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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앤비전] 동물원 옆 미술관

최종수정 2007.05.14 12:29 기사입력 2007.05.14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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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일, 한국토지공사 국토도시연구원장

세상 남자들이 꿈꾸는 이상적인 삶은 스위스인 집사가 관리하는 영국의 대저택에서, 미국 월급을 받고, 일본 아내와 함께 중국 요리사가 준비 해 주는 음식을 먹으며, 그리고 가끔 이탈리아 애인을 만나 즐기는 것이라고 농삼아 얘기한다. 반면 뭔가 잘 안 풀리게 되면 중국 월급을 받고, 영국인 요리사가 해주는 음식을 먹으며, 한국인이 건설한 일본 집에서 사는거란다.
 
그런데 이에 더해서 하느님이 잠시 한눈을 팔아 일을 망치면 세상이 엄청 재미없고 뒤죽박죽으로 돼 버리는데, 즉 독일인이 코미디언이 되고, 미국인이 철학자, 영국인이 음악가가 되는가 하면, 일본인이 자선사업가, 이탈리아인이 교통경찰, 그리고 한국인이 도시계획가가 되는 최악의 상황이 발생한다고 한다 (홍사중 “한국인, 가치관은 있는가?” 중에서). 물론 농담이지만 도시계획 전문가입네 하는 사람들로선 여간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도시 꼬락서니를 한번 냉정하게 따져보면 정말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되고 있는 게 없다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우선, 사방에 널려있는 멋대가리 없는 콘크리트 박스 아파트단지들을 위시하여 어느 도시든 기본이 되는 토지이용에 있어 조화롭고 쾌적하지 못하다. 또한 도시구조의 틀이 되는 도로망 역시 원활한 흐름보다는 곳곳에 불편과 혼잡이라는 매듭 투성이다. 그 뿐인가. 질 높은 시민의 삶을 위한 도시 문화공간은 시민생활과 전혀 연계되지 못한 채 촌색시 양장 입은 듯 어색한 모습으로 엉뚱한 곳에 덩그러니 서 있을 뿐이다. 
 
날로 높아만 가는 회색의 주거공간은 하루가 다르게 도시의 허파를 옥죄어가고 있는데 일단 지어 놓으면 수요가 있으리라는 지나간 시대의 관행에 오늘도 도시 곳곳은 타워크레인이 점령하고 있다.
 
한국의 도시계획이 삼류라는 딱찌를 달게 하는 하나의 상징이 도로망 계획 및 정비이다. 현재 우리나라 대도시의 도로망은 자동차 위주의 대로 중심 체계이다. 10차선이 넘는 광로가 시내 간선축을 형성하는 대신, 이면의 서비스 도로는 부재에 가깝다. 현대도시의 상업?유통 기능을 지원하는 서비스 도로가 충분치 않으니 도심지는 늘 적하장처럼 북새통이다. 시민들이 걷는 인도 또한 연결되지 않는 곳도 많고, 때론 눈앞의 장소를 가기위해 지하도를 오르락내리락 한참을 돌아야 하는 경우도 수두룩하다. 이런 거리를 곡예처럼 걷다보면 ‘과연 한국의 도시계획은 코미디 같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국립극장은 장충단공원 위 남산기슭에 웅장하게 서있다. 또한, 가장 고상할 듯한 국립현대미술관은 과천의 서울대공원이라는 동물원 옆 산자락에 마치 놀이터처럼 자리잡고 있다. 이들 시설들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도시문화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곳들은 우선 위치도 생경하려니와 자가용을 타고 가기 전에는 쉽사리 접근도 어렵다. 대공원의 동물들이 차라리 시민들보다 나은 팔자이다.
 
세계 어디에도 이렇게 접근하기 힘든 위치에 대국민 문화시설들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개는 사람들이 가장 들르기 편하고, 지나가다가도 무슨 행사가 열리고 있는지 쉽게 볼 수 있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하고 있다. ‘국립’ 하면 뭔가 엄숙하고 품위를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시민들이 김밥 싸들고 원숭이 보러가는 동물원 옆에 붙어있는 미술관을 대단히 격조 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시민 생활과 유리된 문화시설은 졸부 돈 과시하듯 아무곳에나 붙여놓은 보석 악세사리에 불과할 뿐 시민생활과 전혀 융화되지 못한 채 겉돌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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