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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2007년 08월 21일자

최종수정 2007.08.21 10:26 기사입력 2007.08.21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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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영결식날-남편은 춤을 추고 있습니다. 영화의 한 장면 같지만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 장면을 보고 무엇을 느꼈습니까? 어제 저는 고 정주영 현대 창업주의 부인 변중석 여사 빈소에 다녀왔습니다. 빈소를 다녀간 사람이 5천명이 넘을 거라고 합니다. 잠시 머무르는 동안 재계의 거물급인사는 물론이고 한국사회에서 잘나가는 사람치고 이 빈소를 다녀가지 않은 사람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한국사회에서 차지하는 현대가의 위상이 높다는 얘기이고 이미 돌아가셨지만 고인이 되신 정주영 창업주와 부인인 변여사의 빈자리가 크다는 것을 뒷받침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빈소의 조문객보다 관심이 갔던 부분은 그동안 왕자의 난이다, 며느리와 시숙과의 갈등이다 해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왕회장’의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는 것이었습니다. 한때 경영권다툼으로 사분오열된 현대가의 후손들이 17년간 투병생활 끝에 별세한 변여사의 영정앞에서 다시 규합하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바램이었습니다. 유족들의 눈초리에서 저의 바램이 ‘의미있는 바램’으로 연결되리라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어 다행입니다. 아침에 눈을 뜨고 저는 잠시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습니다.

한나라 대선후보로 결정된 이명박씨와 고 정주영창업주가 춤을 추는 장면이 많은 신문에 실려 있었기 때문입니다.1981년 현대건설 여름수련회에서 당시 사장이던 이명박 후보와 정주영창업주가 함께 춤을 추는 장면을 보면서 영결식장의 고인은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 마지막 길을 떠났을까요? 남편인 정주영창업주가 현대그룹을 일군다음 대권에 도정했다가 실패했고 그 밑에서 샐러리맨 신화를 만들어가던 이명박씨가 이번엔 거대야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되어 청와대 CEO에 도전하는 날-평생 남편을 말없이 뒷바라지하던 변여사가 이 세상의 마지막 길을 떠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고인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영원한 현대가의 어머니로 칭송 받고 있습니다. 고인은 남편이 현대를 세계의 현대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재봉틀 한 대와 장독대의 장항아리가 자신의 유일한 재산이라며 근검절약을 온 몸으로 실천하는 내조로 일관해 오다가 돌아가셨습니다. 고 정주영 창업주는 이 땅에서 태어나서”라는 자서전에서 “존경하고 인정할 점이 없으면 사랑도 할 수 없다. 아내가 재봉틀 한 대를 유일한 재산으로 아는 점, 부자라는 인식이 전혀 없는 점, 평생 변함이 없는 점들을 나는 존경 한다”고 말했습니다.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도, 돈 많은 사업가도 안 부러운데, 다만 훌륭한 아내를 가진 사람은 부럽다고 친구가 말하더라”면서 변 여사를 아내로 두고 있는 행복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고인은 집에서 언제나 통바지 같은 걸 입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누가 찾아오면 그런 채로 나가 문을 열어주니까 손님은 으레 주인 아주머니를 찾았고 자기가 바로 안주인이라고 해도 좀처럼 안 믿고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었겠지요.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평생 불평이라고는 모르고 그저 묵묵히 변함없이 살아준 아내에 대해 항상 고마움을 가졌다는 정창업주의 말에서 나타나듯이 어쩌면 오늘 현대가의 명성은 고인이 있었기에 가능 했으리라고 생각해 봅니다. 최인호 작가의 자전적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영화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가 올 추석에 개봉된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옛 것, 낡은 것, 아날로그적인 것에 대한 향수를 많이 느끼게 구성되어 있고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이 주는 깊은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영화의 원작자인 최인호 작가는 이 영화를 보고 어두운 극장에서 그야말로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변 여사의 평소 생활이 옛 것처럼 보였을 때도, 낡을 것으로 보였을 때도, 아날로그적인 것으로 보였을 때도 있었지만 고인의 어머니상, 아내상은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일생을 헌신과 희생으로 살다 가신 고인은 한 가정의 아내이자 어머니로 존경받는 인생을 마무리 짓고 오늘 아침 저세상으로 가셨습니다. 새끼들에게 자기의 살을 다 뜯어 먹혀 키운 다음 죽는 어떤 물고기처럼 고인은 ‘좋은 어머니’로서도 성공한 인생을 살다 가셨습니다. 고인의 위대함을 되새기며 고개 숙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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