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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싱' 김태균 감독 "정치는 잊고 마음으로 보라"(인터뷰)

최종수정 2008.07.03 18:40 기사입력 2008.07.03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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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김태균 감독이 변했다. '화산고' '늑대의 유혹' '백만장자의 첫사랑' 등 말랑말랑한 청춘영화나 감각적인 액션영화를 찍던 그가 갑자기 탈북자의 인권문제를 들고 나섰다. 26일 개봉한 영화 '크로싱'은 병든 아내를 살리기 위해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은 한 남자의 슬픈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탈북자에겐 고통과 상처를 위로하고, 북한에 대해 무지한 관객들에겐 현실의 참상을 이야기하는 '크로싱'은 요란하지는 않지만 국내외로 조금씩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김태균 감독은 마음의 빚을 진 상태에서 '크로싱'을 연출했다고 말한다. 한때는 벗어나고픈 마음도 있었지만 결국 운명이 그의 진심을 '크로싱'으로 이끌었다.

'크로싱'이 주목을 받는 건 전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인 북한의 어두운 현실을 조명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떠나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생존권을 생각하는 작품이 '크로싱'이다. 혹자는 반공영화라 말하기도 하고 프로파간다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김태균 감독은 그저 마음이 움직여 찍게 된 가족영화라고 말한다. 김 감독은 관객 한 명이라도 더 북한의 현실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란다. 같은 민족 동포가 가까이서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살아가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다고 고백한다. '크로싱'의 시작은 타인을 불쌍하게 보는 시선보다는 자신의 마음 속에 드는 부끄러움이었다.
영화 '크로싱'

- '크로싱'은 누구의 제의로 하게 된 건가?
▲미국에서 11편의 영화를 제작한 프로듀서 패트릭 최가 먼저 제의해 왔다.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와처' 같은 주로 2000만 달러 내외의 B급 액션영화들을 주로 만들던 친구다. 그동안 영화를 많이 만들어 왔지만 이젠 의미 없이 느껴진다는 말을 내게 했다. 영화를 11편 만들었는데 아빠는 무슨 영화 만들었냐고 애가 물으면 부끄럽게 느껴진다는 이야기였다. 좋은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다며 '크로싱'을 제안했다. 처음 제안을 듣고 나선 북한의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고난의 행군'은 10년 전에 끝난 걸로 알고 있었다.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기억이 떠올랐다. 아이들이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살고 있다는 게 부끄러웠던 그때 그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래도 그에겐 "이건 마음만 갖고는 안 되는 영화다. 만들면 여러모로 골치 아픈 일이 많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정 하고 싶으면 내가 기획만 맡아서 해주겠다고 했다. 감독은 싫다고 말했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찍기도 전인 4, 5년 전 일이다. 그러다 발목을 잡힌 것이다.

- 투자사는 어떤 심정으로 찾아갔나?
▲ 너무 부담스러우니까 이 작품을 놓아버리려는 생각에서 투자사를 찾아갔다. 당연히 거절당할 것이라 예상했다. 나중에 돈 벌어서 인디 스타일로 HD 카메라 한 대 들고 찍을 생각이었다. 대규모로 중국 가서 찍으려면 복잡하니까. 자료 조사하다 보니 꼭 만들어야 할 영화로 내 마음 속에서 결정돼 언젠가는 꼭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렇게 큰 규모로 만들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면죄부를 얻겠다는 심정으로 찾아간 거다.

- 밴티지홀딩스 측에서 투자를 결정했을 때 가슴이 철렁했겠다.
▲ 아, 어쩔 수 없이 내가 만들어야 하는 영화구나 하고 받아들였다. 내 머릿속에서 계산된 제작비는 70억원이었지만 주어진 건 40억원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연기자나 스태프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평소 받던 것보다 덜 받고 아이디어를 짜내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촬영은 두 달 보름 만에 3개국을 다니며 거의 모두 찍었다. 그것 또한 거의 기적인 것 같다.

- 배우 차인표를 기용한 이유는?
▲ 어떤 사람이 이야기하면 뭔가 꼼수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일단 내가 만들었으니까 그런 게 없는 거다. 애들 영화 만들던 감독이 그런 게 뭐가 있겠나. 내가 마음이 아파서 만든 게 이 영화인데 거기에 대고 사람들이 프로파간다(선전)라고 말한다. 차인표가 첫 번째 선택은 아니었지만 이미지가 딱 맞았다. 차인표가 하면 사람들이 정직한 것으로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했다. 차인표도 처음엔 여러 번 출연을 거절했지만 난 그가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 촬영 중 가장 곤란했던 경험이 있다면?
▲ 날씨나 로케이션 이동, 해외 통관 절차 등 어려움이 많았지만 모든 장벽을 다 뚫고 넘어갔다. 모두 하나님의 도움인 것 같다. 가장 난처했던 건 소품으로 쓰던 배게 하나가 몽골에서 도둑 맞았을 때다. 봉고차 기사가 집에 갔다 온 사이 차 안에 있던 걸 모두 털렸다. 촬영에 이미 썼던 소품이 없어지니 아찔하더라. 중국에서 구한 거라 북경 스태프에게 전화해서 심양 시장에서 다시 구해달라고 했다. 다행히 비행기를 타고 심양 시장에서 같은 걸 구해 다시 비행기로 몽골 사막까지 공수해 왔다. 한번은 몽골 수도인 울란바토르에서 몽골 사막까지 장비를 차 일곱 대에 태워 촬영 스무 시간 전에 보냈는데 서른 시간이 지나도록 안 온 적이 있었다. 기사가 중간에 졸다가 앞 차와 추돌사고가 나 시비가 붙었던 거다. 서른 시간을 안 자고 와 준 그들이 내겐 용사 같았다.
영화 '크로싱'

- 탈북자 인터뷰는 어떻게 진행했나?
▲ 인터뷰어가 따로 있었고, 직접 하기도 했다. 인터뷰 비용도 꽤 들어갔다. 인터뷰 비용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고 내가 답례하는 경우도 있었다. 비디오 촬영은 절대 불가능하고 녹음 또한 안 되는 경우도 있었다. 6개월간 집중적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백만장자의 첫사랑'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계속 보고 받고 자료 읽고 미팅을 가졌다.

- 인터뷰 자료를 보며 북한에 대한 기존의 생각과 괴리감을 느꼈을 것 같다.
▲ 그렇다. 난 내가 진보주의자인 줄 알았는데 영화를 만들고 나니 보수주의자가 됐다. (웃음) 내가 몰랐던 사실을 많이 알게 됐다. 우리가 한동안 UN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으니까 몰랐던 거지. 너무 부끄러웠다. '인권 문제는 정치를 넘어선 건데 자꾸 정치에 발목이 잡히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탈북자의 증언이 어디까지가 사실인지 찾는 것이 제일 어려웠다. 사람의 말은 과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장 최근 탈북한 사람을 수소문해서 만나기도 했다.

- 겪어보지 못한 일을 그리는 작업이라 명확한 선을 긋는 작업이 힘들지 않았나?
▲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주장은 정치적 의도에 따라 과장되기도 하고 가려지기도 하기 때문에 진실을 찾아내는 작업이 힘들었다. 그럼에도 '크로싱'은 그분들의 고통을 10분의 1도 담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고통을 그대로 담으면 그건 고발영화가 되고 다큐멘터리가 돼버린다. 난 고발로써 사람의 마음이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의 따뜻한 기운이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용수와 준이를 보면서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느꼈으면 했다.

- 북한 문제는 매우 예민하고 복잡하다. 그래서 아예 생각하기 싫은 것일 수도 있다.
▲ 군사분계선 너머 황해도에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큰 죄다. 누구 잘못인지 따지면 답이 안 나온다. 하지만 일단 굶어 죽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경기도 일산에서 황해도까지는 차로 한 시간 거리밖에 안 된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안다면 큰 죄다. 자꾸 눈을 가리고 진실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니 '크로싱'을 만들면서 이게 과연 대중영화인가 하는 회의감이 드는 것이다. 이 영화에 대해 아직까지도 모순을 느낀다.

- '크로싱'이 대중영화의 격전지인 여름 극장가에 걸린다는 것 또한 모순적이다.
▲ 그렇다. 가장 오락성이 높은 블록버스터들이 쏟아져 나오는 여름 시장에 '크로싱' 포스터가 들어있는데 내겐 그게 민족에 대한 질문 같았다. 그렇다면 내가 갑자기 투사가 된 건가? 모르겠다. 요즘처럼 사람들 마음이 갈라져 있고 강퍅해져 있는 상황에서 '크로싱'이 사람들 마음을 녹일 수 있을지 내게도 질문 같다. 하지만 태안반도도 그렇고 촛불집회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동안 소수의 사람들이 결정했던 대북정책에도 무언가 변화를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아버지 고향이 이북이라고 들었다.
▲ 함경남도 고원군에서 조부모와 아버지, 삼촌, 고모가 사셨다. 시집간 고모 외엔 모두 내려오셨는데 할머니는 평생 고모를 잊지 못 하셔서 돌아가실 때까지 상처를 안고 사셨다. 이제 탈북자들이 또 다시 이산가족이 되고 있다. 현재까지 1만 3000명 정도 된다고 들었다. 중국에서 떠돌고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10만명 혹은 30만명이 될지도 모른다.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관심이 없다. 복잡해서 그런 것 같다.
영화 '크로싱'

- '크로싱'을 가리켜 반공영화라 말하는 사람도 있다.
▲ 반공이라는 단어를 쓰는 걸 보고 놀랐다. 공산주의라는 국가 이념은 거의 사라지지 않았나? 반공이라는 시대착오적인 표현을 아직도 쓴다는 건 분단국가로서 대한민국이 고통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분단의 한계성이 아닐까 생각한다. 북한의 인권문제를 바라볼 때는 정치적인 문제를 떨어뜨려 놓고 생각했어야 하는데 결국 못 한 거다.

- 신파성이 강한 작품일 거라 기대했는데 결말이 담담하다.
▲ 마음 속으로 갈등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신파로 소비하기에는 너무 심각한 소재였다. 가장 참기 힘든 유혹은 해피엔딩에 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하면 관객이 더 들 것임을 알지만 양심상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현재도 참혹한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으며 완결된 이야기는 더욱 더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도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고 있는데 해피엔딩으로 하면 절대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 부분은 못을 박고 들어갔다.

- 공항에서 비를 맞는 용수의 모습을 담은 엔딩 장면이 인상적이다.
▲ 그 장면엔 종교적인 믿음이 담겨 있다. 용수가 죽는 걸로 끝을 맺을 수도 있지만 그렇게 못 하겠더라. 그렇게 하면 더 슬플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다. 관객에게도 위로가 될 거라 생각했다. 끝이 아닐 거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 장면은 과거의 기억이 될 수도 있지만 미래의 소망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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