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공장의 죽음]④위험한 기계 앞에 빈틈 많은 법은 무용지물

법이 정한 안전 조치의 빈틈

편집자주이재명 대통령의 불호령대로 야간 초과 근무를 없애 노동강도를 낮추면 모든 게 해결될까. 반복되는 SPC그룹 공장의 끼임 사망 사고 핵심은 관리되지 못한 기계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위험 감지 시 기계를 멈출 수 없었다는 것에 있다. 아시아경제는 3건의 사망 사고 과정과 기계를 재구성하고 사고를 막을 수 있었던 순간을 톺아봤다.

SPC그룹 공장 노동자들이 위험한 기계와 일하다 목숨을 잃는 사고가 반복된 데에는 기업의 허술한 기계 관리를 제때 바로잡을 수 없는 법의 빈틈이 있었다. 기계 안전점검이 건설업에 초점 맞춰진 탓에 제조업 현장의 기계는 사실상 회색지대에 있는 셈이다. 위험한 상황에서 근로자가 기계를 멈출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법이 사문화된 점 역시 사고로 이어졌다.


지난달 27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12시간 근무를 마친 노동자가 퇴근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강진형 기자

지난달 27일 경기 시흥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12시간 근무를 마친 노동자가 퇴근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강진형 기자

원본보기 아이콘

12일 아시아경제 취재 결과 최근 3년간 SPC에서 노동자 끼임 사망 사고를 낸 기계들은 국가기관의 사전 점검·감시 대상에서 빠져 있었다. 이는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제89조에 따라 대통령령으로 정한 안전인증 대상이 아닌 기계를 제조 또는 수입하면 기업이 '스스로' 안전 확인을 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내용에 따른 것이다.

기업은 기계가 제품 설명서와 자율 안전기준에 충족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면 되는 간단한 신고 절차를 거친다. 국가기관이 기계의 위험성을 사전에 직접 점검·감시할 의무가 없다 보니 공장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나서야 기계에 문제가 있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다만, SPC는 간단한 신고 절차마저도 지킬 필요가 없었다. 안전사고가 발생한 기계들을 2013년 자율안전확인신고 대상에 포함되기 전 도입했기 때문이다. SPC 측은 "(기계들을) 최초 도입하던 시기에 안전 관련 신고는 불필요했다"며 "추후 자체적으로 (기계의) 안전성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빵 공장의 죽음]④위험한 기계 앞에 빈틈 많은 법은 무용지물 원본보기 아이콘

현행법은 기계 안전점검의 의무를 건설업에 초점 맞추고 있다. 산안법 제84조에 따라 프레스·크레인·높은 작업대·곤돌라·리프트 등 건설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계들은 의무적으로 고용노동부가 지정한 인증기관을 통해 예비심사, 서면심사, 기술능력 및 생산체계 심사, 제품심사 등을 거쳐 안전인증을 받아야 한다. 아울러 안전인증 기관은 2년에 1회 이상 해당 기계가 안전인증 기준을 지키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건설 현장의 안전을 직접 점검하고 시정할 권한도 고용노동부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모두 가지고 있다. 건설기술진흥법 제54에 따르면 국토교통부 장관과 특별자치시장, 특별자치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 등은 건설공사의 안전 확보가 필요할 경우 현장을 점검할 수 있고 시정명령 등 조치를 할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앞서 SPC 공장에서 발생한 안전사고들을 계기로 내년 6월부터 안전인증 대상에 혼합기와 파쇄기, 분쇄기 등을 포함하는 산안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시행할 예정이다. 식품 제조업 공장에서 쓰는 모든 기계가 아닌 일부 사고 발생 기계에만 적용하는 땜질식 조치다.


서용윤 동국대 산업공학과 교수는 "건설 현장의 기계는 국토교통부가 주로 관리를 하고 반도체처럼 협회의 힘이 강한 곳은 협회 차원에서 안전을 신경 쓴다"며 "실질적으로 식품 등 제조업 공장 기계의 안전을 점검할 의무를 가진 기관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똑같은 작동 방식을 가지고도 어떤 기계는 안전검사 대상에서 빠지는 문제가 있다"며 "구체적인 품목을 정하는 방식이 아닌, 작동 방식을 기준으로 안전검사 대상을 정한다면 더 많은 기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치권 역시 법 체계를 고쳐야 한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태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반복되고 있는 산업재해를 막기 위해서는 위험성이 있는 기계의 점검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며 "행정력 중복과 안전검사 대상 지정 방식 등 근본적인 산업재해 예방 시스템을 돌아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기계에 문제가 있어도 '작업중지권' 사용 어려워
[빵 공장의 죽음]④위험한 기계 앞에 빈틈 많은 법은 무용지물 원본보기 아이콘

법은 1995년부터 노동자에게 위험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작업중지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산안법 제52조는 근로자가 산업재해가 발생할 급박할 위험이 있을 경우 작업을 중지하고 대피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다. 또한 사업주는 급박한 위험이 있다고 근로자가 믿을 만한 이유가 있을 때 근로자를 해고하는 등 불리한 처우를 해선 안 된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는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일을 멈춘 노동자와 사측의 법정 공방이 빈번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작업중지권을 사용한 노동자의 손을 들어준 대법원의 판단은 2023년 11월 처음 나왔다. 2016년 7월26일 세종시 부강산업단지 내에서 위험 물질이 가스 형태로 나오자 조남덕 금속노조 콘티넨탈오토모티브일렉트로닉스 지회장은 직원 28명과 공장에서 대피했다. 하지만 사측은 업무 복귀를 거부한 조 지회장에게 정직 3개월의 중징계를 처분했고 조 지회장은 징계 취소소송을 걸었다. 대법원은 "회사 작업장이 유해물질로부터 안전한 위치에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조 지회장은 소방본부, 근로감독관의 발언을 토대로 대피를 권유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노동자가 사측과 오랜 법정 공방을 벌이며 법원의 판단을 듣는 데 걸린 시간은 6년이다.


노동자가 작업중지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요건을 객관적으로 명시하고 작업중지와 재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 SPC는 근무 체제 개편과 함께 작업중지권을 강화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정재욱 서울과학기술대학교 안전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모든 업종의 작업 중지 기준을 정하는 건 무리지만 작업중지권 규정이 사문화되는 것 역시 안 된다"며 "현재 법 체계에서는 어떨 때 작업중지권을 부여할지 명확한 정의가 없는데 업종·사업장별 특성에 맞게 노사협의체 또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통해서 작업중지권을 협의해야 한다고 법이 기준을 제시한다면 (작업중지권을 행사하는데) 더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SPC의 기계 끼임 사고의 더 자세한 내용은 아시아경제 비주얼 뉴스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asiae.co.kr/visual-news/article/2025091015165318961





공병선 기자 mydillon@asiae.co.kr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