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소아의료]⑥"관련 법, 전담 부처 신설해 재건 나서야"

현행 의료시스템, 소아의료 특수성 반영 어려워
日, '성육기본법' 시행 이어 '어린이가정청' 신설

편집자주지난해 2월 의과대학 증원에 반대해 병원을 떠났던 전공의들이 일 년 반 만에 수련을 재개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지만 중증·응급환자를 다루는 필수 진료과의 상황은 여전히 위태롭다. 특히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낮은 출생률과 함께 불합리한 수가체계, 갈수록 높아지는 사법 리스크 등으로 전공의들이 지원을 기피하고, 기존 전문의들은 이탈하고 있다. 지역 간 의료서비스 격차가 벌어지면서 갑자기 발생하는 응급 소아환자, 전문적인 집중 치료가 필요한 중증 소아질환의 진료체계도 흔들리고 있다. 태어나는 아이도 적은데, 아이들을 돌볼 의사는 더 부족한 상황. 아시아경제는 6회에 걸쳐 소아의료 체계의 현실과 개선 방향을 짚어 본다.

무너진 소아의료를 재건하기 위해선 소아의료의 특수성과 소아 보호라는 가치를 반영한 관련 법과 전담 부처 신설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성인과 질환 중심의 현행 의료 시스템 속에선 소아의료 시스템이 논의의 중심에 서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선례로는 소아의료 시스템 개선을 위해 2019년 관련 법을 시행하고, 2023년 전담 부처를 신설한 일본의 사례가 꼽힌다.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 "소아의료 공백 해소 위해 전담 법·부처 필요해"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이 국회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전담 법과 부처를 통해 소아의료 살리기에 나서야 합니다."

소아청소년과(소아과) 전문의인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이주영 개혁신당 의원은 27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주장했다. 이 의원은 지난달 29일 소아의료계의 숙원이었던 '아동건강기본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1982년생인 이 의원은 동국대 의대를 졸업, 울산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소아응급의학과 세부 전문의다. 국내 최초로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 지정을 받은 순천향대천안병원에서 약 9년간 근무 후 정계에 입문했다.


이 의원에 따르면 아동건강기본법안은 성인 중심 구조인 현행 의료법체계의 한계를 넘어 소아의료의 특수성을 반영하기 위해 발의됐다. 아동의 건강한 성장에 대한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을 규정하고 아동건강기본계획의 수립과 아동 건강정책의 종합적 추진을 위한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는 정치·정책적 이유로 소아의료 시스템에 비효율이 초래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의원은 "소아전문응급의료센터도 연구에 따르면 6개 권역에 거점화를 해 설치해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병원이 십수 개로 분산됐다"며 "18명의 전문의가 3개 거점센터에서 근무한다면 24시간 운영이 가능하고 배후당직자가 지원을 할 수도 있게 되지만 십수 개로 분산되면 어느 곳도 정상 운영이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전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2차 병원 응급실 등에서도 상황이 나빠질 것 같은 아이를 받지 않는다. 전원이 안 되면 책임을 져야 하니 받을 수 있는 환아도 기피하게 되는 것"이라며 "문제가 안 될 환자만 받다 보니 보호자들은 경증이어도 응급실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해 정작 진짜 응급·중증 환아 진료 역량은 더욱 부족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의원은 또 "십수 년 전만 해도 지방 2차 병원들은 장중첩증 환아를 받아 치료해왔다. 하지만 소아외과가 아닌 일반 외과 전문의가 꼬인 장을 풀다 찢어진 사건에 의료진 책임을 묻는 판결이 나온 이후 지역 응급실에선 환자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결국 장중첩증 환아가 창원에서 헬기를 타고 서울까지 가게 되는 촌극까지 벌어지게 됐다"고 했다.


이에 소아의료 시스템 개선 담론을 주도할 수 있도록 어린이 건강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책임지는 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게 이 의원의 주장이다. 현재 한국은 관련 법이 모자보건법과 아동복지법 등으로 나뉘어 있는 등 소아 건강 전반을 다루는 법체계는 사실상 공백인 상황이다. 이 의원은 "부처 역시 마찬가지"라면서 "보건복지부에 구강정책과와 정신건강관리과, 자살예방정책과 등은 있지만 소아의료 관련 담당과는 없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러면서 "당장 조직을 새로 만드는 것은 재정적인 이유로 어렵겠지만 아동건강기본법안이란 기본법이 추후 전담 조직 신설의 근거 조항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담 법과 조직을 통해 소아 건강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게 되면 생기는 이점에 관해 그는 "스위스에선 학교 보건시스템에서 아이들의 신체와 건강 상태를 학생부 적듯 꾸준히 관리한다"며 "학교에서부터 아이들의 발달상태나 이상징후를 관리해 보호자가 가정에서 알아차리기 전에 건강 문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도 교육부와 복지부의 관련 권한을 합친 전담 부처가 생긴다면 참고할 수 있는 방안"이라며 "이른 관리는 상태 호전에 도움이 되고, 건강보험재정 건전성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학교에서부터 간호사 심리상담 제도 등을 운영해 10대 자살률을 낮추는 등 다양한 긍정적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담 법·부처 앞세워 소아의료 살리기 나선 日

이 의원의 주장이자 소아의료계의 숙원인 소아의료 전담 법·부처 신설의 사례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일본에서는 ▲급속한 저출산·고령화로 아이의 건강한 성장을 보장하는 사회적 정책이 충분하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의료 제공 체제 등에 있어 지역 간 격차가 심화하며 ▲성육(신생아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의 일련의 성장) 과정 지원 관련 연속성 부재 및 파편적인 부처별 협력 관계 등이 문제가 되자 사회적으로 관련법 제정 필요성이 제기됐다.


이에 일본의사회가 2004년부터 제정을 위해 노력해온 '소아보건법'을 기반으로 2018년 '성육과정인 자와 그 보호자 및 임산부에 대해 필요한 성육의료 등을 빠짐없이 제공하기 위한 시책의 종합적 추진에 관한 법률(성육기본법)'이 만들어졌다. 이어 2023년엔 부처별 수직적 행정이 낳는 의료복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어린이 관련 정책을 전담하는 '어린이가정청'도 설립했다.


허종호 서울대 의대 겸임 부교수(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가 국회 미래연구원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허종호 서울대 의대 겸임 부교수(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가 국회 미래연구원에서 아시아경제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현민 기자

반면 한국의 경우 소아의료 전담 법도, 소아의료를 따로 관리하거나 책임지는 기관도 없는 실정이다. 복지부가 관련 업무를 맡고 있지만 특정 조직이 소아의료를 전담토록 하는 구조는 아니다. 일례로 소아응급 업무는 '응급의료과', 지역 소아의료는 '필수의료총괄과'에서 담당하며 소아암 업무는 '질병정책과' 소관이다. 소아청소년 의료 관련 법도 ▲아동복지법 ▲어린이 안전 관리에 대한 법률 ▲아동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 ▲청소년기본법 ▲유아교육법·영유아보육법 ▲모자보건법 ▲청소년보건법 등으로 나뉘어 있다.


허종호 서울대 의대 겸임 부교수(국회 미래연구원 연구위원)는 "현행 우리나라 보건의료 체계는 제도상으론 생애주기별 건강관리 사업이 도입돼 있으나 실제로는 성인기 질환과 질병 위주 관리에 정책과 자원이 집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허 부교수는 "일본에서도 성육기본법이 시행되고 어린이가정청이 설립되면서 어린이 건강권 증진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며 "지난해 시작된 일본의 제8차 의료개혁에서도 이전 개혁들과 비교해 성육과정 세분화와 소아의료 집약·중점화 방안 등 소아 의료 관련 부분이 확연히 늘었다"고 설명했다.


[무너진 소아의료]⑥"관련 법, 전담 부처 신설해 재건 나서야"




최태원 기자 peaceful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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