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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2007년 10월 01일자

최종수정 2020.02.12 13:16 기사입력 2007.10.01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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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이나 신물질을 개발하려면 평균 1만 2000번의 실패를 거쳐야 합니다. 석유 탐사에서도 최소한 25번은 실패해야 비로소 하나의 유정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합니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는 그의 에세이에서 이같은 사례를 들면서 실패는 병가상사인데도 실패 자체가 두려워 오그라진 사람이 많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시인하고 자인하는 용기있는 사람을 보기가 쉽지 않다고 말합니다.

이 회장은 이처럼 실패를 시인하고 자인하는 용기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대합니다. 그러나 자만하는 사람에게는 좀체로 용서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작은 성공의 누적을 그다지 반기지 않는다는 그의 어록에서 이같은 면을 읽을 수 있습니다. 작은 성공으로 자만심에 빠져 더 큰 실패를 가져오는 경우를 많이 보아왔고 작은 성공에 만족하는 평범한 사람보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적 인물이 조직을 살찌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회장의 이런 경영스타일은 그동안 여러 차례 인사를 통해 보여주었습니다. 삼성카드가 엄청난 이익을 낼때 해당 CEO를 경질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금융계열 사장단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엄청남 이익을 내고 있는 해당 CEO를 질책하면서 5년 후, 10년 후에 대한 대비는 왜 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한후 인사조치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그는 이유 있는 실패는 반기지만 똑같은 실패를 반복하는 것에 대해서는 엄격하고 사전준비 부족, 경솔한 행동, 특히 안이한 생각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이회장이 최근 삼성전자 수원사업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어떻게 했기에 하이닉스에까지 뒤졌느냐”는 심한 질책을 했다고 합니다.(중앙일보 보도) 2000년대 들어 세계 반도체시장을 좌지우지해 온 삼성전자가 이 때문에 외환위기 이래 가장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돌입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D램값이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일본, 대만 업체까지 ‘타도 삼성’을 선언한 상태라 삼성의 위기감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 회장은 어려서부터 전자와 자동차기술에 남다른 관심을 가졌다고 합니다. 일본 유학시절 그는 새로 나온 전자제품을 사다 뜯어보는 것이 취미였습니다. 수많은 전자제품을 만져보면서 자원이 없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틈에 끼여 경쟁하려면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는 얘기입니다. 특히 73년에 닥친 오일 쇼크에 큰 충격을 받은 이후 한국은 부가가치가 높은 하이테크 산업에 진출해야 한다는 확신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회장이 반도체에 관심을 둔 것은 74년 한국반도체라는 회사가 파산에 직면했다는 소식을 들은 때부터였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첨단산업을 물색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염두에 두고 있는 차에 그의 관심이 이에 끌린 것은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당시 삼성 경영진이 TV하나 제대로 못 만드는 형편에 최첨단으로 가는 것은 너무 위험하고 시기상조라고 하면서 이 회사 인수에 강하게 반대했는데도 불구하고 이회장이 사재를 털어 이회사의 내국인 지분을 인수한 것은 반도체라는 이름에 그만큼 많은 매력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회장은 그 이후 직접 나서 반도체 공장과 일본을 오가며 기술 확보에 매달렸다고 합니다. 거의 매주 일본으로 가서 반도체 기술자를 만나 그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배우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일본 기술자를 그 회사 몰래 토요일에 데려와서 우리기술자들에게 밤 세워 기술을 가르치게 하고 일요일에 보낸 적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 노력 끝에 개발한 81년 개발한 것이 칼러TV용 색신호 IC였고 처음부터 반도체 사업 진출에 주저하던 선친인 고 이병철회장도 관심을 보여 적극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고 이병철회장은 83년 마침내 반도체 사업진출을 공식선언하고 맙니다.

이때부터 삼성은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섭씨 영하 15도의 혹한 속에서 6개월 만에 기흥공장을 완공하고 일본이 6년이나 걸려 개발한 64KD램을 6개월 만에 개발하는 것을 비롯 93년에는 반도체 사업을 시작한지 20년만에 메모리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회장의 반도체에 대한 애정과 자존심은 누구보다 강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외국업체도 아니고 국내업체에 뒤지는 부분이 있다는 것 자체를 인정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생각일 것입니다.

이 회장은 가끔 鬪犬論(투견론)을 강조합니다. 투견을 챔피언으로 만들려면 보통 생후 6개월에서 1년이 된 어린놈을 골라서 싸움부터 시킨다고 합니다. 어린투견의 싸움대상은 은퇴한 챔피언입니다. 은퇴한 챔피언은 나이가 들어 힘은 약하지만 워낙 노련해서 젖내 나는 어린 투견이 힘이 빠질 때까지 적당히 싸우다 30분정도 지나면서부터 어린놈을 공격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은퇴한 챔피언이 이길 때쯤이면 조련사가 그 놈을 떼어 놓습니다.

그렇게 한 번도 패하지 않으면서 퇴역 챔피언이 갖고 있는 기술을 전수받은 투견은 대회에 나가면 대부분이 챔피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번이라도 지면 그날로 은퇴시킵니다. 한번 싸움에 진 투견은 다시는 챔피언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반도체사업에서의 이회장의 질책과 관련, 이유 있는 실패로 볼지, 터무니없는 실패로 볼지, 투견론의 소신을 어떻게 적용할지 관심이 가는 월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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