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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양김분열의 전철 되풀이하는 범여권의 무능

최종수정 2007.11.22 11:52 기사입력 2007.11.22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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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합민주신당과 민주당의 통합 협상이 22일 오전 사실상 종료되면서 실패로 끝났다.

지난 12일 양당 대표와 후보는 4자회동을 통해 통합 및 후보단일화에 합의했다. 하지만 후속 실무협상에서 지분문제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못해 열흘 만에 합의사항은 전면 무효가 됐다. 또한 범여권 통합의 또다른 축이었던 창조한국당 역시 신당과의 통합 작업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면서 마찰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단일후보가 성사되지 못할 경우 범여권은 대선 필패다. 한나라당 이명박, 무소속 이회창 후보 등 보수진영 후보들의 지지율 합은 무려 60% 이상을 상회하지만 신당 정동영, 창조한국당 문국현, 민주당 이인제 후보 등 범여권 후보들의 지지율 합은 20% 안팎에 불과한 것이 현실이다.

산술적으로만 본다면 힘을 합쳐도 대선 승리가 불가능하다. 1%의 가능성은 이명박, 이회창 후보가 분열된 상태에서 대선을 완주하고 범여권이 단일화의 파괴력을 바탕으로 막판 대역전극을 이뤄내는 것이었다. 결국 범여권이 분열된 상태에서 대선을 치를 경우 이는 패배로 직결된다.

역대 대선 역시 마찬가지였다. 통합을 통해 힘을 모은 쪽은 항상 승리했고 분열한 쪽은 실패했다.

6월항쟁의 결과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87년 대선은 민주화운동세력의 승리가 점쳐졌다. 하지만 김영삼, 김대중 후보의 분열 속에 노태우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됐다. 양김이 얻는 표는 각각 600만 표를 넘겼고 노 후보는 불과 800여만 표를 얻는데 그쳤다.

92년 대선의 경우 이른바 3당합당으로 세력을 불리면서 호남고립 전략을 쓴 김영삼 후보가 승리했다. 당시 김 후보는 1000만 표에 가까운 득표로 800여만 표에 그친 김대중 후보를 눌렀다.

97년 대선에서는 김대중 후보가 정계은퇴 번복이라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DJP 연대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라이벌이었던 이회창 후보와는 39만 표 차이에 불과한 1.5% 박빙승부였다. 500만 표에 가까운 득표력을 선보였던 이인제 후보의 독자출마가 없었다면 이회창 후보의 승리는 당연한 것이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기적과 같은 역전 드라마를 연출한 것은 정몽준 후보와 극적으로 단일화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반면 '집권야당 총재'라는 표현이 상징하듯 DJ 정부 5년 내내 대세론을 구가해온 이회창 후보는 97년에 이어 또다시 패배하고 말았다.

대통합에 실패한 범여권이 극적 돌파구를 찾지 못하는 한 대선패배는 예정된 수순이다. 이명박 후보의 BBK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 대세론이 붕괴된다고 해도 범여권 후보들의 상승세로 이어질 것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 범여권 자력의 대선승리는 불가능해졌다.

범여권 진영에서 볼 때 더욱 암담한 것은 현 상황이 대선패배에만 그치지 않고 내년 총선에서 진보개혁진영의 총체적인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이는 정치영역에서 산업화 세력 중심의 보수진영과 민주화세력 중심의 진보진영의 경쟁과 견제라는 균형추가 완전히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김성곤 기자 skzero@news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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