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을 시니어하우스로 ⑮ 살던 데서 계속 살려면 이 정도로 바꿔야
무엇보다 안전한 집이 필수
정부서 100만원 지원하나 장기요양등급 노인만 해당
"100만원으론 거실에 안심매트 깔다말아"
아픈 노인들에게 '집수리 문의·계약' 어려운 일
경제적 여유있는 노인에겐 국가가 소액지원하고
인테리어 업체 연결만 시켜줘도 큰 도움
지난해 11월 어느 날, 서울 양천구 목동의 윤수근 할아버지(83) 집 앞에 인테리어 자재 박스가 차곡차곡 쌓였다. 작업자 2명이 익숙한 손놀림으로 거실 전체에 매트를 깔고, 집안 곳곳에 손잡이를 달았다.

"이제 넘어질 걱정 안 해도 돼"
윤 할아버지의 아내 방희연 할머니(81)는 "다른 것보다 화장실을 고쳐서 참 좋다"고 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한밤중 화장실에 갈 때마다 지켜봤다. "화장실에 영감이 짚고 일어설 만한 게 없어서 앞으로 고꾸라질까 봐 늘 걱정이었거든. 이제 변기 손잡이가 생겼으니까 혼자 알아서 가겠지. 나도 편히 잘 수 있을 거 같아." 안방 침대 옆에도 안전바를 세웠다. 누워서 버튼만 누르면 불을 켜고 끌 수 있는 전등 리모컨도 걸어 놨다.
윤 할아버지는 2년 전만 해도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빌 정도로 건강했다. 21년 전 아파트가 준공된 직후 이사와 쭉 여기서 살았다. 아파트 노인회장을 맡을 만큼 동네일에 관심도 많았다. "'따릉이'라고 있잖아. 시에서 빌려주는 자전거. 그걸 정리하고 소독하는 일을 맡았거든. 그 일 하고 집에 오다가 넘어져서 고관절이 부러졌어. 그 길로 지팡이 신세가 된 거지."
윤 할아버지는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았다. 얼마 전에는 거실에서 크게 미끄러질 뻔했는데 요양보호사 덕분에 위기를 넘겼다. 곁에 있던 할머니는 놀란 가슴을 간신히 쓸어내렸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요양보호사 선생님이 '나라에서 장기요양등급 노인들을 대상으로 집을 고쳐주는 사업을 한다라고 일러주더라고. 100만원씩 지원해주니까 우리 집도 신청해보라고. 그래서 이번에 공사를 했지."
국가가 지원해 집수리…대상 넓혀야
이 제도의 정식 명칭은 '재가노인 안전환경조성 시범사업'이다. 보건복지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주관한다. 2023년(1차)에는 280명, 지난해(2차)에는 540명이 신청했다. 거실·침실·화장실 바닥매트와 안전손잡이 같은 걸 집에 설치하면 100만원씩 보조금을 준다.
권 대표는 고령자 낙상예방 전문 사회적 기업인 해피에이징을 창업해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대부분 어르신이 돈을 아끼려고 100만원까지만 보수하는데 그 금액이면 거실 절반에 매트를 깔기도 힘들다"며 "고장 난 욕실 수전이나 전등 교체 정도로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노인들의 집을 안전하게 꾸미는데 100만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윤 할아버지 집에서는 자식들이 나섰다. 전용 84㎡ 규모 아파트를 수리하는 데 들어간 총비용은 245만원. 지원금 100만원을 뺀 나머지는 아들딸이 보탰다.
마침 집에 들른 막내아들 윤현준씨가 집안 곳곳을 둘러보며 말을 보탰다. "우리 부모님처럼 집수리가 필요한 분들이 많을 텐데 아픈 어르신이 인테리어 업체를 직접 알아보고 계약하는 건 어려운 일이잖아요. 여유 있는 집에는 국가가 소액만 지원해주고, 더 필요한 건 자비로 수리하시라고 어르신들께 먼저 제안하고 인테리어 업체까지 연결해주면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목차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 "마지막까지 내 집에서 살래"…집에서 늙고 죽을 권리를 찾아서
- "혼자 살 수 있을까 그게 걱정"…100살까지 집에 살려면 필요한 것들
-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돈 있고 많이 배운 노인들이 온다
- "성한 이가 없제. 잇몸 교수님 집에 올때만 기다려라"
- "의사양반, 돈 낼 테니 집에 또 오면 좋것는디"
- "퇴원 뒤 막막했는데…가사간병사가 날 또 살렸쥬"
- "돌봄플러그 거실에 꽂아두면…혼자 살아도 든든해"
- "요양원은 싫어…내집서 살려면 치매 안 걸려야지"
- "나가기도 힘든데…운동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 경로당 가세요?… ‘老치원’으로 오세요
- 내 집에서 눈 감으려면 이 정도는 바꿔야 안심
- "우리 동네인데, 대기만 200번"…청약보다 치열한 집앞 요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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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아버지는 문이 아닌 벽으로 외출했습니다
- 점심밥 주는 경로당, 30명 한끼 예산이 7만원이라고?
- 작은 집 이사로 노후 준비…"관건은 세금폭탄입니다"
- 얼굴을 닮아가는 노년의 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