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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고과를 직원들에게 맡긴다

최종수정 2008.01.04 10:29 기사입력 2008.01.04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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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소재 정보기술(IT) 아웃소싱 업체인 HCL 테크놀로지스의 최고경영자(CEO) 비닛 나야르(45)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 스케줄 관리다. 지난해 HCL 직원들은 그가 프로젝트를 스케줄대로 잘 수행하는지 평가했다.

평가 결과 나야르는 5점 만점에 3.6점을 받았다. 81명의 중간 관리자로부터 받은 점수다. 사내의 모든 직원은 나야르의 고과 점수를 알고 있다.

나야르와 다른 임원 20명의 고과 평점은 HCL 인트라넷을 통해 공개된다. HCL 직원이라면 누구든 임원진의 고과 점수를 열람할 수 있다. 직속 상사의 점수도 알 수 있다.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HCL이 고과 평점을 조직 전체에 공개하는 지구상의 유일한 기업일지 모른다고 최근 소개했다. HCL에서 미국 인프라 서비스 부서를 이끄는 R. 스리크리슈나는 “처음에 몹시 언짢았지만 곧 익숙해졌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직원들의 상사 평가제는 지난 2년 사이 HCL이 취한 파격적인 몇몇 조처 가운데 하나다. HCL이 이런 평가제를 도입한 것은 좀더 ‘민주적인 일터’를 만들기 위해서다. 많은 CEO가 입으로만 ‘섬기는 지도자’로 자처하지만 나야르는 이를 직접 행동에 옮긴 인물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타룬 칸나 교수와 린다 힐 교수는 HCL에 대해 파고들었다. 두 교수의 HCL 사례연구는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진행 중인 실무 강의 가운데 인기가 매우 높다. 지금은 경영학 석사 학위(MBA) 과정의 필수 과목이다. 힐 교수는 “조직을 체계화하고 이끄는 혁신적 방법이 신흥시장에 많다”고 귀띔했다.

인도에서 5번째로 규모가 큰 IT 아웃소싱 업체 HCL은 소프트웨어 서비스 부문에 비교적 늦게 뛰어들었다. 따라서 명성을 쌓지 못하면 뛰어난 인재는 확보할 수 없는 판이다. HCL의 성장 계획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현재 인력 4만5600명도 모자라 1만 명을 더 충원할 계획인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나야르의 접근법이 먹혀 드는 듯하다. 한때 HCL의 큰 골칫거리였던 이직률은 3분기 연속 떨어져 현재 17.2%로 내려앉았다. 나야르가 사장으로 승진한 2005년만 해도 이직률은 20.4%에 이르렀다.

인도의 젊은 엔지니어들은 기업문화에 아랑곳없이 돈만 많이 주면 직장을 밥 먹듯 옮겨 다닌다. HCL의 마케팅 매니저 크리슈난 차테르지는 “이런 판에 이직률 17.2%라면 대단한 수확”이라고 들려줬다.

지난 10월 HCL은 회계연도 분기 순이익이 42% 증가했다. 수년에 걸쳐 진행할 복잡한 프로젝트를 수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 프로젝트가 성공하려면 엔지니어들을 오랫동안 붙잡아둬야 한다. HCL의 이번 회계연도 매출은 15억 달러다. 이전 회계연도보다 42% 증가한 셈이다.

나야르는 HCL에서 엔지니어로 7년 동안 근무한 뒤 한 신설 부서를 이끌게 됐다. ‘경영의 우상파괴자’ 나야르는 자기만의 철학을 완성했다. 그의 경영철학은 한 마디로 ‘직원이 으뜸, 고객은 버금’이다.

나야르는 고객 앞에서도 서슴없이 “직원이 으뜸, 고객은 버금”이라고 말한다. 최근 들어서는 “CEO 집무실을 부숴버리고 싶다”고 말하곤 한다. 모든 해법을 그에게 기대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야르는 HCL이라는 조직으로 하여금 직원들 관심사에 신속히 반응하도록 만들었다. 직원들의 불평에 대한 해법은 공개된다. 그는 주마다 쏟아져 들어오는 불만 50여 건에 대응하느라 7시간 정도를 투자한다. 일요일에 집에서 답변을 게시하는 경우도 있다.

HCL은 온라인 ‘원 스톱’ 서비스 데스크를 개발했다. 직원들은 데스크에 고장 난 에어컨이나 쥐꼬리만한 보너스 등 온갖 불만을 제기한다. HCL 직원이라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든 이용할 수 있다.

마케팅 부서에서 일하는 시프라 질(23)에 따르면 “몇몇 동료들이 인기 있는 포테이토칩과 음료수를 파는 구내 자동판매기가 왜 없느냐고 항의한 적도 있다.” 이후 데스크에서 문제를 해결해줬다.

나야르의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가장 큰 득을 보는 쪽은 직원들이다. 하지만 일부 직원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직원 아니샤 칸나(27)는 “혁신 프로그램으로 정말 어떤 변화가 생기리라 기대한 동료는 별로 없었다”고 들려줬다. 부하 직원들로부터 부정적인 평가를 받으면 이미지만 구겨지는 게 아닌가 걱정한 상사도 있었다.

HCL의 직원들은 피드백 평가제를 신뢰하기에 이르렀다. 나야르가 “피드백 평가제로 보너스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시켰기 때문이다.

HCL의 공개 피드백 평가제에 대해 연구한 기업들 가운데 이를 채택한 업체는 아직 없다. 나야르의 말마따나 “대다수 기업에 피드백 제도가 너무 급진적으로 비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야르는 자신의 아이디어가 널리 확산될 것으로 확신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좀더 신뢰할 수 있는 경영이라는 점에서 공개 피드백 평가제가 삶의 한 방식으로 수용될 것이다.”

이진수기자 commun@news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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