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백악관으로 화려하게 복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대대적인 '바이든(조 바이든 전 대통령) 지우기'에 나서며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시대의 부활을 선언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 무더기 폐기를 시작으로 남부 국경 국가비상사태 선포, 파리기후변화 협정 재탈퇴, 1·6 의회 난입 사태 연루자 대거 사면 등 행정명령을 우르르 쏟아냈다. 특히 북한을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언급해 1기 때와 마찬가지로 북미 간 직접 핵담판에 나설 수 있음을 예고했다.
취임일성으로 "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주의)"를 앞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압승과 의회 상·하원 장악이란 '터보 엔진'을 달고 집권 2기 더욱 강력해진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정책 뒤집기…행정명령 78개 대규모 폐기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워싱턴 D.C 의회 의사당 '로툰다 홀'에서 취임식을 마친 뒤 오후 늦게 지지자들 2만여명이 운집한 '캐피털원 아레나' 경기장을 찾아 그들의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에서 행정명령에 잇달아 서명했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서명한 행정명령 등 78개를 대규모 폐기하는 '1호 행정명령'을 시작으로 파리기후변화 협정 탈퇴, 전 부처에 대한 인플레이션 총력 대응 지시 등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자들을 위한 행정명령 서명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여러분은 지금 미국의 황금시대를 보고 있다"며 "가능한 빨리 나라를 복원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후 백악관으로 돌아와서도 주요 행정명령 서명을 이어갔다. 그동안 예고한 대로 불법이민 문제 해결을 위한 남부 국경 국가 비상사태 선포,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 선언, 1·6 의회 난입 사태 연루자 1500명 사면 등이 발표됐다. 예상과는 달리 관세 부과와 관련한 신규 조치는 일단 보류했다. 다만 2월1일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 부과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美 황금시대 열 것"…국경·관세·에너지 등 '美 우선 정책' 예고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 서명과 앞서 진행된 취임 연설에서 MAGA의 부활을 예고했다. 특히 29분간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연설 곳곳에서는 미국 우선주의와 함께 바이든 행정부의 흔적을 지워 "미국을 완전히 복원"하고 "상식의 혁명"을 시작하겠다는 의지가 확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부 국경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취임 연설을 통해 "모든 불법 입국을 즉시 중단하고, 수백만 명의 외국인 범죄자들을 그들이 온 곳으로 돌려보내는 절차를 시작할 것"이라며 "남부 국경에 군을 보내 우리나라에 대한 재앙적인 침략을 물리치겠다"고 말했다. 불법 입국자를 구금하고 이민자들이 합법적 지위를 얻을 때까지 미국 입국을 금지하는 멕시코 잔류 정책을 재시행하겠다고 밝혔다.
관세 부과 원칙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 노동자와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 시스템을 즉시 점검하겠다"며 "다른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 미국인에게 세금을 부과하는 대신 외국에 관세와 세금을 부과해 미국인들을 부유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외국 기업으로부터 관세를 거둘 '대외세입청'을 신설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파나마 운하 통제권을 되찾겠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중국에 파나마 운하를 넘겨주지 않았지만 지금 중국이 그것을 운영하고 있다"며 "되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멕시코만 명칭을 '아메리카만'으로 바꾸도록 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하겠다고 했다. 이날 취임식 이후 취재진과 만나선 미국의 "국제 안보를 위해 (덴마크령인) 그린란드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혀 영토 야욕을 거듭 드러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그린 뉴 스캠(신종 녹색사기)'이라고 비판해 온 바이든 전 대통령의 '그린 뉴딜' 폐기도 공식화했다. 그린 뉴딜의 핵심인 전기차 의무화 정책 역시 폐지 대상이다. 그는 대신 석유를 비롯한 화석연료 시추·생산을 확대하기 위해 국가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위기는 에너지 과잉 소비와 치솟는 가격으로 발생했다"며 화석 연료 증산을 의미하는 구호인 "드릴, 베이비, 드릴(drill, baby, drill)"을 다시 외쳤다.
아울러 그는 "오늘부터 미국 정부 공식 정책상 성별은 남녀 두 개만 존재한다"며 '워크(woke·깨어있음, 진보주의자를 비꼬는 말)' 문화 척결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7월 펜실베이니아 유세 도중 암살 시도에서 가까스로 목숨을 구한 것을 언급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두겠다"고 강조했다.
취임 연설서 바이든 공개 저격…바이든은 헛웃음, 굳은 표정 지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8년 만의 취임 연설에서 2기 행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와 이를 이행할 행정명령을 설명하는 데 상당한 비중을 뒀다. 하지만 취임사 곳곳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향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그는 이날 취임사에서 바이든 행정부를 가리켜 "급진적이고 부패한 정권"이라고 저격했다. 이어 "내가 당선된 건 끔찍한 배신을 되돌리고, 수많은 배신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한 것"이라며 "미국의 쇠퇴는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던 바이든 전 대통령과 카멀라 해리스 전 부통령은 면전에서 이뤄진 무차별적인 비판에 헛웃음을 짓거나 굳은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가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 다른 지도자들을 향해 광범위하고 날카로운 공격에 나섰다"며 "복수의 영웅인 우울한 트럼프가 또 다시 어두운 자화상을 그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