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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칼럼]'협상의 달인' 트럼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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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뉴욕=김봉수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사업가 시절부터 '협상의 달인'을 자처해왔다. 2016년 미 대선 직후 그의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은 뉴욕은 물론 국내 서점가에서도 불티나게 팔릴 정도였다. 그는 책에서 "다른 사람들은 종이에 그림을 그리거나 훌륭한 시를 쓰지만, 나는 협상을 좋아한다. 큰 협상일수록 좋다. 협상은 나만의 예술 양식"이라고 자랑했다.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성공시키고 TV 리얼리티 쇼 사회자로도 인기를 얻은 그가 미 대통령까지 된 데는 이 같은 협상 기술과 언변이 자리 잡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대통령 취임 후 그가 대외 협상 또는 거래에서 보여준 그의 '기술'은 달인의 그것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지난 7일 밤(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연속 트윗을 통해 발표한 아프가니스탄 반군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 취소가 최근 사례다. 이번 탈레반과의 평화 협상 전격 취소는 크게 두 가지 점에서 미국인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우선 어떻게 9ㆍ11 테러 18주년을 코앞에 둔 시점에 당시 공범이던 탈레반을 테러 대책 사령부이던 캠프 데이비드로 초청할 생각을 했느냐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에 참여하지 않은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까지 억지로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 평화협정 서명식을 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대외 정책의 성과에 집착하느라 미 국민의 정서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깜짝 쇼를 벌이려 했다는 비판이 거세다.

돌연 결렬 선언을 한 트럼프 대통령의 변덕도 문제가 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 등은 협상 중단 이유로 미군 1명 등 10여명이 죽고 20여명이 부상당한 5일 아프간 수도 카불의 차량 폭탄 테러를 들었다. 탈레반이 폭력 행위 중단을 약속해놓고도 연일 테러를 저질렀기 때문에 더 이상 협상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미국 언론들조차 이 같은 주장은 명분이 약하다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유엔(UN)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동안 탈레반 테러로 민간인 1366명 사망ㆍ2446명 부상, 미군 16명 사망 등의 피해가 발생했다. 비록 이번 테러로 미군 1명이 사망했지만 이것만으로 특별히 평화 협상을 중단할 정도의 중대한 상황은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 사건 이후 현지 방송에 출연한 폼페이오 장관은 "이번 테러가 왜 협상 중단의 특별한 이유가 됐냐"는 질문에 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가 트럼프 행정부 내 '비둘기파'로서 아프간에서의 테러는 협상 중단이 아니라 협상을 해야 할 이유라며 반대파들을 설득해온 장본인 아니었냐는 점을 꼬집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번 협상 중단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북ㆍ미 정상회담 때처럼 막판에 갑작스러운 중단을 통해 상대방을 압박하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대내외 변수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외교에서 사업가 시절의 단순한 협상 전략은 통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둘기파인 폼페이오 장관과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의 갈등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한 채 이리저리 정책을 바꾸는 탓에 혼란을 자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취임 후 중국과의 무역 협상, 북한 비핵화 협상, 이란핵협정(JCPOAㆍ포괄적공동행동계획) 파기, 팔레스타인ㆍ이스라엘 등 중동 평화안, 유럽연합(EU)과의 무역 협상, 베네수엘라 사태 개입 등 일은 잔뜩 벌려놨지만 제대로 해결된 갈등은 거의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여기에 올해 초까지만 해도 크고 작은 협상에서 자신만만한 태도로 상대방을 압박하던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조급해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초읽기'에 몰려 엉뚱한 수를 둘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이처럼 총체적 난국에 빠진 미국의 대외 정책에서 한 가지 교훈을 얻게 된다. 철학과 장기적 비전 없이 눈앞의 실익 챙기기에만 급급하고, 국가 간 신뢰ㆍ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지도자의 개인기에 의존하는 국가의 대외 정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한일 갈등, 미ㆍ중 간 패권 다툼 등 대외 현안이 첩첩산중인 한국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대목이다.




뉴욕=김봉수 특파원 bsk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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