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아파트 화재의 인명 피해가 늘어나면서 국내 고층 건축물 화재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가연성 외장재가 불을 키운 대형 화재를 여러 번 겪었고 그때마다 규제가 강화됐지만 위험은 여전히 남아 있다. 홍콩 아파트 화재가 '대나무 비계'로 인해 피해를 키웠다는 점에서는 '철근 비계'를 사용하는 국내 상황이 다소 안전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일단 화재가 발생하면 후속대응 측면에서는 안전을 담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아파트 화재도, 인명 피해도 늘었다
2일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20년 1월~2025년 11월) 발생한 공동주택(아파트) 화재는 총 1만7259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 화재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2020년 2808건이었던 아파트 화재는 2021년 2666건으로 주춤했다가 2022년 2759건, 2023년 3001건, 2024년 3193건으로 늘었다. 올해도 지난달 27일까지 2832건의 아파트 화재가 발생했다.
인명피해도 크다. 5년 새 아파트 화재로 인한 사상 피해는 총 2259명으로, 이 중 225명이 사망하고 2044명이 부상을 입었다. 연도별로는 2020년 364명(사망 36명)에서 2021년 375명(사망 34명), 2022년 336명(사망 41명), 2023년 407명(사망 35명), 2024년 363명(사망 28명)이었다. 올해 피해상황은 더욱 크다. 지금까지 414명(사망 41명)이 다치거나 숨졌다.
Advertisement
특히 피해 상당수는 대피 중에 발생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2020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화재로 인한 사상원인을 분석한 결과, 총 1만1958건의 전체 화재 인명피해 중 연기·유독가스를 흡입(4974건)하거나 피난 중 뛰어내려서 피해(180건)를 입은 사례가 전체의 43.1%를 차지했다.
아파트 화재 시 인명피해는 대피 중 또는 화재진압 중에 많이 일어나는 만큼 무조건적인 대피보다는 화재 상황 등을 판단해 대피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방청은 아파트 화재 시 입주자에 대한 피난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 '아파트 화재 피난안전대책 개선방안'을 배포하기도 했다. 아파트 화재의 인명피해는 대부분 대피 과정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무조건적인 탈출보다는 건물 구조와 화재 상황을 정확히 판단한 대응이 중요하다는 게 소방청 측 설명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국내 아파트는 법적으로 특별피난계단이 설치돼 있어 화재가 발생하면 이 계단을 통해 지상이나 옥상으로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며 "계단실에는 제연설비(연기 차단 설비)가 갖춰져 있어 연기가 내부로 유입되거나 확산되지 않도록 설계된 것이 특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층 공동주택의 경우 일정 층마다 피난안전구역이 마련돼 있어 주민이 이 공간에서 대기하다가 소방대원이 도착하면 함께 이동하는 방식으로 구조가 이뤄진다"면서 "일반 승강기와 달리 화재 시에도 운행하도록 설계된 피난용 승강기가 별도로 있어 평소 건물 내 피난용 승강기의 위치와 적정 사용법을 숙지해두면 실제 상황 때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안전조치 강화에도 '사각지대' 있다
2018년 고시된 '건축물의 피난방화구조 등의 기준에 관한 규칙'에 따라 30층 이상 공공주택에서는 피난용 승강기 설치가 의무화됐다. 피난용 승강기 의무화 등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실제 대피·구조 과정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행정안전부 국가승강기정보센터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있는 승강기는 88만2788대다. 승객용 29만6941대, 장애인용 26만3112대, 소방구조용 20만4236대 등이다. 그러나 피난용 승강기는 1647개에 그친다. 김승호 승강기대학교 교수는 "개정된 기준에 따라 30층 이상 건축물에는 피난용 승강기를 두도록 하고 있다"면서도 "기존 건물 상당수는 개정 이전 기준으로 지어져 대응력은 건물별로 편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노후 고층 건물의 안전 공백도 문제다. 초고층 및 지하연계 건축물에 대한 법제가 본격적으로 정비된 시점은 비교적 최근이기 때문에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피난 설비 미흡·설계 기준 차이·지하와 연계된 화재 확산 가능성 등을 그대로 안고 있는 상태다. 송 교수는 "법 제정 이전 건물은 피난·방재 기준이 지금 수준에 미치지 못해 사실상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며 "노후 고층 건물에 대한 실전형 훈련과 안전점검이 제도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대비 부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입을 모았다. 홍콩과 달리 한국은 피난 설비·기술 기준이 상대적으로 앞서 있음에도, 실제 주민 대피훈련·교육·비상전력 확보 등은 사실상 제도화돼 있지 않아 화재 발생 시 취약하다는 것이다.
이재은 충북대 국가위기관리연구소장은 "한국도 홍콩처럼 대형 화재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예방과 대비가 핵심인데, 정작 초고층 거주민 대상 훈련이나 대피 교육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연구소장은 "정전 상황에서도 승강기가 작동하도록 하는 예비전력 확보가 필수지만 이런 부분도 아직 미흡하다"며 "노약자나 장애인은 계단 대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고려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덧붙였다.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