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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폭설로 우울한 춘제

최종수정 2008.02.04 08:31 기사입력 2008.02.04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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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죽도 없고 귀성객들 발이 묶여 동동

얼마 전부터 아파트 뒤편 도로의 한편에 가건물 하나가 들어서 눈길을 끌었다. 베이징(北京) 올림픽을 앞두고 그 도로 주변이 말끔히 정리된 뒤라 느닷없이 세워진 그 가건물 등장은 정말 쌩뚱맞기 그지 없어 보였다. 그 길 끝에 큰 시장이 있기 때문에 시장과 관련된 물류 창고려니 생각됐다. 그런데 그런 가건물이 들어선 곳이 그곳 뿐이 아니었다. 베이징 왕징지역(望京)의 곳곳에 그와 비슷한 가건물들이 들어선 것이다. 정체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했었는데 며칠 전에야 그 궁금증이 풀렸다.

가건물의 시멘트 벽에 춘제(春節·설)를 위한 폭죽과 불꽃놀이를 판매한다는 글귀가 크게 써진 요란한 현수막이 드리워졌던 것이다. 왕징지역 곳곳에 생긴 그 가건물들은 모두 춘제 때 사용되는 폭죽과 불꽃놀이를 판매하는 간이 전문 판매소였다.

중국의 춘제는 한국의 설 보다 더 요란하다. 연인원 23억여 명이 귀성·귀경길에 나서는 춘윈(春運)도 요란함 그 자체지만 설을 전후해 집중적으로 퍼붓는 폭죽소리는 "이게 중국이구나" 하는 것을 실감나게 한다.

매년 춘제가 다가오는 이맘때만 되면 귀신을 잡기 전에 사람을 먼저 잡을 것만 같은 요란한 폭죽 소리가 도시 전체를 가득 메운다. 전쟁통 포성은 저리가라 할 정도다.

공안국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춘제를 전후해 폭죽으로 인한 인명사고는 전국적으로 총 2753건이나 된다. 자고 일어나면 베이징(北京)과 상하이(上海) 충칭(重慶) 등 대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크고 작은 도시와 시골마을의 하천변과 골목길, 논두렁 밭두렁은 모두 밤새 쌓인 폭죽 잔해로 뒤덮이곤 한다.

지난해 12년 만에 도심에서 폭죽 놀이가 허용된 베이징에서는 무려 2600t의 폭죽 쓰레기가 쏟아져나왔다. 폭죽 판매량은 지난해 24만 상자에서 38만 상자로 폭증했다. 거리를 청소하는 데 모두 8750명의 환경미화원이 동원됐다.

중국인에게 폭죽은 악귀를 쫓는 도구다. 옛날에 '마을을 해치는 녠(年)이란 괴상한 동물을 물리치기 위해 신선이 폭죽과 붉은 글자를 사용했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원래는 음력 정월 초하루 첫닭이 울면 집마당에서 폭죽을 터뜨렸다고 하는데 지금은 춘제가 되기 전에나 지난 후에나 상관없이 난리가 난다.

중국 공산당과 정부의 입장에서는 이 같은 폭죽 전통이 나쁠 리 없다고 한다. 적게는 1주일에서 많게는 한달 동안 이어지는 춘제 연휴기간 동안 폭죽 하나로 '명절나기'와 '국민통합' 및 '내수진작'이라는 1석3조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폭죽전통이 중국 시장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을 주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올해 춘제는 예년 같지 않다. 일단 이맘 때면 귀가 아프도록 터져야 할 폭죽소리가 별로 들리지 않는다. 수도 베이징의 경우 춘제 기간 동안 판매되는 폭죽 예상치는 모두 62만 상자. 이 폭죽들은 크고 작은 제조·판매 업체들에게 배당된다. 현재 13개 업체가 제조 판매권을 받았고 2196곳의 판매소들이 영업 중이다.

22만 상자를 배당받은 슝마오옌화(熊猫煙花)사는 당국의 허락을 받아 지난주부터 도심 수십여곳에 가건물을 짓고 매장을 분양해 폭죽 판매에 나섰지만 찾는 사람이 예상 보다 훨씬 적어 울상이다. 왕징지역의 한 판매소측은 "폭죽 판매량이 지난해에 비해 절반도 안된다"면서 "중국의 경제성장은 빠르다고 하는데 물가가 올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체감경기는 더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중국인에게는 전통의 의미를 넘어 삶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는 폭죽이 올 춘제 기간 동안 판매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성장 따로 민생 따로'인 중국경제의 모순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50년만의 기록적인 폭설로 1억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한 중국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폭죽 소리는 올해 춘제를 더욱 우울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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