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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한맨 카리스마' 非은행서도 빛난다

최종수정 2008.07.07 11:19 기사입력 2008.07.07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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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금융인맥] 금융계 외인부대 신한은행
기업식 경쟁력으로 무장.. 라응찬회장 대표적 인물
증권·카드분야서도 활약.. 경쟁사 앞다퉈 '벤치마킹'


신한금융그룹은 금융가의 삼성으로 통한다. 신한 브랜드를 내건 은행, 증권, 카드, 보험, 캐피털 등 모든 부문에서 뚜렷한 기업식 경쟁력이 배어나오고 출중한 인재들을 배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신한출신 DNA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조그만 은행이 불과 25년 만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초대형 금융그룹으로 성장시키는 저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기존의 은행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고객을 찾아나서며 닦은 '신한웨이'는 이후 다른 은행들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으며 이제는 자산규모가 200조원이 넘는 당당한 금융그룹으로 우뚝 섰다.

무엇이 지금의 신한을 만들어낸 것일까.

◆강력한 카리스마와 리더십=신한의 대명사는 라응찬 회장이다. 절대적 카리스마로 오늘의 신한을 만든 인물이다.

라 회장은 선린상고 야간을 다니며 주경야독으로 공부, 은행인의 외길을 걸어 1982년 생긴 신한은행을 미니 은행에서 국내 2위권 금융그룹으로 만들어 놓은 신화적인 인물이다.

조흥은행에 이어 LG카드 인수까지 선 굵은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으며 자회사경영관리위원회를 통해 은행ㆍ카드ㆍ증권 등 자회사의 인사권을 휘두르는 그룹 내 누구도 넘보지 못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대구은행 비서실에서 일할 때 행장으로 모시고 있었고 신한은행과의 인연을 맺어 준 김준성 전 부총리의 부탁을 거절한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라 회장을 묵묵히 보필하며 신한을 반석 위에 올린 인물은 이인호 지주회사 사장.

이 사장은 1982년 신한은행 창립멤버(차장)로 시작해 영업, 융자부장 등 요직을 두루 거치고 상무ㆍ전무ㆍ은행장에 이어 현재 그룹 최고경영자(CEO)인 지주회사 사장을 맡고 있다.

그의 경쟁력은 원리원칙에 바탕을 둔 과감성. 신한은행장이던 1999년엔 신속하게 부실을 털어내고 외환위기 이후 금융사로는 처음 외자(4억달러)를 조달했다. 2001년엔 대형화를 선호하는 외국인 주주를 직접 찾아가 설득, 신한금융지주회사의 기틀을 놓았다.

최영휘 전 사장의 퇴임 사태 이후 '구원투수'로 나서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그룹 현안에 대한 조정자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신한은행의 인재 확보에 중점을 둘 정도로 미래경영상을 제시하고 있다는 평이다.

특유의 온화한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모든 신한 직원의 '큰형님'으로 불리며 월드클래스 금융회사로 향하는 신한은행호의 키를 잡고 있는 신상훈 행장은 지난 2003년 취임 이후 마치 이순신 장군이 연전연승을 기록하며 무서운 승전기록을 세우듯 놀라운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기업금융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가진 '조흥은행'과의 합병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후 국내 영업기반을 공고히 다지더니 중국, 동남아 등으로 발 빠르게 해외 네트워크를 구축하며 국내 선도 은행으로서의 입지를 다지는 데 톡톡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신한금융그룹을 이끄는 키맨(Key-man)을 꼽을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이희건 신한지주 명예회장이다. 2001년 일본 간사이흥은의 파산 이후 신한은행 회장직에서 물러났지만 22%에 달하는 지분을 가진 1000여명 재일교포의 얼굴로 신한금융그룹에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은행 부문에서도 최강자=계열사 조직이 탄탄한 신한금융그룹은 비은행부문에서도 절대강자로 평가받고 있다.

우선 '뱅커'로 잔뼈가 굵은 이동걸 굿모닝신한증권 사장. 신한은행에서 일한 15년을 포함, 30여년을 은행에서 '커머셜뱅커'로 보냈다. 2006년부터는 굿모닝신한증권의 수장을 맡아 정상급 투자은행으로 도약시키는 '인베스트먼트 뱅커(투자은행가)'로 활약하고 있다.

한일은행을 거쳐 1987년 신한은행에 입행한 뒤 1999년 신한은행 상무로 선임된 이후 2002년 신한캐피탈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6년 2월부터는 굿모닝신한증권 대표이사 사장으로 재임 중이다. 이 사장은 수년간 지연돼 왔던 굿모닝신한증권의 증자 문제를 취임 10개월만에 완결지었고 이는 굿모닝신한증권 도약의 핵심축이 됐다.

한동우 신한생명 부회장도 직전 신한생명 사장에 재임하면서 대형 생보사를 넘볼 정도로 탄탄한 조직력과 수익성을 냈다. 특히 한 부회장은 재임중 1300억원에 이르는 당기순이익을 내는 등 경영실적이 좋아 연임에 성공하는 등 영업능력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신한은행에서만 20여년을 근무한 '신한맨'인 홍성균 신한카드 부회장도 신한금융그룹의 일등공신. 지난 1982년 신한은행 창립때 개설준비위원으로 참여한 이래 2002년 신한카드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신한은행에서만 20여년을 근무한 '신한맨'이다.

지난 1991년 신한은행 도쿄지점장을 거쳐 1999년에는 이사직에 올랐으며 2002년 신한카드 설립과 함께 사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카드 대란의 어려움 등을 무난하게 극복했다는 평을 받으며 재선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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