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_progress

아시아경제 최신 기획이슈

[이명박시대] 출마에서 당선까지

최종수정 2007.12.19 20:49 기사입력 2007.12.19 20:48

댓글쓰기

'샐러리맨의 신화' '불도저 시장'이란 별명을 등에 업고 CEO와 서울시장에 이어 대선에 뛰어든 정치인 이명박이 17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지난 8월 한나라당 경선에서 '당심(黨心)'으로 무장한 박근혜 전 대표를 꺾고 후보로 당선 된 후 위장취업, 위장전입 및 BBK 연루의혹등 수 많은 위기에도 불구,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지지율 1위를 달리며 '예고된 승리'를 이끈 것.

이 당선자가 대권 행보에 뛰어든 것은 지난해 6월 말 서울시장에서 물러나면서부터다. 한나라당 후보직을 놓고 벌인 박 전 대표와의 대결은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다.

박 전 대표는 2년 3개월이라는 긴 시간동안 당 대표직을 수행했고 재·보선 선거를 통해 당 내부에 확실한 지지층을 다져놨던 터였다. 아울러 '7.11 전당대회'에서 박 전 대표를 등에 업은 강재섭 대표가 이 당선자의 대리인 격인 이재오 최고위원을 누르며 그는 시련을 맞이하기도 했다.

이에 이 당선자는 7월 초부터 종로구 견지동에 '안국포럼'이라는 선거캠프를 마련하고 국제전략연구원(GSI)과 바른정책연구원(BSI) 등 매머드급 정책자문단을 발족시키는 한편, 자신의 넘버원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알리기에도 적극 나서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이 당선자는 9월부터 서서히 열세를 극복하고, 10월 초 추석연휴를 넘기고 역전에 성공했으며 추석 직후 북한의 핵실험을 기회삼아 안보위기를 극복하겠다는 '강한 불도저'로 추진력을 강조하며 지지율 대폭상승 이란 쾌거를 거뒀다.

그러나 올해 6월 11일 당 경선후보 출마 공식 선언 직후 30여년 전 자녀교육과 관련된 위장전입 사건이 터졌고, 뒤를 이어 처남 김재정씨의 부동산 투기의혹과 '도곡동땅' 차명재산 의혹까지 불거지면서 좀체 꺾이지 않던 지지율은 하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경선 1주일 전에는 검찰이 이 당선자의 맏형 상은씨의 도곡동땅 지분은 제3자의 차명재산으로 보인다는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데 이어 다음 날 "추가자료를 공개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하자 "이명박은 끝났다"는 극단적인 불안감도 떠돌았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경선 사흘 전인 8월 16일 검찰을 향해 "협박하지 말고 다 공개하라"며 정면돌파를 선언했고 검찰이 별다른 대응방안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검풍'(檢風)은 오히려 반전의 기회로 작용했고 8월 19일 마침내 한나라당의 후보로 선출된다.

한나라당의 공식 후보로 선출된 이후 정동영 후보도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을 거쳐 후보로 당선, 그의 뒤를 추격했지만 이 당선자는 큰 격차로 정 후보를 따돌리며 지지율 선두를 달렸다.

그러던 중 11월초, 지루하던 대선 경쟁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라는 메가톤급 사건이 터졌고 지지율 한때 20%대까지 치솟으며 이 당선자의 '대세론'에 파장을 몰고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BBK 주가조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씨가 대선을 한달여 앞둔 11월16일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라고 주장하며 국내로 입국했고 이어 그의 어머니 김영애씨까지 이면계약서 원본 등 갖고 귀국, 이 당선자의 BBK 연루 의혹은 눈덩이처럼 커졌다.

하지만 이달 5일 검찰은 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 의혹 ▲다스 차명소유 의혹 ▲BBK 실소유 의혹 등 이 당선자에게 제기된 의혹에 대해 모두 무혐의 결론을 내렸고, 그의 지지율은 40%대를 회복했다.

그러던 중 투표일을 불과 나흘 앞둔 12월 16일, 이 당선자가 지난 2000년 광운대 특강에서 "BBK를 설립했다"고 직접 말하는 내용을 담은 동영상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고, 이 동영상은 그에 대한 BBK 특검법의 국회 통과라는 결과를 낳았다.

이 과정에서 국회에서 양당 의원들끼리 집단 난투극을 벌여 부상자가 속출하기도 했지만 이 당선자가 특검법을 전면 수용하겠다고 발표하며 일단락 지어졌다.

투표일을 하루 앞둔 12월 18일. 오후 청계천 광장에서 '국민성공시대 비전선포식'을 통해 선거유세의 대미를 장식한 그는 선거 당일날도 "이번에는 반드시 정권교체를 이룩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국민 여러분들의 투표 참여가 절실하다"며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해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12월 19일. 역시 이변은 없었다.

경선과 대선을 통해 끊임없이 그를 흔들어 댄 각종 의혹에 이 당선자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투표를 코 앞에 둔 시점에서까지 그를 향한 온갖 공세가 이어졌지만 그는 '경제를 살려달라'는 국민의 여망으로 정권교체를 이뤄냈다. 

김현정 기자 alphag@newsva.co.kr
<ⓒ아시아 대표 석간 '아시아경제' (www.newsva.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간격처리를 위한 cla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