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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후예들' 메이드 인 코리아 자긍심 심는다

최종수정 2008.06.11 10:58 기사입력 2008.06.11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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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부터 英펠렉스코까지 두달여간 항해

[비즈&서브라이즈] 한진해운 브레머하펜호 동승기

지난 9일 오후 3시 부산항.

국내 최대 항구 답게 기자가 방문한 이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가운데에서도 세계 곳곳에 출항하는 컨테이너선들이 저마다 짐을 한가득 싣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중국 텐진항을 거쳐 유럽으로 가는 FEX노선을 담당하는 한진 브레머하펜호(Hanjin Bremerhaven)도 출항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브레머하펜호는 6500TEU급(20피트짜리 컨테이너 6500개 선적 분량)으로 대형급에 속한다.
 
선박 길이는 63빌딩을 넘어서는 304m. 축구장 세개를 합친 것 보다 길다. 폭과 높이도 각각 40m와 57m에 이른다. 배에 차곡차곡 쌓이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면 5인 가족 한 가구의 이삿짐을 실어 나를 수 있는 규모. 브레머하펜호 하나로 인구 3만여명 소도시를 이주시킬 수 있는 셈이다.

선적되는 제품은 타이어, 전자기기 등 한국이 주력으로 삼는 수출품 대부분을 망라한다. 공산품에서부터 온도조절기가 설치된 냉장 컨테이너에 실린 화훼류에 이르기까지 말그대로 '없는거 빼고 다 있다'는 게 선원들의 설명이다.
 
▲수출 최전선 기지에 오르다
브레머하펜호에 오르기 전 부산항 관리사무소로부터 여권 검사를 받아야한다. 기항지가 중국이기 때문에 발급된 비자도 꼼꼼히 체크된다. 국제 공항보다 보안 검사 수위가 높다.
 
부산항 관계자는 "올해 베이징올림픽이 열리는 탓에 중국의 입국 수속이 한층 까다로워졌다"며 "직장인의 경우에는 재직증명서 제출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배에 올라도 되는 신분임이 입증되면, 관리사무소 주재하에 각종 안전교육이 실시된다.
 
갑판까지는 사다리, 갑판에서 건물 7층 높이의 조타실(브릿지)까지는 엘리베이터로 오른다. 갑판에 오르니 선장을 비롯한 22명의 선원들이 반갑게 맞는다. 맨뒤에 부산 해양대 졸업반에 재학중인 실습항해사는 차렷자세로 군기가 바짝 든 모습이다.

이날 배에 선적되는 컨테이너는 4000여개. 켜켜히 쌓는 컨베이어 운전자들의 솜씨가 경이로울 지경이다. 
 
출항을 앞둔 선원들은 다소 긴장하는 듯 보였다. 이유를 물으니 서해에서 중국 연안으로 돌아오는 꽃게잡이 배들이 최근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서현충 1등 항해사는 "중국 어선들은 너무 작아 레이더에서 포착되지 않는 경우도 많고, 어디로 튈지 몰라 충돌 가능성을 늘 염두해 두어야한다"며 "인원을 3개조로 나눠 24시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첨단 시설,고급 호텔이 안부럽다
객실을 배정받고 배를 둘러보기 시작할 즈음, 브레머하펜호가 두달여 대장정에 올랐다. 한진해운의 FEX노선은 광양-부산-텐진-싱가포르-남아공 수에즈-독일 함부르크-네덜란드 로테르담-영국 펠렉스토우로 아시아와 유럽지역을 아우른다.
 
기자는 이날 일기가 좋지 않아 배멀미에 대한 걱정이 앞섰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막상 출발을 하고 보니 흔들림을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서현충 항해사는 "배 크기와 무게도 엄청나지만, 수천개에 이르는 컨테이너를 싣기 때문에 왠만한 풍랑에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며 "배 안에 설치된 탁구를 즐기는 데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브레머하펜호는 지난 2006년에 기항을 시작한 최신형 선박이다. 그런 만큼 각종 편의시설은 왠만한 고급 호텔에 못지 않았다.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체력단련장은 기본이고, DVD나 비디오를 시청할 수 있는 휴게실과 선원들의 다양한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각종 스포테인먼트 기구들이 구비되어 있었다.
 
식사는 그야말로 최고급이다. 이날 나온 저녁메뉴는 삼계탕. 일류 조리사들이 직접 담근 각종 반찬류는 일반 가정에서 먹는 것 그대로다.
 
브레머하펜호 장성근 조리장은 "보관상 이유도 있지만, 몇달씩 해상에 머무르는 직원들의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 단백질 보충에 신경을 많이 쓴다"며 "그럼에도 젊은 친구들은 육류를 더 보충해달라고 투정을 부린다"고 미소졌다.
 
▲시나브로 다가온 텐진
컨테이너선 승선의 설레임은 지루하게 이어지는 바다에 익숙해지면서 사라진다. 어쩌나 멀리 어렴풋이 보이는 배들의 실루엣이 반가울 정도. 그래도 선원들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집무실에서 해면도를 체크하는 선장의 눈빛도 시종일관 진지하다. 그러나 날씨 변동상황에 대해서는 걱정할 것이 없었다.
 
최첨단 위성통신을 통해 태풍 뿐만 아니라 간헐적으로 닥치는 소규모 폭풍의 동태까지 파악, 지나는 길목을 우회할 수 있도록 시스템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고 시속 26노트(45㎞) 속도로 태풍을 따돌릴 수도 있다는 게 선원들의 귀뜸이다.
 
그렇게 하루가 꼬박 지나자 영원할 것 같았던 망망대해도 중국 텐진항의 출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지난 22일부터 중국 연안 특유의 농무때문에 일주일 가까이 하역작업을 못한 150여척의 배들이 줄을 서 있었다. 정상적이라면 며칠을 외항에 정박해야할 상황이지만, 한진해운에게는 예외다.

한진해운이 중국 화주들에게 쌓은 신뢰도는 세계 최고의 다국적 물류회사 코스코(COSCO)에 못지 않다.
 
이날 텐진항은 브레머하펜호의 빠른 하역작업을 위해 이례적으로 6대의 대형 컨베이어를 지원해줬다.
 
한진해운 신창목 텐진지점장은 "텐진항의 하역, 선적작업 속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시간당 컨테이너 130여개를 처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역, 선적이 13시간 정도 동시에 이뤄지고 나면 곧장 유럽을 향해 나아간다. 브레머하펜호의 진짜 여정은 이제 시작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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