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떠나 요리·기부 선한 영향력…에드워드 리 인생 바꾼 '2001년'

美 사회 산산조각 낸 9·11
지인 죽자 식당 접고 방황도
팬데믹 땐 실직자 구호 활동

넷플릭스 요리 경연 예능 프로그램 '흑백요리사'에서 준우승을 차지한 셰프 에드워드 리는 미국 텍사스주를 거점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그는 원래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며, 요리사 경력도 뉴욕에서 시작했다. 그가 정든 고향을 떠나게 만든 건 2001년 당시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9·11 테러'로 알려졌다.


미국 뒤흔들었던 9·11 테러, 에드워드 리도 방황

9·11 테러 직후 맨해튼의 모습 [이미지출처=무료 이미지 플릭커 캡처]

9·11 테러 직후 맨해튼의 모습 [이미지출처=무료 이미지 플릭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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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요리사' 방영 전후로 에드워드 리는 국내외 여러 인터뷰에 출연했다. 최근 전파를 탄 미국 CBS 방송 인터뷰에선 그의 대표 레스토랑 '610 매그놀리아'를 인수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기도 했다.

한국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원래 뉴욕 브루클린 출신이다. 한국계를 포함해 서아시아계, 자메이카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가득한 지역으로, 리는 이곳에서 여러 식문화를 섭렵하며 어려서부터 요리사의 꿈을 키워 갔다. 실제 그는 외교관이 되라는 아버지의 당부에 따라 미국 명문 뉴욕대(NYC) 문학과를 졸업했음에도, 결국 부친의 뜻을 저버리고 뉴욕에서 셰프의 길을 걸었다.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뉴욕 맨해튼에 입점한 레스토랑에서 조금씩 명성을 얻어가고 있던 그의 인생은 2001년 9·11 테러로 송두리째 변했다. 당시 맨해튼 세계무역센터에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납치한 항공기가 충돌하며 수많은 인명 피해를 낳았는데, 희생자 중에는 리의 지인, 단골도 포함됐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리에게 잊을 수 없는 충격을 줬다.


실제 리는 미국 요식업 관련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당시 상황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한 에세이에선 "(9·11 이후) 여자친구는 이탈리아로 돌아갔고, 나는 머리를 비울 시간이 필요했다"며 "뉴욕을 탈출해야만 했다. 그래서 레스토랑을 팔고, 남은 돈으로 차를 빌려 전 미 대륙을 떠돌아다녔"다고 회상했다.

상실 딛고 텍사스로 내려와 새 시작…코로나 구호 활동도

에드워드 리 [이미지출처=CBS 유튜브 캡처]

에드워드 리 [이미지출처=CBS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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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던 그는 결국 텍사스 루이빌의 610 매그놀리아 건물을 매입, 다시 식당을 세우며 요리사의 길로 돌아왔다. 이후 십수년 간 이어진 노력 끝에 그의 식당은 '텍사스에서 가장 중요한 레스토랑'이라는 어마어마한 명성을 거머쥘 수 있었다.


리는 요리와 식당 경영의 대가로도 유명하지만, 동시에 자선 운동가이자 사회 운동가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으로 미국 전역의 레스토랑이 문을 닫고 실직자가 쏟아졌을 때, 그는 끼니를 때우기 힘든 사람들을 위해 수백만그릇의 무료 식사를 만들어 제공했다. 해당 활동은 '리 이니셔티브(LEE Initiative)'라는 비영리 단체를 통해 이뤄졌다.


그에게 있어 요리는 '희망'이라고 한다. 리는 코로나19 대유행 당시 미국 식문화 잡지 '보나 피데(Bon appetit)'에 기고한 글에서 "저는 제 인생의 29년을 이 일(요리)에 바쳤다. 인제 와서 넥타이나 보험을 팔러 돌아다닐 수 없다는 것"이라며 "그런데도 권력자들은 우리 같은 사람들을 보지 못한다. 정치인들은 요리사가 실직하면 다른 일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여기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요식업의 요점은 고객이 레스토랑에 와서 우울함을 잊는 것이고, 그런 즐거움을 제공하는 게 우리"라며 "긍정적인 에너지는 전염성이 있다. 열정과 기쁨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가득한 레스토랑에 있으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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