이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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