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집을 시니어하우스로] 7-② "치매 오면 요양원이야. 한 시간 걸려도 공부하러 가"
집에서 살려면 머리 더 많이 쓰고 건강해야
어르신들 우울감도 줄어
그런데 여기서는 운동도 하고 오카리나 부는 것도 가르쳐줘.
내가 초등학교뿐이 안 나왔거든. 뭐라도 배우는 게 좋아."
대전 대덕구 중리주공아파트 3단지 상가에 있는 돌봄건강학교는 정순임 할머니(82)의 '못 배운 한'을 풀어주는 곳이다. 정 할머니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침마다 버스를 타고 한 시간 걸려 이곳에 '등교'한다.
돌봄건강학교에 다니는 어르신 대부분은 중리동 근처 아파트 주민이다. 정 할머니는 멀찌감치 떨어진 송천동 단독주택에 살고 있다. 어쩌다 정 할머니가 이곳과 인연을 맺었을까. "여기에 돌봄건강학교가 있다는 걸 내가 알 턱이 있겠어. 까맣게 몰랐지. 내가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는데,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여길 추천해줬어. 전화해서 나도 다닐 수 있냐고 물어보니까 오라고 하더라고. 다음 날부터 등교해서 반년을 지금까지 결석 한번 안 하고 다녔어."
정 할머니가 동네 경로당 대신 이곳을 고집하는 건 치매에 안 걸리고 요양원에 안 가겠다는 목표 때문이다. 학교에서는 오전 10시부터 한 시간씩 치매 예방 활동 강습이 열린다. 인지 능력을 키워주는 후미 네트 걷기 운동을 리듬에 맞춰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힌다.
"치매 걸리면 꼼짝없이 요양원에 가야 하잖아. 친구들 보니까 그런 데 가면 다시 나오는 이가 없더라고. 요양원은 싫어. 나는 내가 살던 집이 익숙하고 좋거든. 영감이랑 50년 넘게 같이 살던 집이야. 친구들도 여기 다 있단 말이여. 내 집에 살려면 더 많이 움직이고 머리도 써야지. 그런 면에서 학교가 큰 도움을 줘."
점심은 집에서 싸 온 식빵과 구운 계란, 두유로 해결한다. 오후 1시부터는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땀을 빼는 유산소 운동 시간이다. 그리고 오카리나 수업까지 마쳐야 '하굣길'에 나선다. 정 할머니는 "요즘에는 하루하루가 살맛 난다"며 "5년 전에 영감이 먼저 가고 우울증을 앓으면서 수면제를 먹어야 잠이 들었는데 이제는 약도 끊었다"고 했다.
대덕구는 지난해 돌봄건강학교 이용자 741명 중 무작위로 선정된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대체로 좋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체성분 검사 기구를 활용해 건강 상태를 확인한 결과 10명 중 6.2명이 건강이 호전되거나 유지됐다. 한국형 노인 우울척도검사 결과 10명 중 7.4명은 우울감이 줄었다.
김영례 대덕구 복지정책과 통합돌봄정책팀장은 "돌봄건강학교에 다니시는 어르신들의 자발적인 건강관리 의지가 높아졌고 이는 수치로도 확인됐다"며 "어르신들이 단순히 시간을 보내려고 오는 곳이 아닌, 의미 있는 돌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이곳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6일 대전 대덕구 한마음아파트 단지에 자리한 법동돌봄건강학교 외벽에 어린이 교육기관 인증패가 걸려 있다. 법동돌봄건강학교는 폐원한 어린이집 공간에 마련한 시설이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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