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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느림의 미학, 인제 은비령길

최종수정 2007.08.22 12:28 기사입력 2007.08.2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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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도는 인생길···쉬어간들 어떠리


   
은비령에서 바라본 굽이 굽이길.  빠른 세상사에 오르고, 내리고 돌다보면 절로 느림의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은 빠름의 연속이다. 모든것이 앞만 보며 달리고 잠시의 여유도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빠르고 굴곡없는 인생을 원하지만 삶은 그런길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이어지고 바른길이 나오면 바로 굽은길로 접어든다.

매일 매일 빠르게 이어지는 일상에서 벗어나 오르고 내리고 굽어진 길을 따라 가다보면 삶의 여유와 느림의 인내를 배울 수 있다. 

강원도 인제를 지나 한계령정상에서 양양으로 가는 고갯길을 넘어면 지도에도 없는 길을 만난다. 소설가 이순원이 말한 '은비령' 길이다. 빠르게만 돌아가는 세상에 여유와 느림의 묘미를 일깨우는 여행지다.

◇굽이 굽이 느림의 선계에 빠지다
강원 산골 중에서도 가장 은밀하고 신비롭게 감춰진 길이 은비령이다. 
'은비령'은 이순원이 1996년 발표한 중편소설의 제목이자 배경이다.

작가가 소설화하기 이전에는 은비령이란 이름조차 없었다. 지금은 귀둔마을로 들어서는 고개전체를 은비령으로 부른다. 작가가 지도를 바꾼 격이다.

'은비령'의 무대를 보기위해 한계령으로 향했다. 길은 한없이 굽어 있다. 자동차들은 허덕이며 조심조심 굽은 길을 오른다.

한계령을 타는 내내 길은 꺾어지고 또 꺾어진다. 조금만 벗어났다가는 어느 결에 계곡으로 떨어질지 모른다.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괴로움과 고통이 따르는 우리네 인생길과 흡사하다.  

자연스럽게 차장 밖으로 펼쳐지는 내설악의 준봉들을 감상하며 달리니 느림의 여행이 저절로다. 뒤따라오는 차들의 추월 신호에 길 한편으로 물러서도 쉽사리 넘지 못한다. 덕분에 뒤 차도 느림의 여행 속으로 빠져든다.

한계령은 지난해 수해로 유실됐던 도로들은 아직도 복구 공사중이다. 계곡 곳곳에는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를 드러내고 있었다.

한계령 정상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장엄한 풍광과 저 멀리 동해바다의 모습은 느림의 인내에서 맛 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

◇우주속 시간에 묻힌 신비로운 은비령
정상에서 오색쪽으로 200m쯤 내려가다 우측으로 내린천이라고 적힌 샛길로 접어들었다. '어서오십시요 귀둔리'라고 적힌 표지석이 반기다.

   
소설 '은비령'의 시작지점인 강원도 인제의 귀둔마을 표지석에서 바라본 설악산의 풍경
은비령이 시작되는 곳이다. 표지석 옆에서 내려다보면 구절양장처럼 굽은 길이 설악의 절경을 타고 멀리 양양으로 이어진다. 승용차, 버스 할 것 없이 느림의 묘미를 즐기는 모습이 눈에 잡힌다.

은비령을 넘는 이 계곡의 이름은 필례계곡이다. 대동여지도에 보면 필례계곡을 '필노령'이라 해 노력을 아끼는 길, 즉 지름길이라 했다. 인제와 양양을 연결하는 고개가 한계령이라면 은비령은 그 샛길인 셈이다.

소설 '은비령'은 우주의 시간과 별의 시간을 견디는 사랑 이야기다. 주인공은 변산반도를 향하던 중 길을 바꾸어 은비령으로 향하고 은비령을 품고 있는 필례계곡에서 수천, 수만 년 전부터 영속해온 별의 세계에 진입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산 허리를 돌고 돌아서야 간신히 '은비령'의 주무대인 필례약수터에 닿았다.

주차장 앞 필례식당과 은비령 카페가 눈에 들어온다. 식당은 한가롭기 그지 없다. 손님이 너무 없다는 말에 주인인 김월령씨는 "몇 년전만 해도 사람이 많았지만 수해로 발길이 뜸해졌다"며 웃는다. 

   
강원도 3대약수인 필례약수
식당에서 채 1분도 안되는 곳에 소설 속 주인공이 머물던 집인 '은자당' 자리에 필례약수터가 있다.

붉은색 플라스틱 조롱박으로 목을 축인다. 철분이 많이 녹아 있는 탄산수로 비릿한 맛과 톡 쏘는 맛이 목줄기를 타고 넘는다.

필례약수는 오색약수, 방동약수와 함께 강원도 3대약수로 불리며 피부병과 위장병에 좋고 숙취해소에도 탁월하다고 전해진다.

오지였던 탓에 필례계곡 주변은 잘 보존되어 있다. 식당가와 주차장을 제외하고는 울창한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다.

약수터 위쪽으로 발길을 옮긴다. 계곡물소리 벗삼아 10여분 오르자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점봉산 아래로 자작나무 숲이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장관이다. 자작나무 숲 옆으로 영화 '태백산맥' 을 촬영할 때 세워둔 세트장이 있다. 주변의 자작나무와 묘한 대조를 이루는 세트장 마루에 올라섰다.

숨소리외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점봉산과 가리산의 준봉 아래로 펼쳐진 풍경만이 한 폭의 그림인 듯 시간이 멎는다. '은비령 세상은 멈추어 서고 2500만년보다 더 긴 시간을 은비령에 갇혀 우주 공간의 사랑에 빠진 남녀가 그곳에 있었던 것 같다'는 소설속 이야기처럼ㆍㆍㆍ.

시간마저 멈춰 버린 절경, 소설 속 장면을 더듬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고 아름다운 은비령이 그렇게 장관처럼 펼쳐져 있다.

   
필례약수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자작나무 숲길

왔던길을 되짚어 한계령으로 오른다. 다시 느림속으로 빨려들어간다.
 
한계령=글ㆍ사진 조용준기자 jun21@newsva.co.kr

◇여행메모
▲가는길=
팔당대교를 지나 양평, 홍천, 인제로 이어지는 44번 도로를 타고 가다 미시령, 한계령 갈림길에서 양양쪽 한계령을 탄다. 한계령 정상에서 우측 샛길로 5.6km가면 필례약수터. 또 인제를 지나 철정 검문소에서 451번 지방도 이용, 현리를 지나 점봉산을 끼고 가면 필례약수터. 내달 중순까지 한계령길은 수해복구공사로 부분통제된다. 

▲먹거리=필례약수터 앞 은비령 식당과 산장(033-463-4665)이 있다. 산채정식, 감자전, 송이칼국수 등을 판다. 민박도 가능하다. 여름철에는 내설악에서 가장 조용한 곳을 찾아오는 단골들이 많다.

▲주변 가볼만한 곳=한계령 초입에는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우거진 장수대와 한국 3대폭포의 하나인 대승폭포가 있다. 한계령을 넘어면 오색약수터도 꼭 들러볼만 하다. 오색천 개울가의 한 너럭바위 암반에서 약수가 솟는다. 철분과 탄산질이 많아 똑 쏘는 맛이 특이하다. 약수터에서 온정골 쪽으로 2 km쯤 올라가면 오색온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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