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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선후보 이명박 그는 누구인가

최종수정 2007.08.20 17:17 기사입력 2007.08.20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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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CEO 꿈꾸는 '샐러리맨의 신화'
안해본 장사 없을 정도로 가난 경험..찌든 가난 딛고 선 '샐러리맨 신화'

현대건설 입사 5년에 이사, 12년에 사장..추진력 강한 ‘불도저’
재수 끝에 서울시장 되며 정치입지 굳혀

17대 대통령 선거 한나라당 공식후보로 20일 최종 확정된 이명박 전 서울시장에게는 늘 따라붙는 수식어가 있다.
'샐러리맨의 신화'와 '청계천 복원'이다.
'말'이 아닌 '실적'으로 승부하는 정치인의 이미지를 얻은 배경이다.
여론조사 지지율 1위를 달리는 대중적 인기도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기업가 이미지는 이해타산에 밝은 '장사꾼'이란 역공을 당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밝혔듯이 이 전 시장은 1941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해방 직후 이전시장 가족은 아버지의 고향인 포항으로 돌아온다.
6·25 때 누나와 막내동생을 눈 앞에서 잃는 아픔을 겪었고 초등학생 시절부터 김밥을 팔면서 학교를 다녀야 했다.

고교 졸업 후에는 서울로 올라와 이태원 판자촌에서 일당 노동자 생활을 한다.
청계천 헌책방 주인이 거의 공짜로 준 책을 얻어 공부한 끝에 1961년 고려대학교 상과대에 입학했다.
대학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자원입대했으나 '기관지 확장증'이란 진단을 받고 논산훈련소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아 퇴소당했다.

매일 새벽 이태원 시장통을 리어카로 누비는 환경미화원과 막노동일을 하며 대학을 다니던 그는 3학년이던 1964년 굴욕적인 '한"일 국교정상화'를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 대법원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아 반 년간 복역 후 풀려나기도 했다.
이때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맺게 된다.

대학 졸업 후 65년 현대건설에 공채로 입사하면서 '샐러리맨의 신화'가 시작된다.
입사 5년만에 이사직에 오른 그는 12년만인 1977년 만 35세의 나이에 일대 사건으로 기록된 현대건설의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후 현대 계열 10개사의 사장과 회장을 역임하는 등 '샐러리맨의 신화'를 창조했다.

이 전 시장 특유의 직설적이고 대담한 화법은 초고속 승진과 현장 위주의 기업 경험에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물론 '신화'에는 이면도 있다. '친(親)재벌' 이미지가 뒤따르고, '개발시대식 성장제일주의'라는 지적도 적잖다.

샐러리맨으로서 신화를 창조한 '기업인 이명박'에게 정치판은 만만치 않았다.
1995년 서울시장 경선에 나섰으나 실패했고 이듬해 총선에서 '정치 1번지' 종로구에 출마해 이종찬씨를 누르고 당선됐지만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았고, 이 와중에 1998년에 다시 서울시장 경선에 도전, 최병렬씨와 경쟁했지만 선거법 재판이 끝나지 않아 의원직을 사퇴하고 미국으로 떠났다.

2002년 삼수만에 서울시청에 입성한 이 전 시장은 4년간의 임기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대권 도전장을 내놨다.
서울시장 선거공약으로 '청계천 복원'을 걸었던 그는 이번에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을 제안했다.

다수의 반대를 꺾고 청계천 복원과 대중교통체계 개편 등을 성공시킴으로써 강력한 추진력을 대중에 각인시킨 그는 보수정당 소속이면서도 '실천하는 개혁가'라는 이미지 구축에 성공하면서 이념적으로 중도, 계층적으로 중산층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흡수하는 데 성공했다.

이 전 시장은 어떤 측면에서 보느냐에 따라 긍정·부정적 평가를 오가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대선 핵심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도 "이명박이니까 해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환경을 무시한 개발지상주의"라는 역공의 소재가 되고 있다.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이 전 시장이 본선의 벽을 넘어 청와대에 입성할 수 있을지는 이제 온전히 그의 몫이다.

서영백 기자 ybseo@newsv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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