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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家의 역사(下)[제2창업 맞는 SK그룹]

최종수정 2007.10.30 11:29 기사입력 2007.10.30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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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경(현 SK)은 두 개의 수레바퀴로 끌고 나가는 형제회사다. 밖의 일은 내(종건)가 맡고 안의 일은 동생(종현)이 맡는다. 내가 밖에서 술을 마시더라도 동생은 아직 회사에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더 공부하겠다는 것을 내가 빨리 나와야 한다고 우겨서 나와 저 고생인데, 그냥 있었으면 편했을 터인데."

고 최종건 SK(옛 선경)창업주는 늘 입버릇처럼 미국 유학을 중도하차한 동생에 대한 애정에 대해 술회하기도 했다. 

그가 1973년 11월 폐암으로  48세의 일기로 별세한 뒤 동생인 최종현 회장에게 일체의 잡음 없이 경영권의 승계가 가능했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최종건 회장은 슬하에 최신원 SKC 회장 등 3남 4녀를 남겼지만, 경영권 승계를 두고 세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지 않는 전통을 만들었다. 

친형제간이라 경영권 승계에 맞닥뜨리면 '피도 눈물도'없는 몇몇 재벌가의 세태에서 사촌 형제간에 마찰 없이 화합 경영을 펼치는 것은 재계에서 극히 드문 일이었다. 

형제간의 우애는 곧 SK의 비상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최 창업주가 선경직물을 세운 뒤 아세테이트ㆍ폴리에스터 원사공장(현 SK케미칼) 건설, 워커힐 호텔 인수 등을 통해 당당히 대기업의 반열을 들어섰다면 최종건 회장은 유공과 한국통신 인수를 통해 4대그룹 진입의 초석을 쌓았다.  

선경직물의 대표였던 1973년 11월 최종건 회장은 선경화섬과 선경합섬의 사장으로 취임하면서 SK그룹의 경영권을 정식 승계 받는다. 

이로부터 정확히 7년이 지난 뒤 1980년 최종현 회장은 잊지 못할 해를 맞는다. '섬유에서 석유까지'라는 수직계열화를 완성시킬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된 한국석유공사(유공)를 손에 쥐게 된 것이다.

당시 유공의 인수는 어느 기업에 인수되느냐에 따라 재계의 판도가 바뀌는 중대한 사안이었다. 

대한석유공사는 국내 기업으로서는 최초로 매출액 1조원대를 돌파한 유일한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량기업을 두고 재계가 경합을 벌이는 건 당연했고, 당시 선경외에도 삼성, 남방개발 등의 업체가 인수경쟁을 벌였다. 

당시 재계는 선경의 유공인수를 두고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표현을 쓴 것도 과장된 표현이 결코 아니었다. 

최종현 회장은 유공을 손에 넣자 정보통신사업 진출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당시 국내에 정보통신분야에 법적, 제도적 여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는 상태인 1984년 미국에 경영기획실 산하 텔레커뮤케이션 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이를 토대로 최종현 회장은 1989년 미국 뉴저지에 현지법인인 유크로닉스사를 설립, 정보통신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삼게 했다. 

결국 1991년 설립된 선경텔레콤은 정보통신 기업들을 대상으로 조사용역, 교육훈련, 경영진단, 컨설팅 사업 등을 벌였고 이듬해 대한텔레콤으로 상호를 변경해 제2 통신 사업권을 획득하게 된다. 

최태원 회장 역시 미국 유학시절부터 당시 미국에서 부상하고 있던 정보통신사업에 관심을 기울여 향후 SK의 주력사업으로 정보통신을 꼽고, 미국 근무 중 정보통신사업을 위한 기초 공부를 착실히 했다. 

1994녀 귀국 후 경영기획실 사업개발팀에서 근무하면서 SK가 이동통신사업에 성공적으로 진출하는 데 커다란 역할을 수행하여 숨겨진 경영능력을 인정받게 되면서 그룹을 승계의 토대를 닦게 된다. 

이규성 기자 bobos@news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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