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새신랑 래퍼' 김진표, 군중 속 고독을 노래하다(인터뷰)

최종수정 2008.05.30 09:47 기사입력 2008.05.30 09:26

댓글쓰기


[아시아경제신문 이혜린 기자] 몇백만원이면 디지털싱글을 내고 '가수'가 될 수 있는 시대. 래퍼 김진표는 5집 앨범 'JP5'에 무려 5년의 시간을 쏟았다. 자신의 음악에 심취해 작업에 매진하다, 또 '이건 아니야'하고 두어달 음악을 멀리했다. 그렇게 세월은 무수히 흘렀고 김진표는, 엄밀히 말해, 현재 트렌드를 전혀 고려치 못한 '음악'을 공개했다. 타이틀곡 '그림자 놀이'엔 그 '흔한' 중독성 강한 후렴구가 없으며, 5분에 가까운 노래를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야 '참맛'이 은근히 우러나온다.

계산기 잘 두드리는 가수들은 유명 작곡가한테서 비슷비슷한 곡 받아 온라인 차트를 휩쓰는 시대. 김진표는 혼자서 음악을 만들고 가사를 쓰고, '이것, 뻘짓 아닌가'하는 걱정을 하면서도 뚝심있게 밀어붙였다. "이제 돈은 다른데서 벌고, 음악은 그냥 하고 싶은 거 해야지"라고 말하는 김진표의 얼굴에는 씁쓸함이 잠깐 스쳤다.

# 발 한번 담궈봤다

김진표가 그동안 발표한 곡은 약 130곡. 이를 위해 쓰고 없앤 가사가 총 100여곡. 넉넉잡아 230여곡의 가사를 써본 김진표는 '자기복제'의 함정 앞에 섰다.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사람의 머리속에서 나온 글이 아주 다를 수는 없는 상황. 그래서 김진표는 그동안 손대지 않았던 소재에 한걸음 다가섰다. 수록곡 '지읒오 지읒에 쌍기역 아'에서는 연예저널리즘을 비판했고, '모럴헤저드 로맨스'에서는 불륜을 '고발'했다. 무엇보다 눈에 띄는 건 남녀의 육체적인 사랑을 다룬 '붕가붕가'.

"전엔 '내가 뭣하러 섹스까지 다뤄?'하고 생각했어요. 그건 음담패설이잖아요.(웃음) 근데 이번엔 '그게 왜 음담패설이지? 귀엽게 그릴 수도 있잖아'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자들이 많이 보는 할리퀸 로맨스처럼, 음란하지 않게 접근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춘향전을 응용한 '업고놀자'도 안해본 방식이거든요. 저한테는 일종의 도약이고, 이를 토대로 다음엔 더 깊게 들어갈 수 있겠죠. 이미 발 담궜으니 심화학습을 하는거죠."

민감한 소재에 솔직하게 접근하기란 어려운 법.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그 적정선을 유지하는 것은 꽤 많은 요령이 필요한 일일테다.

"이번 앨범에는 (아내) 주련이가 화낼 만한 건 없었어요. 앞으로 그런 게 떠오른다면요? 음. 요령을 부려야죠.(웃음) 전 음악인 김진표와 그냥 인간 김진표가 거의 동일하거든요. (박)진영이 형처럼 '여자가 있는데'를 발표할 만한, 곡예는 어려울 것 같아요.(웃음) 가수마다 다른거니까."

# 외로움, 도무지 답이 없는 문제

소재 반복을 피하려 노력했지만, 일부러 한가지 주제에 천착한 곡도 있다. 1997년 발표한 '아무 누구'의 속편이라 할 수 있는 '그림자 놀이'다. '끝없이 저장된 핸드폰의 전화번호 막상 걸땐 한군데도 없어' '모니터 속 내 일촌들 가득한 들 언제 관심이나 있었는가' 하는 가사가 현대인의 '필수품'이라하는 군중 속의 고독을 잘 그려냈다. 새신랑에게는 그리 어울리지 않지만, 이같은 외로움은 김진표가 지난 10년 내내 고민해온 '답없는 문제'다.

"이달 초 결혼식에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어요. 그런데 그중 상당수는 평소에 거리낌 없이 전화하기엔 어려운 사람들이에요. '형! 나 이번에 결혼해요. 평소 연락도 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하는. 점차 혼자가 편해지는 시대에요. 쇼핑은 인터넷으로 혼자 해도 되고, 연락할 일 있으면 미니홈피 쪽지 보내면 되고. 만약 좋은 일 생기면 누구한테 전화해서 자랑도 하고 해야하잖아요? 들떠서 핸드폰을 보다보면, '에이, 뭐 이런 것까지 기뻐해주겠어?'하는 거죠."

대학교2학년때 만들었던 '아무 누구'보다 조금도 명확해지지 않은 문제.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없는 문제. 아무리 화목해보이는 집안도 구성원 하나 하나 떼놓으면 외로운 존재들인 사람이라는 동물. 김진표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제 가까운 사람이 갑자기 돌아가신다면, 그런데 그 장례식이 썰렁하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때를 대비해 인맥들에게 평소 연락을 조금 더 해야 하나. 막상 해보자니 어색하고. 뭐, 설사 장례식에 나 밖에 없다고 한들 어떻게든 극복하겠죠. 그런데도 그런 고민은 계속되는 거예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는 현대인이라면, 김진표의 진지한 고민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 여가수들의 우울증, 이해해

연예인이라서 더 외로운가? 여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케이블채널 tvN 연예정보프로그램 'E뉴스'를 진행중인 그는 사회생활에 대한 안목을 더욱 넓힐 수 있었다.

"우린 요일별로 팀이 달라요. 방송사끼리, 팀별끼리, 그 경쟁은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눈에 보이죠. 누군가는 빨리 적응해서 살아남고, 누군가는 적응 못하고 점점 홀로 떨어지는 게. 그들도 정말 외로운 거예요. 전 겪어보지 못한 직업의 세계죠. 그런 새로운 사회생활을 볼 수 있어서, 많이 배우고 좋아요."

연예인이라 다른 직업보다 외롭다곤 할 수 없지만, 조금 특별한 사안은 있다. 모두의 환호를 받는 섹시 여가수들이 특히 그러하다. 5000만 국민이 내 가슴과 다리를 보고 즐긴다면? 무대 위에서야 '일'이지만, 무대 밑에서도 그런 시선에 노출된다면? 김진표는 새삼 그들의 애환을 안타까워하며 '날 찾지 마세요'란 곡을 완성했다.

"사실 저도 섹시 여가수를 볼때 일반 대중의 시선을 유지하게 돼요. 그런데 어느날 그들의 삶이 정말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정 가수가 모티브가 된 건 아니고, 그냥 일반적인 섹시 여가수들을 생각해본 거죠. 노래할 땐 좋지만, 무대에서 내려오면 담요부터 찾게 되지 않을까. 두개의 자아가 필요하지 않을까. 나라면, 우울증에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들을 짚어보고 싶었어요. 어찌보면 가사는 흔한 스토리죠. 섹시 여가수가 인기를 얻었고, 물의를 빚었고, 대중매체가 그를 죽이려 했고, 그래서 여가수는 떠나는."

김진표는 이번 앨범을 일종의 '디딤돌'이라고 했다. 혼자서 오롯이 만든, 새로운 소재에 한발짝 다가선, 이번 앨범을 딛고 나아가 다음에는 보다 '확실한' 김진표의 앨범을 발표할 계획. 이 어려운 음반 불황 시대에 다음 앨범이 언제 나오느냐. 그건 이번 앨범의 반응에 달렸다.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