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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장칼럼]신문고와 국민청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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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신문고(申聞鼓)는 조선 태종 1년(1401년) 백성들의 억울한 일을 직접 해결해주기 위해 대궐 밖 문루 위에 달았던 북이다.


먼저 거주지 관청에 가서 자신의 딱한 사연을 고하고 관청에서 해결이 안 되면 신문고를 두드려 왕에게 직접 호소하는 제도로, 상소·고발 제도가 법제화돼 있음에도 문제 해결을 보지 못한 백성들에게는 최후의 직접 고발시스템인 셈이다.

그러나 신문고는 아무나 함부로 두드릴 수 없었다. 하급관리가 상관을, 노비가 주인을 고발할 수 없었고, 오직 국가의 일에서 발생한 억울한 사정, 목숨에 관계되는 범죄와 누명, 자신과 관계된 억울함만 고발할 수 있었다.


이런 까다로운 제한조건이 있음에도 신문고는 쉴 새 없이 울렸다. 하루라도 빨리 사건을 해결하고자 사소한 사건에도 신문고를 찾다보니 최후의 수단이 아닌 민원 급행처리 창구처럼 변질되어 갔다.


결국 신문고 사용이 더욱 엄격해지는 방향으로 제도 개편이 되어서, 북을 치기 전에 사헌부를 거쳐야 하고, 허위로 남을 무고하면 엄벌을 내리도록 바뀌었다. 호소할 수 있는 케이스도 역모 고발일 때나 즉시 칠 수 있고, 자기 자신에게 관한 일, 부자지간, 아내에 관한 일,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일 등으로 제한했다.

이쯤 되자 신문고 제도의 본래 취지와 달리 평민이나 천민, 지방에 사는 관리는 거의 쓰지를 못하고, 주로 서울의 관리, 양반들만 사용하는, 이를테면 수도권 공무원용 제도로 쪼그라들었다. 1401년에 시작된 신문고는 도입된 지 50년 정도는 상당히 활발히 운영됐으나 점차 유명무실해지면서 폐지와 부활, 개정, 또 폐지의 사이클을 밟으며 사라져갔다.


뉴스거리로도 자주 언급되는 ‘국민 청원’을 보고 있노라면 이런 신문고의 시작과 변화, 아니, 퇴행의 과정이 연상된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만들어진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국 사회 부조리를 짚고, 약자의 목소리를 담아 공론화하는 장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지금의 국민청원은 어떤가.


정부가 할 일인지, 국회가 할 일인지, 검찰이 할 일인지 등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분위기다.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법무장관 임용을 반대합니다.'라는 청원이 올라오자 며칠 뒤에는 '청와대는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반드시 해주십시오!!'라는 청원이 올라오는 식이다. '장제원 의원 음주운전 아들처벌',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 자녀들에 대한 전수조사', '나경원 자한당 원내대표의 각종 의혹에 대한 특검', '곽상도 의원에 대한 특검' 요구 등은 애교다. '검찰 해체 청원', '전 언론사 세무조사 청원',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 탄핵 청원'까지 요구한다.


문제 상황을 노출하고 함께 의견을 교환하는 소통의 통로에서 대립 세력들이 우르르 몰려가 기세싸움을 벌이는 전장이 되어가는 것 같다. 국민청원이 신문고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그간의 순기능을 잃어버린 채 분노 표출 공간, 상대 비방 편 가르기 조장 수단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개선·보완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김종화 기자 just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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