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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

"혼자 살 수 있을까 그게 걱정"…100살까지 집에 살려면 필요한 것들



[내 집을 시니어하우스로]②100살까지 집에 살려면 필요한 것들
한국, 작년 12월 초고령사회 진입

일본처럼 '지역포괄케어' 첫발
방문의료·영양관리·집수리 등
집에서 노인 돌보는 '통합돌봄' 준비 중

예산·인력·경험부족 해결 시급해
"여태 걷는 건 문제 없었어. 석 달 전만 해도 수영장 가서 친구들이랑 아쿠아로빅도 했지"
"여태 걷는 건 문제 없었어. 석 달 전만 해도 수영장 가서 친구들이랑 아쿠아로빅도 했지"
"근데 갑자기 무릎 관절이 심하게 고장이 났잖아. 이제 시장에 반찬도 못 사러 가는 신세가 됐지 뭐야. 의료 파업 때문에 수술 날짜도 자꾸 미뤄져."
"근처 사는 딸이 아침마다 밥 챙겨준다고 왔다 갔다 하는데 걔가 고생이지. 아침마다 지팡이 짚고 집 앞에 목욕탕에 가서 더운물에 무릎을 지지고 와."
"그런데 이렇게 시간만 보내다가 더 못 움직이면 집에서 혼자 살 수 있을까, 그게 걱정이지"
- 지난해 10월 28일, 서울 성북구 한 아파트에 사는 박종임 할머니(81)

노인들은 아프거나 다쳐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집에서 사는 게 힘들어진다. 몸 상태에 따라 노인의 생애주기는 ‘건강-노쇠-요양’ 단계로 나뉜다. 국토연구원이 발표한 ‘고령자의 지역사회 계속 거주 지원’ 보고서를 보면 건강 단계를 ‘스스로 삶을 꾸려갈 수 있는 상태’로 정의했다. 노쇠 단계는 ‘한 가지 이상의 돌봄이 필요해지는 상태’다. 노인의 약 60%가 해당하는데, 건강이 더 나빠지는 걸 막아야 할 시기다. 요양 단계는 ‘일정 수준의 돌봄’이 필요하다. 노인의 약 10%가 이 단계로,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건강관리와 생활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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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사는 노인들, 위기가 오는 때는
▲지난해 11월 18일 도요아케시에 거주중인 와타나베 사치코(90) 할머니가 '챳토 서비스'(250엔에 30분간 노인을 돕는 서비스) 도우미들의 부축을 받아 집에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11월 18일 도요아케시에 거주중인 와타나베 사치코(90) 할머니가 '챳토 서비스'(250엔에 30분간 노인을 돕는 서비스) 도우미들의 부축을 받아 집에 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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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쇠’ 혹은 ‘요양’으로 넘어가는 문턱에서 노인들은 내 집에서 살 것이냐, 시설로 갈 것이냐 갈림길 앞에 서게 된다. 유애정 국민건강보험공단 통합돌봄연구센터장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의사가 집으로 와야 하고, 요양보호사가 와서 밥도 해줘야 하고, 방에 안전 손잡이도 있어야 한다"며 "이런 요건을 갖춰야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다"고 했다.


일본은 초고령 사회에 진입한 2005년부터 이런 방식으로 노인들이 집에 살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지역포괄케어’라고 부르는 이 제도는 ‘의료’(병원·약국 서비스)·‘생활지원’(가사·안부확인)·‘요양’(목욕도움·재활훈련) 세 축이 같이 움직인다. 의사와 간호사,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가 자전거를 타고 골목길을 다니며 동네 노인들의 집을 수시로 살핀다. 위급 상황에도 30분 안에 달려갈 수 있다. 자식이 돌봐주지 않는 사회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보살펴야 노인들이 내 집에 사는 게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지역포괄케어’가 일본 전역에 자리 잡은 건 2010년 이후다. 몸이 쇠약해지는 75세 이상 후기고령자가 이즈음 급속하게 늘면서 사회보장재정이 바닥을 드러낼 거란 경고가 나왔다. 아픈 노인이 많아지면 병원비와 돌봄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의료·개호(요양)보험료 부담도 커지기 때문이다. 노인들이 집에서 자립적으로 살 수 있도록 돕는 게 시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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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도 日따라 '통합돌봄' 첫발 뗐지만, 갈 길 멀어

지난해 12월 한국도 인구 5명 중 1명이 65세인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이에 발맞춰 한국형 지역포괄케어인 ‘통합돌봄’이 첫발을 뗐다. 지난해 3월 국회에서 ‘통합돌봄 지원법’(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내년부터 모든 지자체는 노인들이 집에서 계속 살 수 있도록 의료·돌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현재 광주 북구·충북 진천·대전 유성·경기 부천 등 12개 지역에서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이들 지역에서는 국비와 지방비를 한해 5억3000만원씩 들여 총 10억6000만원으로 통합돌봄 서비스를 운영한다. 유 센터장은 "12개 지역은 준비를 잘하고 있지만, 다른 지자체들은 아직 걸음마도 시작 못 했다"며 "통합돌봄이 전국으로 확산하려면 예산 부족, 인력 부족, 경험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해서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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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 ‘통합’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이유가 있다. 시범사업 지역 중 하나인 진천군의 이재철 주민복지과 주무관은 "의료와 돌봄을 잘 융합하는 게 통합의 핵심"이라고 했다. 그는 "대상자 선정 전에 어르신 댁에 꼭 가본다"며 "냉장고라도 열어봐야 식사를 어떻게 하시는지, 무슨 약을 드시고, 어디가 불편한지 알 수 있다"고 했다.


진천군은 통합돌봄 대상자 관리를 위해 매주 한 번 영상회의를 한다. 복지담당 공무원·의료진·사회복지사·보건소 담당자·치매안심센터 관계자가 참석한다. 대상자 상태에 따라 건강보험공단 직원·물리치료사·한의사·약사가 참여할 때도 있다. 이 주무관은 "대상자 정보를 공유하며 방문의료, 영양관리, 생활지원, 집수리 같은 필요한 돌봄서비스를 제공한다"며 "경과를 살펴 돌봄을 끝내는 시기까지 결정한다"고 했다.

내 집에서 눈 감을 수 있을까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안영일(89)씨가 의료진에게 장기요양 재택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해 10월 29일 광주광역시 북구 한 아파트에서 안영일(89)씨가 의료진에게 장기요양 재택 의료 서비스를 받고 있다. 강진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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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돌봄 대상자는 소득 수준이 아닌 건강 상태로 결정한다. 저소득층이 아니거나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지 않아도 된다. 돌봄이 필요할 정도로 건강이 나쁘다면 누구나 지원받을 수 있다. 병원이나 건강보험공단, 노인복지관을 통해 대상자를 추천받기도 하고, 어르신들이나 자녀들이 직접 지자체에 연락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도 이런 의료와 돌봄 서비스가 있긴 하다. 몸이 아픈 독거노인 한 명을 사회복지사, 요양보호사, 행정복지센터 공무원 등 3~4명이 보살핀다. 문제는 이들끼리 말 한마디 섞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인에 대한 정보는 각자 맡은 영역에서만 아는 게 전부다. 독거노인이 약을 안 챙겨 먹어도, 생활지원을 해주는 사회복지사는 모르고 지나치는 게 현실이다.


유 센터장은 "이미 존재하는 서비스들을 연결만 해도 통합돌봄을 시작할 수 있다"며 "통합돌봄이 자리 잡아야 어르신들이 지금 사는 집이 시니어하우스가 되고, 일본처럼 집에서 임종하는 어르신들이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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