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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슈퍼히어로' 변화하고 있다…'원티드' '핸콕'

최종수정 2008.06.26 09:52 기사입력 2008.06.26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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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슈퍼맨' '배트맨'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슈퍼히어로는 신기술과 규모로 승부하는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소재 중 하나였다. 보통 사람은 결코 가질 수 없는 뛰어난 능력으로 힘없고 선량한 시민들을 악당으로부터 구하고 지구를 지켜내는 슈퍼영웅들의 존재는 할리우드만의 자랑이었다.

슈퍼히어로의 양대 산맥인 마블 코믹스와 DC코믹스의 샘물이 조금씩 바닥이 날 즈음 할리우드는 새로운 슈퍼영웅을 발명하기 시작했다. 초라하고 평범하다 못해 때론 한심하고 불쌍하기까지 한 영웅들이 등장한 것이다. '원티드'와 '핸콕'은 단지 평범한 슈퍼히어로 영화가 아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할리우드의 혁신적인 재발명이다.

# 초라한 샐러리맨의 일상, '원티드'
영화 '원티드'

'원티드'는 평범한 삶을 살다 느닷없이 섹시녀(안젤리나 졸리 분)의 호출을 받고 본의 아니게 영웅이 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원티드'의 시작은 '매트릭스'를 연상시키지만 그 출발점은 훨씬 현실적이다. 단순 반복적인 회사 업무, 짜증나는 직장상사, 절친한 친구와 바람난 여자친구, 홀쭉한 통장잔고, 불확실한 미래 등 주인공 웨슬리(제임스 매커보이 분)의 삶은 지나칠 정도로 평범하고 한심하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세상을 구할 킬러가 된 웨슬리는 예전에 갖지 못했던 뛰어난 능력을 갖게 되지만 'OO맨'들처럼 초인의 쾌감을 즐기는 수준에 도달하지는 못한다. 일단은 슈퍼히어로이기를 거부하는 슬픈 가족사 때문이다. 아들 웨슬리가 슈퍼히어로가 아닌 평범한 삶을 살기 바라는 아버지의 심정은 이 영화가 슈퍼히어로를 바라보는 관점과 비슷하다.

그런 이유로 총알로 검술을 하는 등 물리학의 법칙을 거스르는 온갖 화려한 액션과 예상치 못한 반전이 액션 스릴러의 쾌감을 극대화시키지만 엔딩 직전의 장면은 의외로 허무하기까지 하다. 일상으로 돌아온 주인공은 여전히 초라하고 평범한 '루저'일 뿐이다. 일상은 변함없고 주위사람들도 변함이 없다.

복수는 깔끔하지만 슈퍼히어로 영화의 상쾌한 결말은 찾아볼 수 없다. 감독 티무르 베크맘베토프가 러시아 출신이라는 사실이 암시하듯 '원티드'는 유럽 스타일의 슈퍼히어로 액션영화다. 관객에게 질문하기 좋아하는 유럽영화들처럼 '원티드'도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며 끝을 맺는다. 요즘 뭘 하고 살았냐고 말이다. '원티드'는 현실의 고통을 자꾸 재인식시켜주는 괴로운 판타지다.

# 힘이 세서 슬픈 영웅, '핸콕'
영화 '핸콕'

'원티드'에 비해 '핸콕'의 겉모습은 훨씬 슈퍼히어로에 가깝다. 망토만 없을 뿐 핸콕(윌 스미스 분)은 슈퍼맨과 다름없다. LA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슈퍼영웅 핸콕의 일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술에 찌들어 거리 벤치에서 자는 노숙자 신세다. 까칠한 성질머리 때문에 악당들을 해치워놓고서도 늘 사람들의 비난을 받기 일쑤다.

핸콕의 캐릭터는 단순히 '까칠한 술주정뱅이 흑인 슈퍼맨'이라는 독특한 이미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핸콕이 알코올 중독자가 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숨겨놓은 것이다. 영화의 예고편만 보는 사람은 믿기 힘들겠지만, '핸콕'은 액션 블록버스터라기보다 슬픈 사랑이야기에 가깝다. 슈퍼히어로에게 슬픈 러브스토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게 새롭지는 않다. 다만 어떤 사랑이냐가 문제다.

초인과 보통사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장벽은 종종 슈퍼히어로 액션영화에 슬픈 멜로드라마를 부여한다. 하지만 '핸콕'은 그 이상이다. '핸콕'은 특이하게 슈퍼히어로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행한 삶을 그린다. 세상에 남은 단 두 명의 슈퍼히어로, 그들은 같은 '인종'이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끌리지만 함께 있으면 비극을 초래한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수는 없지만, '핸콕'은 일반 멜로드라마로 치자면 술에 찌들어 사는 이혼남이다.

'원티드'와 '핸콕'은 평범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불행한 슈퍼히어로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따분하고 팍팍할 뿐이지만 슈퍼히어로의 삶이라고 해도 결국 별다를 바는 없는 것이다. 그 속에 교묘하게 끼어든 가족주의는 현대인이 갈망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되묻는다. '원티드'와 '핸콕'은 할리우드가 끊임없이 새로운 오락거리를 실험하고 고민한다는 증거를 보여주는 창의적인 상업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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