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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2007년 10월 30일자

최종수정 2020.02.12 13:15 기사입력 2007.10.30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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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의 도노프리오 수석부사장이 금년 초에 베트남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는 두 가지 목적에서 베트남을 방문했습니다. IT부문의 투자확대와 이를 위한 베트남 정부와의 협력이었습니다.

이때 베트남의 응우옌떤중 총리는 미국의 IBM부사장에게 “앞으로 베트남의 모든 주요 국가정책에 자문해 달라”는 요청을 했습니다. 이때 IBM 부사장은 “베트남은 국가발전을 위한 모든 부문에 혁신의지가 확고하다. 앞으로 IBM은 베트남 정부가 설정한 사회 경제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모든 협력을 아끼지 않겠다”는 말로 화답했다고 합니다.
그 후 베트남은 IBM을 국가정책의 자문파트너로 선택했고 혁신적인 정책개발은 물론이고 시행 평가에 이르기까지 IBM의 훈수를 받고 있습니다. 이념과 이론을 앞세운 탁상공론보다 세계적인 기업의 경영혁신 노하우를 받아들여 도이모이(Doi Moi)정책에 더 속도를 내겠다는 것입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듯 베트남에는 현재 등록된 소프트웨어 업체만 4천여 곳에 달하고 2만여 명의 IT전문 인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또 인텔, MS등 글로벌업체들의 R&D센터 설립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SK텔레콤과 삼성 등이 이미 기반을 잡고 있지만 휴대폰 인구로 따져도 5명중 1명꼴이라는 분석입니다.

베트남의 이같은 저력은 도이모이정책에서 비롯됐습니다. 베트남은 1986년부터 도이모이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후 베트남은 과감한 개혁 개방조치를 단행하며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쟁을 치른 미국과 경제동맹관계를 맺고 미국식 자본주의도 받아들였습니다.
도이모이는 베트남계 미국인인 와임 박사가 1982년 새로 만든 베트남어입니다. 베트남어로 도이는 변경한다는 뜻이고 모이는 새롭게 또는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도이모이는 새롭게 시작한다는 뜻이 됩니다. 도이모이 정책은 1986년 공산당 서기장에 취임한 구엔 반 린이 강력하게 시작했습니다. 도이모이는 사회주의의 기본골격은 유지하면서 자본주의를 접목시키는 정책이어서 베트남 판 페레스트로이카로 불리기도 합니다.

도이모이 정책에 의해 베트남은 1991년 경제개발 10개년 계획을 수립했습니다. 2000년에 1인당 국민소득을 400달러대로 늘린다는 방침도 세웠습니다. 1993년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약 57만 달러의 외자를 유치하고 1996년 15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받기도 했습니다.

1인당 국민소득이 100-200달러에 불과하던 베트남은 도임모이 정책에 힘입어 최근 수년 사이에 아시아 최대 쌀 수출국으로 부상했으며 일본 태국 대만 등의 1백여 개 기업들이 진출, 소비재 생산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도이모이 정책을 선포한 뒤 개혁개방 조치들을 단행, 연평균 7-8%의 높은 경제성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렇듯 요즘 베트남은 우리의 70년대와 80년대를 연상케 합니다. 그만큼 격동의 세월을 연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궁극적인 정책목표는 국민들이 어떻게 잘 먹고 잘살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저개발국에서는 국민들이 먹고사는 문제를 최우선에 두고 있습니다. 먹고살기는 결국 돈과 경제입니다. 베트남의 경우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경제적으로는 30년이라는 세월을 동면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이 선택한 것은 도이모이 정책이었습니다. 도이모이 개방정책은 올해로 19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요즘 떠오르는 베트남을 ‘제2의 중국’으로 표현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베트남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베트남전쟁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은 그러한 상처를 씻고 1986년 도이모이정책으로 개방주의를 표방한 후 고속성장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최근 베트남의 도이모이 정책과 경제발전 방향을 벤치마킹하겠다고 선언한바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기위해 김영일 북한총리가 베트남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를 위해 베트남의 기획 부서를 찾고 리조트도 시찰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베트남을 통해 경제학습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북한의 이같은 베트남 배우기는 체제유지와 경제성장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해야하는 절박한 사정을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북한이 체제특성상 맹목적으로 베트남의 개혁 경험을 따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트남을 모델로 삼겠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중국식 개혁 개방을 지속적으로 타진해 왔습니다. 그러나 성과를 거두지 못하자 개혁모델을 베트남으로 바꾼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베트남과 우리나라는 비슷한 점이 매우 많습니다. 동일한 한자 문화권이고 식민지 지배, 중국의 영향권아래 있었다는 점, 민족 간 내전, 폐허위에서 높은 고도성장을 이룩한 점 등이 그것입니다. 또 손재주가 뛰어나고 근면하며, 술 잘 마시고 노래를 좋아하는 것도 서로 비슷합니다. 젓가락문화를 가진 것도 그렇습니다.

그들과 우리나라가 이처럼 고도성장에 의한 경제발전을 이룰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그들도 우리도 전후 폐허의 잔해위에 남아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잘살아보자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던 점입니다. 잘 살아보자는 싹을 우리는 새마을 운동에서 찾았고 베트남은 도이모이 정책에서 찾았습니다. 그리고 지금 글로벌 시장의 패권을 노리고 있는 중국의 저력역시 개혁과 개방에서 비롯됐습니다.

1975년 4월30일 베트남전은 끝났고 통일 베트남이 탄생했습니다. ‘제2의 중국’을 표방하는 베트남이 역사의 아픔을 딛고 일어서기까지는 “과거는 과거일 뿐 도움이 된다면 미국과도 손을 잡겠다”며 생각을 바꾸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중국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중국의 저력은 1978년 제11차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채택한 개혁개방정책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제2공산혁명으로 불리는 이 프로젝트의 중심에는 덩샤오핑이 있었습니다. 그의 경제정책은 한마디로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黑猫白描(흑묘백묘)에서 출발합니다. 흑묘백묘론은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중국인민을 잘살게 하면 제일이라는 논리입니다. 물론 그가 89년 천안문 사건당시 민주운동을 탄압, 최대 오점을 남겼지만 13억 인민을 먹여살리고자했던 노력은 재평가 받을 만합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결심이, 또 지금 베트남에서 경제학습을 하고 있는 김영일 북한총리의 노력이 한반도를 글로벌시대의 새로운 축으로 올려놓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봅니다. 김정일식 흑묘백묘론, 김정일식 도이모이정책을 이끌어내는 기폭제가 되기를 바랍니다. 또 북한 의 개혁개방을 성공적으로 도와줄 지혜는 베트남이나 중국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도 찾을수 있다는 점을 유의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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