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로마는 달랐습니다. 건국 초기부터 정복한 부족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유력한 사람에게는 원로원의 의석을 제공하는 혜택을 주었습니다. 됨됨이만 괜찮으면 로마의 지배계급으로 편입시키는 전통을 세웠습니다.
"위대한 기업, 로마에서 배운다"는 책을 쓴 딜로이트 컨설팅의 김경준 씨는 이를 두고 경쟁자의 역량을 로마의 역량으로 M&A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의 효과를 가져 온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정복을 통한 영토 확대가 로마의 하드웨어 M&A인 셈입니다. 그러나 개방성으로 패배자를 동화시키는 정책은 로마의 소프트웨어 정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경준 씨는 "뜻을 같이하는 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고 식민지 출신이라도 역량 있는 사람을 지배계층으로 편입한 로마는 제국을 경영할 다양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보충할 수 있었다"고 설명합니다.
대선이 끝났습니다. 대통령 당선자가 가려졌습니다. 당선자를 배출했지만 한나라당은 연일 氣(기)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일단 수습국면에 들어간 느낌이 들지만 언제 또 주류, 비주류간의 힘겨루기가 재연될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대선에서 패배한 쪽에서도 새로운 사령탑이 구성돼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끄럽습니다. 여기저기서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스럽습니다. 이긴 쪽도 그렇고 패배한 쪽도 시끄러운 소리는 똑같습니다.
국민들 눈에 제몫 챙기기가 지나치게 보이는 순간 민심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며칠 있으면 설날입니다. 우리의 조상들은 설날 밤이 되면 초저녁부터 신발을 감추어 두었습니다. 설날 밤이 되면 하늘에 있는 夜光鬼(야광귀)가 인간 세상에 내려와 집집마다 찾아다니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야광귀가 제발에 맞는 신발을 신고 하늘로 올라간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날 밤 신발을 잃어버린 사람은 1년 내내 재수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설날 저녁에는 또 1년 동안 모아두었던 머리카락을 불태웠습니다. 머리털을 그대로 기름종이에 싸서 모아두었다가 설날에 태웠습니다. 머리카락을 이때 태우면 좋은 일이 많이 생긴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설은 새해 첫머리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설날은 그 중에서도 첫날이란 의미로 개시한다는 뜻도 갖고 있습니다.
딜로이트 컨설팅의 김경준씨가 말했던 것처럼 그리스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피를 나눈 자"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인이 생각하는 시민은 "뜻을 같이 하는 자"라는 점에서 달랐습니다.
"피를 나눈 자" 보다 "뜻을 같이 하는 자, 뜻을 같이 한 자"에게 아량을 베풀면 야광귀는 설날 밤에 신발(꿈과 희망)을 훔쳐갈 기회가 없어질 것입니다. 우리 편만 챙기는 머리카락(고질적인 악습)을 불태우면 1년 내내 재수가 있고 더 희망적인 쪽으로 국운이 열릴 수도 있습니다.
핏줄은 선택할 수 없지만 소속은 선택할 수 있다는 로마인들의 지혜를 생각하는 설 날 되시기 바랍니다. 하드웨어 M&A보다는 소프트웨어 M&A가 중요성하다는 이치를 깨우치는 설날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경제 강국, 국민대화합의 저력은 이런데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