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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흑심모녀', 어른들을 위한 흑심 없는 동화

최종수정 2008.06.11 08:23 기사입력 2008.06.11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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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신문 고경석 기자] 이팔청춘으로 돌아간 치매 할머니(김수미 분), 과일 장사를 하며 억척스럽게 살아가는 아줌마 남희(심혜진 분), 아나운서가 꿈인 철없는 딸 나래(이다희 분). 남자 한 명 없이 모녀 3대가 사는 집안은 팍팍하기만 하다.

엄마 통장을 훔쳐 도망간 철부지 나래가 돌아오던 날, 4차원 청년 준(이상우)이 남희가 운전하는 과일 트럭 앞에 뛰어든다. 할머니의 열화와 같은 짝사랑 덕에 준은 세 모녀와 동거 아닌 동거를 시작하고, 할머니와 엄마, 딸의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 출신인 조남호 감독의 데뷔작 '흑심모녀'는 제목이 풍기는 것처럼 섹스코미디도 아니고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다. 차라리 이 영화는 동화에 가깝다. 세상의 티끌 같은 건 하나도 묻지 않은 듯한 순수청년 준의 등장으로 남희의 차가운 심장은 온기를 찾고, 치매 할머니의 길 잃은 로맨스도 일편단심 민들레가 된다. 남희와 다래의 팽팽한 신경전도 눈 녹듯 풀린다.

영화 '흑심모녀'에는 흑심이 전혀 없다. 천사 같은 준의 미소처럼 백지장처럼 하얀 심성뿐이다. 나래의 질투도 준의 순수함 앞에는 힘을 쓰지 못한다. 이처럼 '흑심모녀'가 제공하는 것은 알록달록한 로맨스도 자지러지는 코미디도 아닌 무색 무취의 어른 동화다. 삭막하고 팍팍한 현실 속에서 잠시 2시간 동안 꿀 수 있는 무지갯빛 백일몽이다. 준이 지붕과 벽, 트럭에 그리는 동화 같은 그림이야말로 '흑심모녀'가 내걸고 싶은 진짜 간판이다.

현실 속의 동화를 만들어가는 배우들의 연기도 칭찬할 만하다. 가장으로서 삭막한 현실 속에 스스로를 가둬 놓다가 조금씩 판타지의 여유를 찾게 되는 아줌마를 자연스럽게 표현해낸 심혜진과 전매특허인 코믹 연기를 자제하고 귀여운 치매할머니를 연기한 김수미의 조화는 '안녕, 프란체스카'와는 전혀 다른 궁합으로 시너지 효과를 낸다.

철부지 소녀 나래 역의 이다희와 4차원 청년 준 역의 이상우도 배역에 자연스럽게 융합된다. 맵고 짠 음식에 길들여진 입맛에는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산뜻하고 말끔한 뒷맛이야말로 '흑심모녀'의 진짜 매력이다. 6월 1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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