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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 ‘CDO 전도사’ 크리스토퍼 리치아르디

최종수정 2007.10.29 09:35 기사입력 2007.10.2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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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진원지 CDO 붐을 이끈 주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메릴린치의 지난 분기 실적은 93년 역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반면에 메릴린치는 2003년부터 2006년 초까지 모기지 증권들을 묶어 유동화한 자산담보부증권(CDO) 판매에 주력하며 업계 선두자리를 꿰찼으여 이 부문에서 큰 수익을 올렸었다.

이같은 메릴린치의 CDO 사업 부흥은 바로 크리스토퍼 리치아르디의 작품이다. 올해 38세인 리치아르디는 메릴린치 합류 전부터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같이 고위험을 감수한 새로운 분야 개발을 권장했다. 

CDO는 담보자산을 기반으로 여러 금융상품 묶어 새롭게 구성한 상품으로, 신용 위험에 따라 여러 파트로 나눠 운용된다.  위험도가 높은 자산에 대해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받고 만기시  투자원금을 회수하면 됐기 때문에 서브프라임 모기지 증권과 연계된 CDO는 고수익 분야로 주목 받았다. 

하지만 올해 여름 모기지 체납이 증가하는 가운데 과잉 공급 된 CDO 가치는 곤두박질 치며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진원지로 전락했다.

리치아르디는 CDO의 높은 수익율과 안정성에 대해 신용평가회사 및 투자자들 대상으로 지속적인 로비를 펼쳤다. 또한 주택시장 호황 시에 열성적으로 CDO를 쏟아내며 수익가를 이끌었다. 시장분석기관 딜로직 자료에 따르면 매릴린치의 연간 CDO 발행은 1999년 520억달러에 불과했지만 2006년 3880억달러로 급등했다. 메릴린치의CDO 거래 실적은 2002년 업계 15위에서 2004년 190억달러로 업계 1위가 되었다. 

월가의 ‘CDO 전도사’ 역할을 톡톡히 한 리치아르디는 기관 투자가 대상 주식 영업사원이었던 아버지 영향으로 뉴욕증권거래소와 월스트리트 무대로 쉽게 진입할 수 있었다. 리치아르디는 1990년대 초에 푸르덴셜생명의 모기지증권 거래 업무를 시작으로 1990년대 말 업계의 떠오르는 별로 급부상했다. 

리치아르디는 증권들의 구성 조합을 진일보시킨 선구자로 이미 CDO라는 이름으로 증권 묶음을 판매했다.  1999년 말 리치아르디는 푸르덴셜에서 복잡한 조합의 CDO를 판매했다. 2001년 여름 크레딧스위스그룹으로 옮기면서는 매월 최소 1개의 새로운 CDO를 내놓았다.  2001년 크레딧스위스는 12억달러 가치의 CDO를 운영했다. 

한편 CDO 시장에서 미비한 존재였던 메릴린치는 급성장 중인 새로운 사업으로 확장하기 위해 2003년 리치아르디를 영입했다. 당시 메릴린치의 신임 스탠 오닐 최고경영자(CEO)는 CDO 시장 진입을 모색하고 있었다.  리치아르디는 지난 2006년 2월 메릴린치의 고객사 코헨의 CEO로 자리를 옮겼다.

리치아르디는 주택시장 문제 징후가 2005년 중반에 처음 나타났지만 이를 무시하고 오히려 역대 가장 많은 CDO를 발행했다. CDO 사업의 과도한 추진으로 월가를 극한으로 밀어 넣은 그는 당분간 투자자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위윤희 기자 yhwee@news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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