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다이내믹스와 비전 센싱 시스템 공동개발 협약
LG이노텍이 글로벌 로보틱스 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손잡고 로봇용 부품 시장에 본격 진출한다. 기존 스마트폰 카메라 중심의 사업에서 벗어나 인간형 로봇(휴머노이드)에 탑재될 핵심 부품 개발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모색하는 첫 행보다.
이번 협업은 단순한 부품 공급이 아니라 공동개발 방식으로 진행되며 문혁수 대표 체제 아래 추진해온 사업 고도화 전략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특히 LG그룹 입장에선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인수한 현대차그룹과의 협력 가능성도 커졌다. 현대차그룹의 로봇·모빌리티 전략과 맞물려 차세대 핵심 부품 공급처로 입지를 강화할 기회를 확보했다는 분석이다.
LG이노텍은 보스턴다이내믹스와 로봇용 부품 개발을 위한 협약을 체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양사는 로봇의 '눈' 역할을 하는 '비전 센싱 시스템'을 함께 개발한다. LG이노텍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인간형 로봇 '아틀라스'의 차세대 모델에 장착될 비전 센싱 모듈을 개발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는 모듈로 인식한 시각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를 맡는다.
LG이노텍이 로봇 관련 개발에 본격 착수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초 미국 실리콘밸리의 로봇 스타트업 '피겨 AI(Figure AI)' 투자 라운드에 참여하며 로봇 시장 진출 신호탄을 쐈고, 이번 협약으로 기술 개발 단계까지 전진했다. 피겨 AI는 인공지능(AI) 선도 기업인 오픈AI와 협력해 인간형 로봇을 개발한 기업이다.
'아틀라스' 차세대 모델에 장착… 현대차그룹과 전방위 협력 기대
이번 협력은 현대차그룹과의 시너지로 확장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LG이노텍은 이미 차량용 카메라·전장부품 분야에서 현대차그룹과 협력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로봇과 모빌리티 기술을 잇는 교차 협업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다. LG이노텍이 기술 파트너로 자리매김할 경우 공급망 다변화와 기술 공동 기획 등 전략적 연계가 이뤄질 수 있다.
LG이노텍이 개발하는 비전 센싱 시스템은 RGB(적녹청) 카메라뿐 아니라 3D 센싱 모듈 등 다양한 부품을 하나로 통합한 형태다. 이 시스템은 야간이나 악천후 등 가시성이 떨어지는 환경에서도 센서 간 상호작용을 통해 주변을 정밀하게 인식할 수 있다. 자율주행차와 마찬가지로 로봇이 스스로 환경을 인지하고 판단하는 데 핵심 역할을 맡게 된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이사가 올해 3월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제49기 정기 주주총회' 이후 기자들과 만나 사업 전략에 관한 질문을 받고 있다. 장희준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LG이노텍의 광학 기술은 스마트폰뿐 아니라 차량용 자율주행 카메라 등 다양한 응용 분야에 적용돼 왔다. 원천기술을 기반으로 향후 로봇·반도체·차량 등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
문혁수 대표는 그간 중국 경쟁사의 저가 공세에 대응해 스마트폰 카메라에 편중된 수익 구조를 개선하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는 데 주력해 왔다. 이번 로봇 부품 개발 착수는 이런 전략의 전환점을 상징한다.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협업을 시작으로 다양한 원천기술을 로봇 플랫폼에 접목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며 향후 협력 범위를 넓힐 방침이다.
문혁수號, 본격적인 사업 고도화·다각화 착수
문 대표는 지난 3월 주주총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2027~2028년에는 휴머노이드 관련 사업이 1년에 열 배씩 성장할 것"이라고 언급하며 로봇 시장에 대한 강한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로버트 플레이터 보스턴다이내믹스 최고경영자(CEO)는 "LG이노텍과 협력해 로봇 비전 혁신을 이끌고 로봇 '눈' 개발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게 돼 매우 기쁘다"며 "로봇도 인간처럼 세상을 보고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협력을 통해 스마트폰 카메라 수준에 버금가는 혁신적인 비전 센싱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혁수 LG이노텍 대표는 "로보틱스 분야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가진 보스턴다이내믹스와의 협력을 계기로 LG이노텍은 로봇용 부품 시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며 "로봇 시장을 선도하는 핵심 부품을 지속해서 선보이며 차별화된 고객 가치를 만들어 나가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