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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빌게이츠와 정문술

최종수정 2020.02.12 13:14 기사입력 2007.11.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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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마리의 여우가 포도밭 주위를 맴돌고 있습니다. 이 여우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울타리 때문에 도저히 안으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궁리 끝에 사흘을 굶어 몸을 마르게 한 뒤 가까스로 울타리 틈사이로 들어가는데 성공합니다.

포도밭 안으로 들어간 여우는 포도를 실컷 따 먹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포도밭에서 나오려고 하지만 배가 불러 그곳을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할 수 없이 다시 사흘 동안 굶어 몸을 마르게 한 뒤에야 겨우 빠져 나옵니다. 이때 여우가 한마디 합니다. "배가 고프기는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매 한가지군."
탈무드에 나오는 유태인의 삶의 지혜 한토막입니다. 누구나 빈손으로 태어나서 죽을 때 다시 빈손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여우의 사례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유태인들은 이처럼 탈무드를 통해 키소(돈지갑을 넣는 주머니), 코소(술을 마시는 술잔), 카소(분노를 나타내는 정도)등 3가지 기준으로 인간을 평가한다고 합니다. 돈을 어떻게 쓰는가, 술 마시는 버릇은 깨끗한가, 인내력은 어느 정도인가에 따라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자선활동은 부유한 사람들이 서로를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였습니다 유럽에서는 귀족들이 행해야할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중요시 합니다.
노를리스 오블리제는 고귀한 이들이 마땅히 갖고 있어야하는 사회적 책임과 의무를 뜻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귀족사회인 유럽에서 귀족계급이 평민들로부터 존경받고 명예를 유지하려면 사회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에서 유래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전쟁이 나면 먼저 나가 싸우고 사회에 더 많은 것을 내놓아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옛 귀족들은 이와 조금 거리가 있었던 듯합니다. 임진왜란당시 가장 먼저 북쪽으로 도망친 자들은 양반계급이었습니다. 일본군에 맞서 싸운 이들과 전쟁으로 고통 받고 가장 많은 희생을 당한 이들은 평민이었습니다.

송년이 되면 노블리스 오블리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빌게이츠 마이크로 소프트 회장입니다. 그는 1조 달러에 달하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얼마나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가 부인과 함께 세운 재단은 "빌 앤드 멜린다 게이츠 재단"입니다. 이 재단에 그가 기부한 돈은 350만 달러나 됩니다. 세계 최고의 자선가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한때 조지 부시 대통령이 상속세 폐지법안을 추진하자 이에 반대하는 120명의 억만장자가운데 최선두에 서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법안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킬 것이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그는 자식들에게 1천만 달러의 재산만 남겨주고 나머지는 모두 사회에 환원시키겠다는 약속을 한바 있습니다. 전 재산의 99%을 사회에 다시 내놓겠다는 게 그의 생각입니다.

그는 "사회에서 성공을 하고 부를 쌓은 사람은 어떻게 사회에 부를 환원하고 불평등을 개선할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야 한다"며 제3세계의 빈곤퇴치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이렇듯 그는 이제 세계의 기부역사를 새로 쓰려고 합니다. 이를 본 그의 아버지뻘 친구인 워렌 버핏이 빌 앤 멜린다 재단에 370억 달러에 달하는 거금을 쾌척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정문술 같은 기업인이 있다는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모릅니다. 규모면에서 빌게이츠와 견줄 수는 없지만 정신만은 빌게이츠에 뒤질게 없는 기업인이 바로 정문술씨가 아닐까요? 그는 오는 28일 서울 청담동에서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미술작품 경매행사를 가질 것이라 합니다. 본인이 가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한 방안의 일환입니다. 소장된 미술품은 30억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미 그는 2001년 한국과학기술원에 300억 원을 기부한바 있습니다.

그는 43살의 나이에 18년간 근무하던 직장에서 강제 해직을 당했습니다. 그 후 그는 전자제품 제조업체의 허수아비사장으로 경영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얼마가지 않아 문을 닫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좌절하지 않은 채 그는 미래산업 설립을 통해 새로운 인생을 닻을 올리게 됩니다.

벤처기업의 대부였던 정문술 씨는 사채업자에게 쫏겨 자살을 꾀했던 적도 있습니다. 무엇이 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다시 일어서도록 했을까요. 그것은 긍정의 힘입니다. 그는 바닥에 있다는 것은 더 이상 추락할게 없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추락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최대의 특권이고 혜택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는 직원들을 신뢰하기 때문에 신뢰받는 경영인으로 통합니다. 그래서 그는 미래산업을 혈육이 아닌 타인에 양보한 사람입니다.

평생 모은 재산을 헐어 내야한다는 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 일종의 도전입니다. 하지만 막상 기부를 결정한 다음부터 그는 마음이 평화로워졌다고 말합니다. 자식들에게 유산을 물려주는 부모를 지탄하고 아이들을 방목하며 키우는 게 정문술씨의 세계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가 경영하는 미래산업은 IMF경제위기가 닥쳤을 때도 매출을 뛰어넘는 연구개발비를 투자하여 99년 선진국들만이 독점하고 있던 전자제품 제조 기초 장비인 "SMD 마운터" 개발에 성공했고 2000년에는 국내 처음으로 미래산업을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켰습니다.

정문술 전 미래산업회장- 그는 이제 칠순을 맞습니다. 그는 기회있을 때마다 "버림은 소유의 끝이 아닌 소유의 절정"이라는 신념을 밝히곤 합니다.

기부는 차고 넘쳐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나누는 것입니다. 취약한 우리의 기부문화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로 따뜻한 송년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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