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서울 아파트촌 사이에 움츠린 듯 자리 잡은 한 요양원. 1층 정문으로 들어서자마자 오른쪽으로 큼지막한 유리문이 하나 더 보였다. 누가 봐도 문이 있을 자리가 아니었다. ‘앰뷸런스 전용문. 평상시 잠겨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정체를 알려줬다. 생명이 위급한 어르신이 오가는 문 옆으로 개원식 때 배달 온 화환 몇 개가 어색하게 서 있었다.
앰뷸런스 전용문이 있는 곳은 원래 건물 외벽 자리였다. 요양원 원장이 멀쩡한 벽을 허물고 유리문을 새로 낸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요양원이 문을 열고 2주쯤 지났을 때였다. "새로 생긴 요양원을 한번 둘러보고 싶다"며 공직자들이 찾아왔다. 원장은 친절하게 안내했다. 보기 드문 치매전담실, 층층이 꾸며놓은 정원,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하게 청소된 방. 치매를 앓는 할머니들은 활동실에 모여 바구니 만들기를 하던 중이었다. 더러 침대에 누워 TV만 보는 할아버지들도 있었다. 적막하지만 평화로운 오후였다.
평상시엔 굳게 잠긴 앰뷸런스 전용문…멀쩡한 벽뚫어 눈에 띄지않게 만들어
견학을 마친 공직자들이 떠날 무렵이었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한마디를 툭 내뱉었다. "여기서는 (어르신들이) 아침에 돌아가셔도 밤에 모시고 나가야겠네." 원장에게는 이 말이 비수가 돼 꽂혔다. “위독하거나 돌아가신 어르신들이 동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하라는 압박처럼 느껴졌어요. 고민 끝에 큰길에서 아예 안 보이는 곳에 문을 만들게 됐지요."
요양원에는 119구급대 차량과 앰뷸런스가 수시로 오간다. 그때마다 어르신들은 들것이나 휠체어에 의지해 이동한다. 결국 원장은 벽을 뚫어 어르신들이 몰래 이동할 통로를 만들었다. "동네에서 민원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입소하신 어르신들의 외출이 더 힘들어지거든요. 고육지책으로 내린 결정이긴 한데…" 원장이 말끝을 흐렸다. 요양원을 바라보는 주변의 인식이 못내 서운한 것이다.
“밤에 환한 불 거슬린다” “기저귀 냄새 안 나게 해라” 동네주민 민원 끝없어
이곳의 입소자 10명 중 9명은 치매 환자다. 환자 돌보는 것도 벅찬데 '기저귀가 담긴 쓰레기봉투는 언제 내놓을지', '밤에 불은 몇시에 끌지' 이런 사소한 것까지 동네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 한다.
"오후 8시밖에 안 됐는데 빨리 요양원 불을 끄라고 줄기차게 민원을 넣는 주민도 있어요. 어르신들이 화장실에 가고, 요양 보호사들이 돌아다니려면 불을 켜야 하는데 어쩌란 말인지. 쓰레기봉투 버릴 때도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에요. 냄새 민원이 들어올까봐 건물 안에 꽁꽁 싸놨다가 해가 지면 쓰레기 수거차가 오기 직전에 내놔요."
통계청의 장래인구추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중은 올해 20%를 넘고 2036년에는 30%, 2050년에는 무려 40%에 달한다. 노인 문제는 내 부모, 내 가족, 미래의 내 일이다. 어르신들이 마음 편하게 늙고 병들고 작별하는 공간을 우리 동네에서 품을 수 있어야 모두의 노후가 안녕할 수 있다.
목차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 "마지막까지 내 집에서 살래"…집에서 늙고 죽을 권리를 찾아서
- "혼자 살 수 있을까 그게 걱정"…100살까지 집에 살려면 필요한 것들
-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돈 있고 많이 배운 노인들이 온다
- "성한 이가 없제. 잇몸 교수님 집에 올때만 기다려라"
- "의사양반, 돈 낼 테니 집에 또 오면 좋것는디"
- "퇴원 뒤 막막했는데…가사간병사가 날 또 살렸쥬"
- "돌봄플러그 거실에 꽂아두면…혼자 살아도 든든해"
- "요양원은 싫어…내집서 살려면 치매 안 걸려야지"
- "나가기도 힘든데…운동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 경로당 가세요?… ‘老치원’으로 오세요
- 내 집에서 눈 감으려면 이 정도는 바꿔야 안심
- "우리 동네인데, 대기만 200번"…청약보다 치열한 집앞 요양원
- '폐교'를 요양원으로… 어르신을 위한 학교는 왜 없을까
- 오늘도 아버지는 문이 아닌 벽으로 외출했습니다
- 점심밥 주는 경로당, 30명 한끼 예산이 7만원이라고?
- 작은 집 이사로 노후 준비…"관건은 세금폭탄입니다"
- 얼굴을 닮아가는 노년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