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을 시니어하우스로] 6-2."나 운동시켜 준다고 이웃이 집에 찾아와"
동네 노인에 관심있는 이웃이 자원
의사가 어르신 진료한 후 운동방법 알려줘
건강돌봄리더가 노인 집에 방문
함께 운동하고 보살펴
부천시 소사구 은성로의 주택가에 사는 최선례 할머니(89)가 다리에 힘을 주고 벌떡 일어났다가 다시 주저앉았다. "아이고. 힘들어." "이제 두 번 남았어요. 영~차!" 옆에서 할머니를 어르고 달래는 사람은 동네 이웃이자 통장인 서보미씨(42)다. 그는 최 할머니 집에 '건강돌봄리더' 자격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찾아온다.
"어머니, 이번에는 자전거 타기예요. 다리를 좀 더 펴고 힘차게 돌리세요." 최 할머니는 마른 장작처럼 굳은 다리를 힘겹게 들어 올려 휘익휘익 저었다.
건강돌봄리더는 '주민이 주민을 돌보는' 사회 안전망을 위해 통합돌봄 시범지역인 부천시가 만든 제도다. 부천 시민 중에서 이웃 노인의 건강과 돌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신청할 수 있다. 선발되면 20시간 돌봄교육을 받고 동네 어르신 집에 찾아가 함께 운동한다. 어떤 운동이 필요한지는 의사가 미리 알려준다.
김아영 부천시 돌봄통합팀 주무관은 "돌봄 대상 어르신 댁에 의사가 1차로 방문진료를 가서 필요한 운동을 파악한다"며 "건강리더는 이를 토대로 운동을 도와드린다"고 설명했다. 최 할머니는 지난해 가을 넘어진 이후 양로원 발길도 끊고 온종일 집에서 지낸다. 그러다 보니 다리 운동이 시급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서씨는 최 할머니 집에 올 때마다 30분짜리 돌봄계획을 꽉 채워 온다. 혈압과 혈당 수치를 재고, 할머니 다리를 마사지건으로 풀어준다. 다리 운동을 하기 전 준비 운동이다.
"운동이 다 끝나면 '수고하셨다'라는 의미에서 아로마 오일로 손 마사지를 해드려요." 서씨가 가방에서 오일을 꺼내자 할머니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을 맡기며 말했다. "내가 이런 호사를 누리고 살아."
건강돌봄리더로 참여하는 부천 시민은 현재 20명이다. 이들은 매주 독거노인 80명의 집을 찾아간다. 돌봄 기간은 6개월, 활동비는 1가구당 9000원이다. 사실상 봉사활동인 셈이다.
돌봄 서비스를 받는 어르신은 비용을 내지 않는다. 2019년 이 제도가 생긴 이후 지금까지 부천시 예산으로 지원해왔다. 김 주무관은 "경제력은 따지지 않고 돌봄 필요도만 보고 대상자를 선정하는데 혼자 사시는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 어르신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서씨가 집에서 나서려 할 때쯤 낡은 새시 현관문이 삐걱 열렸다. 옆집 할머니 두 분이 방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었다. "운동 다 끝났어?" 최 할머니는 냉장고에서 베지밀 세 개를 꺼내 서씨 가방에 하나를 집어넣고, 할머니들에게 하나씩 건넸다.
"나는 가족이 없어. 일찌감치 이혼해서 아이도 없어. 형제가 다섯이었는데 전부 암으로 죽었어." 최 할머니는 가족들 병수발 하느라 재산을 다 날렸다. 10년 전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와 터를 잡았다. 그동안 가족 같은 친구들도 생겼다.
"겨울만 되면 할머니들이 죄 우리 집으로 몰려와. 울 집 아랫목이 아주 뜨뜻하거든. 내가 요양원 신세라도 지는 날에는 동네 할머니들 갈 곳이 없어지겠지. 그러니 내가 건강해야 해. 다리 운동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봄에는 지팡이 짚고 동네 산책 정도는 할 수 있겠지."
목차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 "마지막까지 내 집에서 살래"…집에서 늙고 죽을 권리를 찾아서
- "혼자 살 수 있을까 그게 걱정"…100살까지 집에 살려면 필요한 것들
- "세상에 공짜가 어딨어" 돈 있고 많이 배운 노인들이 온다
- "성한 이가 없제. 잇몸 교수님 집에 올때만 기다려라"
- "의사양반, 돈 낼 테니 집에 또 오면 좋것는디"
- "퇴원 뒤 막막했는데…가사간병사가 날 또 살렸쥬"
- "돌봄플러그 거실에 꽂아두면…혼자 살아도 든든해"
- "요양원은 싫어…내집서 살려면 치매 안 걸려야지"
- "나가기도 힘든데…운동 선생님이 집으로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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