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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김우중 전 회장과 北의 각별한 인연

최종수정 2007.10.02 10:26 기사입력 2007.10.0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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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정상회담과 함께 북한경제특구 행정장관에 전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거론되면서 김 전 회장과 북한과의 각별한 인연이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김 전 회장은 2005년 6월 해외 도피생활을 마감할 때까지 북한에 경제부총리로 간다는 소문이 끊이지 않을 만큼 긴밀한 대북 커넥션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1992년 1월 16일 김우중 전 회장은 평양을 방문하면서 북한과의 견고한 연결고리가 생겼다. 북한 당국이 남북 경제협력의 파트너로 그를 지명, 초청해 이뤄진 것이다.

김일성 주석과의 면담을 비롯한 10박 11일간 방북을 마치고 돌아온 김 전 회장은 당시 최고의 뉴스메이커로 부상했다.

김 주석이 "앞으로 평양을 제 집 드나들 듯 자주 드나들라. 6개월은 남쪽에 살고 6개월은 북쪽에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을 건넬 만큼 두사람의 두터운 친분은 큰 화제를 모았다.

당시 대북 핫라인으로, 남북정상회담 개최설까지 그의 입에서 확인하려는 언론의 집중포화에 김 전회장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이후 그는 5년 8개월간의 도피생활 동안 김정일 국방 위원장의 경제고문으로 위촉 할 것이라는 루머 등 수차례 방북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2004년 10월에는 북한을 방문해 북측 아태평화위 관계자와 신의주 특구 개발 문제를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은 현대 정주영 회장과 더불어 대북경협사업의 1세대 경제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평양방문 이후 북방 교역에 노력해 92년 10월5일 정부로부터 평안남도 남포공단에 재킷, 셔츠 등을 만드는 봉제공장을 설립해도 좋다는 허가를 받았다.

대우의 파트너는 북한의 삼천리총회사였다.

대우는 512만 달러를 투자해 최초의 남북한 합영회사인 민족사업총회사를 세우고 대우남포공장을 건설, 95년 5월 17일부터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김 전 회장은 정부의 승인도 받지 않고 북한을 안방 드나들듯 넘나들 수 있었다.

그와 북한의 관계는 그의 아버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 전 회장의 부친인 고 김용하 선생은 제주도에서 태어나 평양고보를 졸업하고 일본 메이지(明治)대학 예과를 거쳐 경성제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김용하 선생은 함경북도의 경성공립보통학교 교사를 거쳐 대구사범학교 교사가 됐는데, 이때 그가 가르쳤던 제자 가운데 한 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광복 직전 대구사범학교 교장을 한 김 선생은 해방 후 용산중"고교의 초대 교장을 거쳐 서울 상대 교수가 됐다. 이후 미군정청에서 일을 하다가 49년 4월부터 11월 사이 제4대 제주도지사로 근무했다.

김 선생은 도지사가 돼 금의환향했지만, 고향은 4"3사건(1948년)이라는 전대미문의 갈등에 빠져 있었다. 지사를 그만둔 그는 50년 5월30일 시행된 2대 국회의원 선거에 북제주에서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그 후 가족을 이끌고 서울에 올라왔는데 바로 전쟁이 일어나면서 가족과 헤어져 납북됐다.

김 전 회장의 형제는 5남1녀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김윤중이라는 이름을 가진 또 한 명의 형이 있다(6남1녀인 셈이다). 김 전 회장에겐 둘째 형이 되는 윤중 씨는 6"25전쟁 때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한다.

부친과 둘째 형이 납북되었기 때문일까. 김 전 회장은 대북경협사업에 누구보다 강한 애착을 나타냈다.

김진오 기자 jokim@news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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