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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공동공간의 실종

최종수정 2007.06.11 12:29 기사입력 2007.06.1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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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 국토도시연구원장

예전 우리 아이들의 놀이터는 대개 집안 마당 아니면 동네 골목길이었다. 특별한 장남감도 마땅치 않았고 그저 깨진 기왓장을 갈아 세워놓고 쓰러뜨리거나, 길바닥에 조그만 구멍을 파놓고 조악한 유리구슬을 굴려 넣는 따위가 고작이었다. 가끔은 나무 막대기를 창 칼 삼아 전쟁놀이를 하기도 했고, 여자 아이들 사이에선 고무줄넘기가 가장 흔했다.
 
이런 놀이들은 나의 집, 너의 집이 아닌 "우리의" 골목길에서 이루어졌다. 아이들 뿐 인가. 여름날 저녁이면 동네 느티나무 아래 평상을 펴고 어른들이 몇몇 둘러 앉아 수박도 나누어 먹고 세상 얘기도 하던 게 바로 서울 한복판에서 일상처럼 보이던 모습이다. 그리고 이 모두는 내 집 네 집이 아닌 공동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일 들이다.
 
집의 크기만 해도 그렇다. 물론 그때라고 큰 집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넓지 않은 집에서도 별 불편 없이 행복했다. 조부모까지 대개 3대가 크지 않은 집에 함께 살면서도 그다지 불편함이 없었던 것은 반쯤은 개방된 대청마루와 마당이라는 일종의 완충공간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때문에 개인적, 사적 공간이 넓지는 않았지만 우리네 삶은 그런대로 풍요로울 수 있었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자연스레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삶의 모습은 도시화, 산업화의 와중에서 도시민의 주된 주거형태가 되어버린 아파트의 출현으로 크나큰 변혁을 겪었다. 우리 주위의 모든 공간은 내 것 아니면 네 것으로 점점 구분되어져 갔고 대부분의 개인 및 가족단위의 활동은 크지 않은 사적 공간으로 수렴되어 버렸다. 가족의 휴식도, 아이들의 놀이도 모두 내 집의 내부에서 수용되어야 했고 여럿이 함께 노는 일은 차를 타고서야 갈 수 있는 소수의 공원이나, 입장료를 지불해야 하는 유원지에서야 가능하게 되었다. 공동의 공간은 사라져가고, 사적인 개인 공간 이외의 곳은 아예 돈을 내고 사서 내 것으로 하던지, 아니면 일시적이나마 입장료를 내고 빌려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요즘 꾸준히 늘어나는 전원주택에 대한 관심과 수요는 답답한 아파트를 벗어나 풍광 좋고 한적한 시골에 보다 여유로운 사적 공간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이다. 그 바람에 아름다운 산하 곳곳이 파헤쳐지고 난개발이 만연하다. 만약에 지방정부 등이 도시주변이나 경치 좋은 산과 계곡에 단기간 쾌적한 생활이 가능한 다양한 숙소 등을 적절히 공급해 준다면 구태여 큰돈을 들여 환경을 훼손해 가며 나만의 별장, 나만의 전원주택을 마련해야 할 필요가 크게 줄어들지 모른다.
 
반면 정작 공동의 공간이여야 할 계곡, 명승지 등에는 무허가 업자들이 제멋대로 경계를 치고 평상을 설치하여 가무판을 제공하거나 음식을 팔면서 주변을 무차별 오염시키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단속과 관리는 극히 미온적이다. 확충이 이루어져야 할 이러한 공동공간은 방관한 채 국공유지의 매각 등 자꾸만 모든 공간의 사유화, 개인화가 쉴 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재주 좋은 일부 계층의 개인적 공간은 날이 갈수록 넓고 풍요로워지는 반면 많은 시민들의 복지를 위한 공동의 공간은 빠르게 줄어드는 현실을 보며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인가 다소 혼란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유럽의 노변 카페, 광장문화의 발달은 개인의 공간보다는 공동의 공간 형성에 보다 많은 정성을 기울인 정부와 시민의 공동노력의 결과이다. 황금 같은 도심의 엄청난 공간을 시민의 휴식과 재충전을 위해 공원으로 너그럽게 보유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대도시 역시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회이다. 한자박 자투리땅이라도 있으면 팔아치우지 못해 안달하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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